(6) 이미 자연의 포용을 배운 후였다

by 서화

컵에 마른미역과 불릴 누룽지를 부어 식탁에 내려놓고 포트에 물을 담아 스위치를 올렸다.

새벽 6시. 사방이 하얀 알베르게 식당. 피로도 잠도 털어내지 못한 나에게는 반사된 전등 빛도 날카롭게 희다. 눈도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다.

왼손으로 턱을 괴고 고개 숙여 눈을 감았다. 물이 끓을 그 잠시 동안이라도 다시 잠이 들고 싶었다. 포트의 요란한 부글거림이 아득하다 싶은 순간, 갑자기 끼익 의자를 당겨 끄는 소리에 고개 들어 눈을 떴다. 식탁 두어 개를 사이에 두고 맞은편에 안경을 쓰고 검은 복장을 한 이가 앉아있다. 한국인 같았다. 안면은 없었지만 혼자 일어나서 출발 준비를 스스럼없이 하는 모양새가 용감한 대한민국 아줌마 같았다.


“몸은 괜찮으세요?” 내가 말을 걸었다.

“네”

“다행이네요. 저는 발가락에 물집이 잡혀서 신경 쓰여요”

내 고민을 먼저 꺼내서 상대가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게 하는 대화법. 서로가 가지고 있는 불편함을 털어놓아 나만 힘든 게 아니구나 위안을 주고받고 싶었다.

“그거 들고도 물집이 생겨요?”

“그러게요. 많이 안 걸은 사람이라 순례길이 좀 힘든가 봐요. 발이 고생이네요”


그녀는 시선을 내리고 묵묵히 식사를 했다. 그리고 여전히 시선을 깔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짝꿍이 직접 만든 샌드위치 하나를 내 앞에 내려놓고 더 먹으라 권하며 앉았다.

“저 사람이랑 무슨 이야기했어요?”

“내가 물집 생겼다고 했더니 그걸 들고도 물집이 생겼냐고 묻던데요”

“진짜요? 그거 진짜 무례한 말인데.”


짝꿍은 이미 몇 번 마주친 사람이란다. 혼자 온 한국인. 그 사람 말고도 눈에 띄는 이가 한 명 더 있다고도 하며 덧붙였다.

“저 사람들은 우릴 싫어해요”

“왜요?”

“단체로 왔다고”

“그게 무슨 상관이에요?”

“인사해도 잘 안 받아주고, 뭘 좀 물어보려고 하면 얼굴을 돌리면서 모르는 척하더라고요”

나에게 무안을 주려고 했던 말일 거라는 짝꿍의 설명을 듣고 나니 왜 나와 그녀의 대화가 이어지지 못하고 껄끄럽게 끝났는지 이해가 되었다.


한국인이 한국인을 싫어한다고?

아니 나를 싫어한다고?

왜? 나에 대해 뭘 알아서?




그녀가 말한 ‘그걸’은 동키 서비스에 부치고 남은 나의 작은 배낭을 말한 것이었다. 모든 짐이 든 큰 가방을 메고 걷는 이도 있지만 나처럼 큰 가방은 업체에 신청해서 오후에 도착할 알베르게에 미리 배달을 시킬 수도 있다.

완벽한 것이 아니면 가치가 없다는 생각을 갖고 사는 사람인가?

인생 참 고달프게 사시네.

다른 일행이 그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단체로 오는 사람들은 나라 망신 시킨다고 생각하는 거지.’

‘단체로 와서 시끄럽고 무례하고 그렇다고.’


그 여자는 그동안 도대체 어떤 사람들만 만나고 다닌 걸까.

셀 수 없는 천사를 만난다는 순례길에서는 얼굴 찡그릴 순간들을 마주친다 한들, 그 하나가 전체를 덮지는 못할 것인데 말이다.

단체로 온 사람들이 왜 단체로 왔는지 그녀는 알고 싶어 하지 않은 것이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저마다의 방법으로 순례길에 도전한다.

