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고해성사

by 서화

저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지금에서야 깨달은 저의 아둔함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기억에서 털어버리고 싶습니다. 그래서 고백합니다.

편견 없다고 착각한 건방진 오만을 들어주세요.


순례길의 어느 날, 대도시의 호텔로 향하던 길이었습니다. 거쳐온 여느 작은 마을들과 달리 역시 도시는 건물들과 사람들로 복잡했습니다. 적막하게 외로운 길에 어느새 익숙해진 저는 도시의 인도를 걷는 걸음이 더 힘들었습니다. 마주 오는 사람들과 부딪히지 않으려 멈칫 멈칫 두리번거려야 했고. 걷지 않으면 더 무거워지는 다리는 건널목 앞에서 어쩔 수 없이 자꾸만 서있어야 했습니다.


전날 대장이 말했었죠. “내일은 대도시로 들어갑니다. 걷는 것이 더 힘들겠지만 다들 힘내봅시다.”

내 의지로 쉴 수 있었던 소똥 냄새 가득한 길들이 순간 그립더라고요.


대장이 소개한 맛집들 중에서 일본식 라멘을 골랐습니다. 정오를 한참 넘긴 오후 두 시에 도시의 초입으로 들어섰으니 서둘지 않으면 그 라멘집이 문을 닫을까 봐 번화한 거리의 풍경은 둘러볼 여력도 없었습니다. 지도상의 10분이 30분처럼 느껴졌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걸을 수밖에 없었죠. 생각을 키웠다가는 바로 포기할 것 같았거든요.

‘라멘을 꼭 먹을 필요 없지. 그냥 마트 가서 빵이나 사자’라고요.




진한 고기육수의 라멘을 주문했습니다. 콜라도 시켰고요.

땀에 젖은 머리카락 때문에 모자를 벗지 말까 잠시 망설였지만 저는 누가 봐도 순례자였으니 과감하게 모자를 벗고 땀을 닦았습니다.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고 스틱은 벽에 세워두고 고개를 돌리다가 깨달았습니다.

내가 앉은자리가 바로 주방 앞이라는 것을요. 환하게 오픈된 주방에서는 동양인 남자 두 명이 요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내 자리는 거북하게 가까웠죠.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일본식 라멘을 파는 곳이었고 그 가게의 인테리어는 애니메이션의 나라답게 꾸며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당연히 주방 안의 동양인은 말이 없는 일본인이라고 생각했던 겁니다. 라멘은 내가 알던 라멘의 맛이었습니다. 그래서 맛있었습니다. 빵과 올리브에 절어가고 있던 중이었으니 눅진한 육수와 면이 좋을 수밖에요. 하지만 걸어오며 데워진 몸의 열기가 쉬 가라앉질 않아서 먹는 내내 땀이 흘렀습니다. 가게 안은 에어컨으로 시원했지만 저만 열이 났죠. 찬물에 세수라도 해야겠다 싶어 잠시 젓가락을 내려놓고 화장실을 찾았습니다.


화장실에 들어가는 순간 저는 경악했습니다.

‘여기 중국인이 하는 가게네’

화장실 벽 3면을 빼곡하게 덮고 있는 것은 중국어 신문들이었습니다. 이걸 인테리어라고 했나 싶게 숨 막히게 불편했고 중국인 식당 일거라 예상 못한 저는 당황해 손만 대충 씻고 서둘러 화장실을 나왔습니다.

라멘은 더 이상 먹지 않았습니다. 주방에서는 동양인 주방장들이 중국어로 대화하고 있었고 빈정 상한 저는 다시 젓가락을 들지 않았습니다.

‘중국인이 하는 일본 라멘집이라니…’

속은 기분이 들어 아주 불쾌했습니다. 다시 앉지 않고 바로 짐을 챙겨 나왔습니다. 분명 맛있었는데 이제는 맛이 없어 보였습니다.


호텔로 돌아와 저는 짝꿍에게도 그 집을 소개했던 대장에게도 어이없었던 화장실의 중국 신문을 설명하며 라멘을 남기고 나왔다고 마치 무용담처럼 떠들었습니다. 나는 일본인이 만든 라멘 집을 원했지 중국인들이 만든 짝퉁을 먹고 싶지는 않았다고. 중국인이 하는 식당을 가고 싶었다면 중국 음식점을 갔을 거라고. 왜 자기들 음식이 아닌데 거기서 일본 음식을 파냐고.




참 바보 같죠? 진짜 어리석죠?

더 부끄러웠던 것이 뭔지 아세요?

저는 저의 허물을 스페인을 떠난 후에야 깨달았다는 겁니다.


집으로 돌아온 일주일 후 대학 동아리 친구들과 경주로 여행을 갔었습니다. 그곳에서 일본 음식점이 즐비하게 늘어선 거리를 걷다가 뒷머리를 후려 맞은 듯 깨달았습니다. 어쩜 그렇게 유치하고 멍청하고 덜떨어진 생각과 행동을 했었는지. 경주의 그 많던 일본 음식점의 주방에는 과연 일본인 요리사들이 몇 명이나 있었을까요.


저는 그저 중국인이 싫었던 겁니다. 중국인이 무언가를 한다면 다 불법일 것 같고, 남의 것을 흉내 내어 약탈할 것 같은 이미지를 내 안에 만들어 두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 망설임 없이 그 라멘을 맛없는 짝퉁으로 만들어 버리고 편견의 도구로 사용했던 거죠. 이런 편협하고 고루한 사고를 가지고 무슨 순례길을 숭고하게 걷고 왔다고 떠벌이고 다녔는지 경주에서는 내내 웃을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역사적으로 중국과 일본을 좋아하지 않는 건 사실입니다. 좋아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아주 극도로 싫어합니다. 그것도 당당하게 싫어하죠. 나의 태도는 정정당당한 것이니 잘못이 있다면 내가 아니라 그런 과거와 현재를 살아온 그들이 속한 그 집단에게 있다면서 말입니다. 그러면서도 평소에는 또 얼마나 공명정대하고 편견 없는 사람인 척했는지 부끄럽습니다. 중국과 일본은 재수 없는 이웃이라고 평하면서도 중국인과 일본인은 혐오하지 않는다고 자신했었습니다. ‘그들이 범죄자 같은 나쁜 사람들만 아니라면 괜찮다.’ ‘중국인도 일본인도 착한 사람이 더 많을 거다.’


그들이 변하지 않는 이상 내 생각도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저의 태도와 편견이 어느새 제 눈을 가리게 된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중국과 일본을 여행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지 아세요?

그 두 나라의 문화는 보고 느낄 가치가 없다고 그렇게 믿었거든요. 예전에 그랬었습니다. 고집을 버려야겠다고 결심한 후에도 아직 여행은 가지 않았습니다만 저는 제가 그런 과거에서 많이 진보했다고 생각했었는데 여전했다는 것이 슬프고 참담합니다.


저의 아이들에게는 이 이야기를 차마 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만약 친구들과의 여행에서도 깨닫지 못했다면 또 모르죠. 무용담처럼 아이들에게도 떠벌렸을지도요. 생각만 해도 창피하고 수치스럽습니다.


민망함을 무릅쓰고 솔직하게 밝힙니다.

옳다고 떠든 제가 어리석었다고 참회합니다.

역지사지하며 노력하며 살겠습니다.

음식의 맛에는 국적과 언어는 결코 필요하지 않습니다.

더운 주방에서 요리해 준 그들에게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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