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수영복 입고 그냥 가요”

딸이 가르쳐준 시선으로부터의 해방

by 서화

시드니 숙소의 일층 유리문을 나서며 나는 벌써 움츠린다.

입은 옷이 적으니 햇빛조차 약해진 듯 살갗에 바람이 들어왔지만 세포하나하나까지 꽉 조이듯 내 몸은 긴장하고 있었다. 나는 지금 수영복을 입고 있다. 실내수영장에서 입는 선수복 같은 디자인은 아니지만 치마 디자인의 아랫도리는 놀랍도록 짧다.

오늘 일정은 이렇게 시작한다. 지금부터 버스정류장까지 2분 정도를 걸어갈 것이다. 그리고 버스를 탈 것이다. 버스에는 분명 빈좌석이 많을 테고 나는 앉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사람들은 내가 다리를 다 드러내는 복장인지 아닌지 모를 것이다. 안타깝게도 버스는 한번 갈아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또 10분 정도 번잡한 빌딩사이를 이 모습으로 아침부터 활보해야 한다. 다음 버스에 오르면 그때부터는 괜찮을 거다. 해변으로 향하는 사람들이 많이 타는 버스이니 비슷비슷한 복장과 가방을 챙겨든 이들과 자연스럽게 섞일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지난밤 잠들기 전 이런 시나리오를 더듬어 보았었다. 내가 염려하는 부분이 어디인지 명확하게 드러나는 시나리오. 집에서 버스정류장까지. 그리고 빌딩숲.




딸아이가 제안했던 시도였다.

“우리, 수영복 입고 가요. 가서 수영하고 햇볕에 말린 다음 이대로 집으로 오는 게 어때요?”

“여기서부터 수영복차림으로 가자고?”

“네. 여기 시드니 사람들은 우리한테 관심 없어요. 바리바리 싸들고 가봐도 탈의실도 제대로 없잖아요”

나는 거절하지 못했다.

적극적인 찬성도 안 했지만 “그래도 되겠지?” 마치 나도 원하던 바였던 것처럼 찬성의 질문을 던지고 말았다.

그리고 밤새 고민했다.

‘못하겠다고 할까? 수영복은 너무했다고 말해볼까? 경주는 왜 그런 생각을 했지?’

천장을 보고 반듯하게 누워 옆에서 들리는 딸아이의 고른 숨소리를 듣고 있자니 갑자기 피레 내 산맥을 넘고 있는 내가 희미하게 보였다.


투덜댔고 짜증과 화를 폭발시켰고 가방을 바닥에 내동댕이치기도 쾅쾅 발을 구르며 힘들다고 구시렁거렸던 나는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던 걸까. 목소리가 조금만 커져도 다른 이들에게 민폐가 될까 두리번거리고 심지어 내 아이들의 작은 소란스러움조차 눈치를 봤던 대한민국의 전형적인 쫄보 아줌마가 말이다.

고개 돌려 딸아이의 얼굴을 한참 동안 쳐다보았었다.

‘그건 이 아이의 자유구나!’


나는 수영복을 입고 잠깐 머뭇거렸지만 당당히 걸어 나갔다. 보고 싶으면 내 몸매 좀 보라지 뭐.

역시나 사람들은 모두 감정 없는 표정으로 스쳐갔다. 자신의 핸드폰을 보거나 일행과 담소를 나누고 있지만 결코 나에 대한 주제가 아니라는 것은 확신할 수 있었다. 나는 그날 시선에서 온전하게 자유로웠다. 집으로 돌아올 때쯤엔 내가 무얼 입고 있는지 나 자신조차 잊을 만큼.




환호성을 지르며 우리는 하루를 만끽했다.

가오리를 만난 것도 커다란 물고기가 마치 따라오라는 듯 내 눈앞을 유유히 헤엄치던 그 환상적인 경험뿐 아니라 뜨거운 태양이 왜 필요한지 알겠다며 엎드렸다 뒤집기를 반복하며 우리는 수영복을 입은 채로 몸을 말렸었다. 대화를 알아듣는 이가 적으니 깔깔대며 농담을 주고받는 그 자체가 편안한 느긋함이었다.