배낭을 메고 걷는 것에 최적화되어있는 짝꿍을 만난 날. 내가 물었다.

“이렇게 다 잘하는데 왜 단체로 신청했어요? 나야 완전 초짜라서 그랬지만”

“가족들이 혼자는 안된다고 해서요”

전문가도 언어가 다른 곳에서는 나하고 같은 위치구나 싶어 나는 동지를 만나 반갑다고 호들갑을 떨었었다.

“나도 가족들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는데… 겁이 없어도 너무 없다고 얼마나 잔소리를 들었는지”


단체가 거슬렸던 그녀가 던진 불쾌감을 나는 깨끗하게 지우지 못했다. 심하게 안 좋은 경험이 있었나 보다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나 자신을 위해 잊어버리자 마음먹었음에도 셔츠에 묻은 얼룩처럼 한참을 묻히고 걸었다. 나도 사람인지라. 성인이 아닌지라. 무엇보다 그녀가 한국인인지라.





웅장한 수녀원 건물에서 짐을 푼 날이었다.

짝꿍과 나는 그날 매운 소시지를 넣은 파스타를 준비하고 있었다. 순례자들의 수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은 요리 도구와 몇 안 되는 화구의 인덕션 때문에 모든 순례자들이 재료를 미리 손질해 두고 차례를 기다려야만 한 날이었다.

어이없게도 우리는 요리를 시작하기도 전에 소시지를 반이나 잃었다. 복잡한 부엌을 잠시 벗어나 식탁 의자에 앉았던 짝꿍이 다른 이들의 요리가 어느 정도 진행되었는지 확인하러 다시 부엌에 들어가서 보았단다. 스페인어를 쓰는 중년의 외국인 커플이 자신들의 와인을 흥겹게 마시며 우리의 소시지를 안주로 먹고 있는 것을.

놀란 짝꿍이 우리 소시지라고 말했고 그들은 묘한 웃음을 보이며 ‘공동 재료인 줄 알았다’고 전혀 미안하지 않은 ‘sorry’로 해결하더란다.


그날은 유독 내가 배가 고픈 날이었고, 요리를 준비하는 사람들로 부엌은 너무 붐볐고, 게다가 많은 인원이 묵는 알베르게이면서도 조금도 친절하지 않은 부엌의 상태 때문에 짜증이 컸던 날이었다.

그 커플이 스페인어를 썼으니 스페인 사람이거나 남미 사람이었을 것이다. 과한 액션을 보이며 그들은 우리 옆에서 요리 시간을 아주 오래 썼다. 나는 짝꿍이 요리하는 동안 보조를 맞추며 그들에게 눈을 흘겼다. 그게 다였다. 의도였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는 걸 알아서 더 속상해서 그랬다. 그거라도 해야 내 속이 풀릴 것 같았으니까.

그렇다고 스페인어를 쓰는 사람들이 모두 그들처럼 무례하다는 판단은 안 했다. 게다가 다음날 눈 뜨는 순간 잊어버렸다. 어제의 일은 어제로 끝. 내 기억 저장소에 그들의 얼굴은 담기지 않았다. 좋은 사람들과의 웃음과 멋진 길에서 만나는 아름다운 자연을 담기에도 벅찼으니까.


소시지 사건이 있었던 날, 우리 일행 중에도 김치찌개를 한 냄비 끓이며 동시에 냄비 밥을 한다고 프랑스 젊은이를 한참 동안 기다리게 한 이가 있었다. 기다리는 사람이 많으니 빨리 하고 비켜줘야 할 것 같다는 조언에 그녀는 오히려 역정을 냈다.

“밥도 못 해 먹어요?”

뜸 들이는 시간이라도 줄여보자고 한 말이었는데….

