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째 들고 만 다니는 책이 있다. 두 번의 이사, 대여섯 번의 대청소. 그 중간 어디쯤에서 사라질 수도 있었는데 지금도 거실 책장 제일 하단 구석에 있는 걸 보면 나도 참 대단하다 싶다.
이 책은 추리 소설이다. 내가 좋아하는 분야이고 두꺼운 하드 커버에 게다가 두 권이다. 두 권이면서 두께가 만만치 않으니 차근차근 곱씹으며 읽으면 좋지 않을까 싶어 고민 없이 샀었다. 예전의 내가.
살 때의 마음과 달리 펼쳐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 지금까지 세 번 시도했었고 매번 20페이지를 넘기지 못하고 덮었다.
중단은 했지만 절대 포기는 하고 싶지 않다. 소장이라도 해야 속상함이 풀릴 것 같다.
‘장미의 이름’
걸으며 자연스럽게 깨달았다. 왜 이 길이 순례길인지.
성당!
머무는 곳 스치는 마을 어느 곳에나 있었다.
인적 없는 빈 마을에도 성당이 있었다. 현재는 사용하지 않아 문이 굳게 닫혀있었지만 그 성당이 마을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했던 과거를 유추하는 건 어렵지 않을 만큼 중심가에 있었다.
작은 마을은 성당을 관리하기가 버거워 보였지만 도시는 건재했다. 도시의 성당은 엄청나게 웅장했고 반짝반짝 황금빛으로 화려했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인구를 증명하듯 상당한 수의 사람들이 아침저녁으로 성당 앞의 광장을 오가며 일상을 살아가고 있었다. 성당은 그 옛날부터 변함없이 사람들과 같이 살아오고 있었다.
먼 시선의 언덕 아래, 저 마을이 오늘 내가 머무를 곳인지 아닌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성당부터 찾아보는 것이다. 성당은 언제나 제일 눈에 잘 띄는 높은 곳에 있었다. 순례길의 성당들은 대체적으로 화려했다. 루르드, 부르고스, 네온, 산티아고, 마드리드…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도시의 성당은 더더욱 건물 자체로 예술 작품 같았다. 무엇을 보고 감탄해야 제대로 느끼는 것인지 알 수조차 없었다. 첨탑부터 바닥까지 어느 하나 허투루 지나칠 수가 없는 정교한 조각들. 이 종교에 문외한인 나조차도 경외심을 갖게 될 정도였다.
45일의 여정.
그 사이 내가 마주친 성당은 과연 몇 개일까. 번성했을 당시 세 개의 성당이 있었던 마을도 거쳐왔으니 어쩌면 나의 여정보다 더 많은 성당을 지나쳐왔을 것이다. 순례자로서 이 길을 걸으며 어찌 마음이 동하지 않을 수 있을까. 머무는 마을의 모든 미사에 참여하던 일행에게도 경이로움을 느꼈다. 저토록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왔으니 그 행보가 흔들리지 않을 것이고 돌아갈 시점에는 누가 봐도 단단해져 있을 것이라는 건 가늠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과 반대로 나는 자꾸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이런 마음으로 순례길을 걸었다고 질타를 받는다 해도 어쩔 수 없다. 내 마음이 실제로 그랬으니까.
보수가 이루어지지 않아 허물어져 가는 가옥들이 적지 않은 마을에서도 성당은 그에 반해 너무 화려했고 건재한 도시의 성당도 그 도시에 비해 독보적으로 대단했다. 밖에서 바라본 건물은 웅장했고 안은 눈부신 황금색이었다. 내부는 세력을 과시하듯 하나 같이 화려했고 강건하고 결연한 서사들을 표현한 조각들조차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일행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겉이 화려하고 안은 좀 더 경건해야 하는 거 아닐까라는 의문이 들었어요. 힘든 사람들이 비록 화려함을 보고 오더라도 그 안에서는, 신자들에게는 더욱더 강한 신심과 경건한 믿음을 요구해야 하는 것 아닐까 싶네요. 물론 성직자들은 더욱더 검소해야 하고요”
이 종교에, 종교를 지킨 이들에 대한 나의 무지함이 드러난 것일 수도 있지만 을씨년스럽고 적막한 순례자 마을을 거쳐오며 가졌던 쓸쓸함이 잊히지 않는다.