적은 재료로 준비해 온 김밥과 과일들.

우리는 김밥을 입에 넣으며 동시에 말했다.

“역시 한국사람들의 준비성”


바위에 다리가 긁혀 상처가 났다는 걸 뒤늦게 보았지만 이 정도는 영광의 상처였다.

고백하자면 나는 평소에 아이들에게 남의 시선은 좀 무시하며 당당하게 살아라고 조언하면서도 자꾸 주춤주춤 거릴 수밖에 없었다. 나이 많은 여자가 뭘 저렇게 입고 다녀.. 뭐 대단한 사람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거 아니야.. 시선만으로도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은 겪어 본 사람들은 다들 공감할 것이다. 꼭 주먹으로 맞아야 상처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시작은 딸내미를 위해서였지만 나 또한 행복한 시간이었다.

내가 물었다.

“내가 제주나, 강원도 같은 해변가에 살게 된다면 이렇게 입고 다니는 것이 가능할까?”

“엄마, 그냥 여기서 마음껏 즐기세요”


놀아본 사람이 잘 놀고먹어본 사람이 맛난 음식을 찾는다는 것처럼 온통 살색의 군단 사이에 누워있으면서도 나는 힐끗힐끗 너무나 안정적인 이들의 해변휴식을 감상하고 있었다.

‘개인주의가 이런 때는 좋네’

거리낌이 없는 움직임은 그 모든 환경과 행보가 일상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어서 나는 그 순간 그들이 부러웠다. 내가 이곳의 일원이라면… 바랐다.




뜨거운 태양아래 누웠다 엎드리기를 반복하다 문득 한 남자가 떠올랐다.

그는 첫 만남에서부터 무언가 조금 어설퍼보였다. 60대 중반의 남자.

14명의 순례길 동행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던 나이의 남자였지만 나처럼 초자의 어설픔과는 조금 다른 독특한 언행들이 내 시선을 끌었었다. 적극적으로 단체에 어울리지 않았고 그렇다고 혼자서 하는 모든 행동이 여유롭지도 않았었다. 경험이 많아 보이지 않지만 불안한 혼자가 되기를 원하는 것 같은 사람.


70대 짝꿍을 세심하게 챙기는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은 처음과 달리 날이 갈수록 그는 과감한 자유를 드러내고 있었다. 삼각팬티만 입고 숙소를 활보하기 시작하면서 여기저기서 질타 섞인 불만들이 터져 나왔었다. 급기야 “옷 좀 입고 다니세요” 화난 목소리들이 쏟아졌다.

“여기 애들 다 이렇게 입고 다니는데 걔들은 되고 나는 못해요?”

“젊은 애들이 그런다고 어른인 우리까지 그래야 해요?”

“자신의 몸매에 자신이 있나 봐요?”

“거 다른 사람들 시력도 좀 신경 씁시다”


그럼에도 그는 멈출 생각이 없었다. 작정하고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고 싶다는 목표를 정해두고 온 사람처럼 행동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날이 추워 옷을 껴입어야 하는 날이 많았으니 극적인 해방을 꿈꾸었다면 만족하지 못했을 것 같았다.


순례길에서의 이런 자유라…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감수할 수는 있었다. 그 힘든 길에서 온전히 이해되는 것이 과연 얼마나 있었나. 명확한 지향점 없는 나의 여행도 이해받지 못했는데 말이다. 타인을 이해시켜야 할 이유는 없는 길이었다. 처음부터.


가 그 길에 조금씩 버리고 싶었던 것이 스스로를 탓하는 비겁함이었듯이 그에게도 어쩌면 하면 안 된다는 그 굴레가 도전 중의 하나였을 수도 있겠구나 시드니 해변에 누워서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성공했듯 그도 홀가분해졌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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