그 프랑스 젊은이는 다른 이들에게 분명 이기적인 한국인 아줌마에 대한 뒷 담화를 했을 것이다. 누가 봐도 어이없어하던 몸짓으로도 충분히 추측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퇴직한 초등학교 선생님은 우리 단체의 대표도 한국의 얼굴도 아니다. 그녀의 행동은 그녀의 잘못인 것이다. 그 사람은 순례길에 오기 전부터도 그런 성정으로 살았던 사람일 뿐이다.

어느 단체의 한 사람의 행동이 거슬렸다고 그 단체 사람은 모두 몰상식한 사람이라고 단정 짓는다면 배려를 모르는 한국인 한 명으로 모든 한국인이 욕먹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나는 더럽게 이기적인 한국 국적의 한 사람이 맞다고. 한국은 그런 나라라고 인정할 수 있나?

나는 못 받아들인다. 내가 아는 한국인은 따뜻하고 똑똑하고 정의로운 사람들이 훨씬 더 많으니까.


혹 새벽의 그녀는 모든 한국인은 절대적으로 친절하고 환대받아야만 한다고 믿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 애국심도 그 정도면 과유불급인데..

한국인이든 스페인 사람이든 어딜 가도 있다. 이기적이고 무례한 사람은. 국적으로 구분할 필요가 없다.


새벽부터 나에게 곱지 않은 막말을 던져 인격을 드러냈던 그녀의 하루는 어떠했을까. 산길 한가운데서 혹 나에게 사과해야겠다는 깨달음을 얻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용기가 없어서 사과를 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나 짐작을 해보기도 했지만 그녀는 끝까지 무례했다.


정확히 산티아고까지 100km 남았다는 표시석 앞에서 나는 얼마 전 새로 사귄 친구를 다시 만났었다.

같이 사진을 찍고 싶어 나와 짝꿍을 기다리던 선한 눈매의 그 친구 옆에 그녀가 서 있었다.

같이 찍을까 짝꿍과 내가 눈 짓을 주고받는 순간 무례한 그녀가 나의 새 친구에게 소리쳤다.

“우리끼리만 찍어요”

유치해서 원.

그래 혼자 온 멋지고 대단한 사람들끼리 잘해 보슈.

혼자서 와야만 행복한 결과를 얻는 것도 아니고 여럿이 오면 800km를 걷지 않고도 요행으로 순례를 마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의도적으로 내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고자 했음에도 나의 감정은 크게 타격이 없었다. 오히려 다시 마주친 그녀에게 변함없이 먼저 인사를 건넸고 완주한 날 산티아고 성당 앞에서는 축하한다고 안아주었다. 고백하자면 이전의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나를 거부하는 이에게는 맞대응했었다. 없는 사람으로 철저히 무시하면서. 이랬던 나로 돌아가기에는 이미 자연의 포용을 배운 후였다.




얼굴 찌푸릴 사건은 또 있었다.

산티아고 입성을 며칠 앞둔 어느 날.

‘Jesus didn’t start from Saria’

거리 표시석 옆면에 쓰여 있었다.

인증서를 받을 수 있는 최소 거리 100km. 그 인증서를 받고 싶어 ‘Saria’라는 도시에서부터 걷기를 시작한 이들을 비꼬는 글이다.


종교적인 순례자도 별반 다를 게 없는 것 같아 허탈하고 맥이 빠졌다.

스스로를 높였던 한국인 그녀와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는 이들이 또 있구나.

800km를 완주한 사람만이 진정한 순례자라는 뜻을 피력하고 있는 문장이었다. 가짜는 부끄러워하라. 뭐 그런.

크게 놀랄 일은 아니다. 여기도 있는 것뿐이다.

자신의 경험과 감정만이 모든 판단의 기준인 사람. 하나를 보고 전체를 고정시켜 버리는 사람.


나도 그녀와 같아지긴 싫지만 한마디 해야겠다.

순례길을 걷기만 하면 숭고해질까요? 아니면 종교적으로 청백해지고 단단해질까요?

부디 지고 걸은 무게만큼 깨달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