마을마다 미사에 참여하던 언니가 해준 말이 있다. 믿음으로 종교를 선택한 사람들의 수가 세계적으로 눈에 띄게 줄었다고. 이 종교 이외의 다른 종교에서도 같은 문제를 겪고 있다고.
“진짜요?” 놀라서 되물었지만 아주 살짝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종교에서 떠난 사람들도 나와 같은 불편함을 알아차리지 않았을까, 알면서도 아무것도 변화시킬 수 없는 답답함에 택한 것이 이별일 수도.
집으로 돌아오고 한 달이 지났을 무렵. 나는 중단했던 책을 다시 집었다. 수도원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수도사와 그의 제자에 관한 이야기다.
한 시간도 안되어 마의 20페이지를 넘겼고 신기하게도 10일 만에 두 권을 끝냈다.
나는 함성을 질렀다. 내가 이 책을 읽다니.
가톨릭이라는 종교에 발을 들인 기분이 들었다.
수도사들의 암투와 살인을 불러올 만큼 지키고 싶었던 그들의 신념을 어찌 고개 끄덕이며 공감할 수 있었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내가 세상을 너무 비판적인 시선으로 보는 잘못된 편견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닌지 쉽사리 표현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오히려 이 책이 공감을 해 주었다. 그 시대 수도사들도 고심이 깊었다. 종교인의 부. 그 부의 화려함. 부와 같이 오는 권력까지. 지키고 싶은 이들과 새로운 것을 가지려는 이들의 분쟁. 내가 느꼈던 고민들을 그들도 했었고 그래서 그런 의문을 가진 내가 왜곡된 시선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고 인정받은 듯 뿌듯했다.
지극히 종교적인 표현은 훑어지나 갔음에도 나는 알 것 같았다. 교황과 황제의 힘겨루기, 수도사들의 과도한 서책에 대한 애정, 성경의 해석과 믿음에 대한 아집. 예전처럼 멈추지 않았다. 편안하게 읽혔다.
요란하게 피레네 산맥을 넘은 바로 그날 ‘론세스바예스’라는 유명한 수도원 건물에서 하룻밤 몸을 쉬었다. 지금도 눈에 선하다. 넓은 마당. 지하 식당. 커다란 돌을 쌓아 만든 벽을 보며 중세로 시간여행 온 것 같았었다. 큰 소리를 지르면 메아리가 생길 것 같아서 조심스러웠고, 늘어선 침대들을 보며 예전 순례자들도 이렇게 잠들지 않았을까 짐작했다. 전기가 없던 시절 창문조차 제대로 없는 이곳에서 어떻게 살았을까 복도를 걸으며 예전 그들의 안녕이 걱정스럽기까지 했다. 게다가 내가 아는 수도사들의 복장이라는 게 숨기고 가리는 용도 같아 견고한 수도원도 수도사도 모두 경외스러웠다.
어디까지 상상했었는지 잠깐 고백하자면 이렇다.
어린 수사가 헐레벌떡 뛰어와 아치형의 돌벽에 기대 숨을 헉헉 거리며 크게 소리칠 것 같았다. 마당을 서성이는 수사들을 향해 “황제가 보낸 서책이 곧 도착합니다”라고.
아무튼 직접 경험한 후라 그 책의 묘사를 상상할 수 있었고 작은 등잔이라도 없으면 암흑이 되어버리는 수도원의 구조를 납득하며 책 속의 수도원에 동행할 수 있었다.
10일 내내 마주치는 가족들에게 독서의 진도 상황을 자랑했다.
“이만큼 읽었어. 이틀 만에 벌써.”
“몇 년을 손도 못 댄 책인데 진짜 신기하지?”
“읽고 싶다고 절대 안 버리셨던 책인데 다행이네요”
책을 덮었던 속상함은 나만 알 것이다. 추리소설의 마니아로서 제대로 시작도 못해본 책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자존심 상한지 말이다.
순례길을 다녀온 후 몸이 어떻고 마음이 어떻고 하는 후기는 많이 들어봤고 읽어 봤고 나도 했다.
하지만 이런 순기능이 따라올 줄이야.
이건 선물이다. 순례길의 선물이다.
나에게만 배달된 꽃 같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