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야!
정말 나는 어떤 여정일지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어. 할 수 있을지 꼼꼼히 재단하고, 심지어 미리 예행연습을 거쳐 확신이 서야만 시작하는 평소의 내 행동에서 한참을 어긋났지.
운동할 때는 아니라고?
운동은 좀 다르지. 어떤 운동이든 처음부터 쉽지 않다는 것과 힘들면 내가 알아서 천천히 맞춰가도 된다는 그 습성을 알고 있었기에 운동 종목을 선택함에 있어서는 예외였어. 무조건 시작하고 깡으로 버티다 보면 어느새 내 몸이 알아서 힘을 빼주었으니까.
돌이켜보면 환상만으로 도전했던 것 같아. 뭔가 드라마틱한 변화가 기다리고 있을 것처럼 보이는 사진들과 돌아온 사람들의 글. 그 글을 쓴 사람들의 삶이 실제 어떻게 어느 만큼 변모했는지는 모르면서도 왠지 나는 인생 2막을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과대평가했는지도 모르겠다.
무모했다 핀잔들을 각오하고 말하는 거야. 이미 너의 걱정이 ‘잘했다, 대견하다’로 바뀌고 나서 이런 고백을 하는 나를 부디 어여삐 여겨주길 바란다 나의 벗이여.
오늘은 조금 다른 이야길 해 줄게.
‘진짜 힘들었지만 정말 좋았다’는 나의 고정 멘트 말고 그곳이 나에게 선물한 색다른 즐거움에 대해서…
대장의 조언대로 10여 일이 지나니 정말 나의 다리는 적응을 시작했어. 터질듯한 종아리 통증도 그 강도가 줄어들었고 새벽과 저녁 두 번의 스트레칭이 점점 효과가 나타나더라. 그래도 조금씩 나아졌다는 거지 회복은 아니었어.
그날그날 걸어야 할 길은 막막했고 발가락 물집, 신발에 스쳐 상처가 난 발목, 돌 밭 내리막에 기분 나쁜 신호를 보내는 무릎과 발목.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변수들은 마치 동행자 같았어. 떨칠 수도 없지만 그리 가까이 두고 싶지 않은 그런 동행.
힘들고 지루했어. 눈앞에 풍경에 찬사를 보내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별만 크게 다를 것 없는 풍경들이 식상해지며 내 인내심은 점점 바닥을 보이고 있더라. 그렇지만 ‘내가 여기서 왜 이러고 있지?’ 뭐 이런 후회는 아니었어. 후회를 하기에는 벌써 그 한계점은 넘어 버렸거든. 순례길의 묘미를 이미 한참 전에 알아버린 거지.
좋다고 해서 매시간 좋을 수는 없잖아. 행복했다가 좀 지루했다가 그리고 힘들어서 짜증스럽기도 할 수 있는 거니까. 나는 아주 자연스러운 감정의 기복으로 버티고 있었어. 내가 이렇게 감정에 롤러코스터를 타는 가벼운 사람인가 싶을 만큼 그랬어. 떠나기 전의 나랑 점점 비슷해지고 있었지만 명백한 차이. 비록 감정이 파도를 타고 있어서 기분이 즐겁다 답답했다를 반복하고 있었지만 그게 없었어. 죄책감. 결코 흔들리면 안 된다는 자책. 그저 평안한 일상이었어. 싫었다 좋았다 몇 번을 반복해도 그 건 금세 사라질 걸 알고 있었던 거야.
마지막을 며칠 앞둔 어느 날, 다음 날 일정을 책자로 확인하던 내가 “앞으로 며칠 남았는지 세어 보니까요”라고 말하자마자 “세 보지 마요. 며칠 남았는지 절대 말하지 말아요” 아우성치는 언니들과 짝꿍. 마지막이라는 단어에는 섭섭함과 아쉬움이 자연스럽게 겹치는 건 가봐. 그들의 입막음에 ‘깔깔깔’ 웃었지만 내 목소리는 하나가 아니었어. 몸이 말하는 것과 다른 이야기를 하는 내 심장.
눈에 띄게 얼굴이 작아지고, 바지가 흘러내리는 상태의 몸은 결코 침묵하지 않고 나에게 고함쳐. 이제 그만하라고. 그에 반해 환하게 밝아지고 웃음이 많아진 내 표정과 안색은 그 반대의 주장을 펼치는 것 같았어. ‘진짜 좋지? 너도 끝없이 걷고 싶지? 인정해’
결국은 멈춰. 끝은 있고. 그게 현실이지
그럼에도 나는 내 끝이 요란스러웠으면 좋겠다고 상상했어. 아니 기대했어. 순례자들의 행색이 나날이 초췌해지고 가방에 신발에 심지어 들고 다니는 스틱에까지 고단함을 묻히고 있지만 상반되게 우리의 마지막은 환희와 찬사로 무엇보다도 떠들썩하게 화려하다면 그 끝이 아쉽지만은 않을 것 같았거든.
