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순례길은 ‘순례’ 본연의 의미와는 아주 먼 길이었다. 종교적으로 냉담을 풀고 싶어서, 아님 자신의 종교에 대한 더 큰 사랑을 확인하고 싶어서 걷기를 시작한 동료들도 있었으나 나는 시작하고 서서히 그 길의 의미를 배워간 사람이다. 어떤 동료가 그랬다. 결국 내가 이 종교에 빠져들게 될지도 모른다고. 그 말을 듣고 크게 반박하지는 않았다. 인생이 어디로 흘러갈지 감히 어떻게 단정 지을 수 있을까. 그저 웃었다.
힘들기는 정말 힘들었다. 새벽 5시 반에 눈을 뜬 어느 날은 ‘내가 왜 이곳에서 이런 말도 안 되는 고생을 하고 있지?’ 후회에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어디 그날 하루뿐이랴. 다섯 손가락은 다 사용해야 할 정도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후회의 시간은 매번 10 여 분이 채 안되었다. 금세 그 울적한 기분을 털고 일어나 출발 준비를 했다. 순례길은 결코 주저하며 머뭇거릴 수 있는 길이 아니니까.
나는 내가 단단한 사람이어서 그런 진취적인 행동력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나니까, 나라서 매일매일이 진행되었던 것이라고. 순례길 초반에는 나의 신체 에너지가 방전까지는 아니었다. 그리고 예상하며 기대했던 대로 동료들과 같이 하는 ‘레몬 비어’ 한 잔으로 다음날을 위한 에너지가 충분히 채워진 것 같기도 했다. 종아리와 허벅지의 통증, 그리고 무거운 다리로 터덜 터덜 걷느라 완주 시간이 다른 동료들보다 한두 시간 늦어지는 것도 당연하다고 인정했다. 평소에 등산이나 걷기를 즐겨하지 않던 사람이라 순례길에서는 누구보다 고단할 것을 예상했었다.
이제는 안다. 내가 어리석었다.
‘부르고스’를 지나 ‘레온’을 향해 걸어가던 길에서 깨달았다. 당일 하루를 마무리하고 다음 날 걸을 준비에만 급급해서 그동안은 미처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뿐이었다. 힘들어서 쓰러지듯 잠든 다음날이면 신기하게도 다시 걸음을 뗄 에너지가 채워진 것은 나 자신의 대단한 회복력 때문이 아니었다. 순례길의 1/3을 지나서야 알아차렸다.
그날의 일정은 전날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좁았고, 길 옆에 나란한 차도 위 맹렬하게 달리는 자동차 소리가 커졌다 작아졌다를 반복하며 내내 같이 걷는 그런 길이었다. 연민 없는 태양빛이 만들어낸 줄지어 늘어선 나무들의 그림자가 자동차 소리에 반응하듯 주저 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마치 입으로 불다 놓쳐버린 풍선의 궤적 없는 비행 같았다. 그림자가 어지럽도록 흔들린다 느낀 순간 나는 울컥 서러웠다. 내가 왜 이 고생을 하고 있는지. 나를 이곳으로 오게 만든 답답하고 억울한 감정은 왜 생겼는지. 그 억울함을 만든 사람들에 대한 미움과 분노가 내 심장을 꾹꾹 쥐어짜서 숨이 막혔다. 답답하고 외로워서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갑자기 걸음이 빨라졌다. 쏟아지는 눈물이 주체할 수 없었듯이 내 걸음도 내가 어찌할 수 없었다. 사람들을 앞질렀고 인사를 건네는 이들을 돌아보지 않았다. 한참을 그렇게 걸었던 것 같다. 갑자기 다리에 힘이 풀려 나는 멈추었다. 그리고 털썩 길 가 풀숲에 주저앉았다. 눈물은 멈추어 있었는데 감정은 여전했다.
왜? 하필 지금?
시선을 들었다. 밀 밭과 맞닿은 하늘이 있었다. 파랗기만 한 하늘, 하얗기만 한 구름, 그리고 내 발밑까지 이어오는 초록. 그저 경이롭게 고요하고 선명한 풍경이었다. 어제도 그 전날도 또 그 전날도…
그랬다. 어느 하나 아름답지 않은 풍경이 없었다. 특히 암암한 숲의 터널과 땅과 하늘의 이분법적 지평선은 지금껏 살아오면서 본 풍경 중에서 가장 벅차게 아름다웠다.
그랬나 보다. 필요한 에너지는 지금까지 걸어왔던 그 길 위에서 채워졌나 보다. 나도 모르게 조금씩 스며든 행복한 감정들이 품고 온 원망과 슬픔, 두려움을 한꺼번에 밀어 올려 벼락같이 울었다고 나는 그리 생각한다. 눈물이 위로가 될 줄은 몰랐다. 눈물은 비겁한 겁쟁이임을 인정하는 것 같아 사는 내내 눌러 참기만 했었는데.
내가 울든 참든 세상에는 아름다운 것이 이렇게나 지천인데 말이다. 나는 왜 나를 믿어 주지 않았을까.
바보 맞네.
그리고 며칠이 지났다. 철의 십자가에 남겨둔 소원 쪽지에 이렇게 기도했다.
‘더 이상 저에게 주실 것은 없습니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에서 받은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이 세상 고달픈 이들의 시름이 한 뼘이나마 가벼워지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나의 순례길이 ‘좋았다’는 이유다.
시작할 때의 나 자신보다 스페인을 떠날 때의 나를 더 많이 사랑하게 되었으니 이 경험은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느닷없이 울고 난 후, 나는 봇물 터지듯 솟구친 감정을 또다시 외롭게 삼켜야만 했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가 없었다. 그곳의 일행들은 순례길의 동행자로 만난 사람들이다. 고맙고 든든하지만 내 기분을 이입시키면 안 되었다. 그들도 그들의 감정에 휘둘리고 있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누구 하나 고요하기만 한 이는 없다. 순례길은 그런 길이었다.
나는 유독 감정을 보이는 것에 주저 주저 하며 살아왔다. 나의 엄마가 그렇게 요구하셨다. 좋아도 너무 좋은 티를 내면 안 되고 슬퍼도 적당히 해야 한다고 했다. 중도를 걸어야 무시당하지 않으며 감정에 휘둘리는 경박한 이는 되지 말라고 경고하셨었다. 그렇게 어른이 된 내가 엄마가 되고 난 후에는 더 강해져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감정 자체를 지우고 살았다. 이런 내가 스스로도 놀랍도록 요동치는 기분을 누구에게 어디까지 털어놓을 수 있었을까.
누르기만 했던 속을 마음껏 열어 젖히기는 했는데 이걸 어찌해야 할지 당황스러웠다. 다시 눌러 담는 건 이젠 안 된다. 한번 허락한 당당한 심기는 그 어떤 이성으로도 제어가 힘들었다.
전부 쏟아내야 했다. 미친 듯이 적나라하게. 그래야 내가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았다.
우체국으로 갔다.
편지를 썼다.
발신인은 나였고 수신인도 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