출국하기 전 마드리드에서 우린 이틀을 머물렀어. 그 사이 가족처럼 친근해진 일행들에게 내가 느낀 실망감을 토로했지. 이런 이야기는 가까운 사람 아니면 절대 못해. 내가 어떤 사람으로 각인될지 모르잖아.
“끝이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니에요?”
“시작할 때는 순례자 등록하느라 사무실 앞에서 줄 서서 기다리고, 내내 그 순례자 조개껍질을 가방에 표 나게 달고 다녔고, 그리고 순례자라서 알베르게에서 묵을 수 있었고 순례자 같은 행색만으로도 스치는 사람들과 “부엔 까미노”라고 인사를 주고받았으면 마지막도 좀 달라야 하지 않아요?”
“뭐 어떻게 달라야 하는데요?”
“아니 시장 통 같은 광장에서 우리들끼리만 자축하고 사진 남기는 것으로 우리의 대 장정이 끝이라는 건 너무 억울하잖아요.”
“뭘 기대한 거야?”
“적어도 순례를 마친 고단한 이를 위한 개선문 정도는 있어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나는 그럴 줄 알았는데. 그래서 그 끝에서 사람들의 박수와 축하 인사에 눈물 흘릴 준비도 하고 있었다고요”
“너무 아름다운 세상을 상상했네”
마지막에서 목 놓아 울었다는 이는 도대체 어떤 심정이었길래 이렇듯 시끌벅적한 인파들 속에서 남의 시선 의식 안 하고 대성통곡할 수 있었을까 갑자기 궁금했어. 출발 전에 들은 이야기야. 그만큼 벅찼다는 거겠지만 나는 준비한 눈물을 한 방울도 드러내지 못했는데. 공사하느라 가려진 건물들. 행사를 위해 만들어 놓은 단상. 그리고 사람들 또 사람들 또 사람들.
근데 친구야!
고백하자면 내가 너무 아름답기만 하고 현실과 동떨어진 상상을 했다고 일행들이 놀리는 통에 나는 더 깊은 이야기는 꺼내지도 못했어. 내가 이 말까지 한다면 일행들이 뭐라고 할지 짐작이 되었거든. 산티아고의 입성에 대한 내 기대가 현실을 모르는 순진한(?)이의 천진한(?) 상상이라는 사람들에게는 도저히.
지루한 평지 길을 걷던 나는 감사한 마음만 전하던 저 위에 계신 분에게 요구 사항을 말하기 시작했어. 무지개를 선물한 것도 감사하고 걷기 좋은 날씨와 그림 같은 풍경을 보여준 것도 감사하지만, 감사한 건 감사한 거고 이 고단한 길을 직접 걷는 나를 위해서 한 가지 정도는 요구해도 되지 않냐고 아주 당당히.
“세상이 정말 사랑으로 가득 차기를 원하신다면 보여주세요”
“저한테도 그 사랑을 보여주세요”
“제가 주위 사람들에게 그리 인색하게는 안 살아왔어요. 그런데 정작 제가 외로워요”
“당신이 말하는 사랑이 그렇게 와닿지가 않거든요. 우리 애들이요? 사랑하죠.”
“근데 그거 말고요. 저도 저를 진심으로 사랑해 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왜 그런 사람 있잖아요. 내가 막 남의 흉을 볼 때면 무조건 내 편 들어주다가 마지막엔 나를 웃게 하는 사람이요. 그렇게 웃다가 까먹어요. 내가 왜 화가 났었지 하면서요”
“언제 어떻게 만날지 저는 모르죠. 그런 걸 직접 관장해 주셔야죠. 이왕이면 이 길의 끝에서 만나고 싶은데 안될까요?”
이런 거래를 어떻게 그들에게 털어놓을 수 있겠어? ‘도대체 이 여자는 무슨 생각으로 살아왔지?’라고 놀릴 것 같잖아. 그래서 너한테만 하는 거야.
내 소원은 안 들어주셨어.
나는 변함없이 혼자서 씩씩하게 지내고 있거든. 하지만 그거 알아? 그렇게 당당히 요구한 날 이후로 나는 살짝 설레는 순간들이 많았어. ‘정말 내 소원을 들어주셔서 그런 일이 생기는 거 아닐까? 인연은 모르는 거니까.’ 히죽히죽 잠깐씩 웃었어. 그렇게도 웃어지더라고. 그분이 들어줄지 안 들어줄지 모르지만 기대하는 순간의 상상만으로도 나는 짜릿하고 달콤했어.
지금도 여전히 그래. 그 생각만 하면 좋아. 실실 웃어.
어쩌면 그분도 이 걸 계획하신 것 아닐까. 저 위에 계신 분의 속내가 어떻다 파악할 수는 없지만 그냥 이런 생각도 해봤어. 내가 웃어서 행복하길 바란 게 아닐까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