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5B - 이젠 안녕
요즘에는 출근이 정말 즐겁다. 일하러 가는 기분이 아니라 놀러 가는 기분이다. 제주도에 와서 일하는 것도 즐겁게 느껴지는 것 같다. 이제는 옆에서 베이킹하는 것도 잘 도와주며 호흡이 척척 잘 맞는다. 꾸덕한 브라우니와 초코칩이 콕콕 박혀있는 스콘을 만들었는데 잘 나왔다. 베이킹에 재능이 좀 있는 듯..? 스콘 위에 달달하게 초코를 뿌렸는데 비주얼은 이상하게 보여도 맛은 있었다. 즐겁게 해오던 베이킹이 이렇게 마지막일지 몰랐다. 사진을 보면서 아쉬운 마음을 달래 본다.
제주도에 와서 바쁘게 지내다 보니 맛있는 식당들을 방문하지 못했다. 최근에는 여유가 생기니깐 주변에 맛집들을 찾아다니고 혀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 게하 바로 근처에 있는 우진해장국을 먹어보았다. 여기는 아침 6시에 오픈하자마자 방문을 하지 않으면 웨이팅을 해야 하는 맛집 중에 찐 맛집이다. 구수하면서 찐득한 맛이 특색인 고사리육개장은 부드러워서 입에서 살살 녹는다. 두툼한 빈대떡은 겉은 바삭하고 안에는 촉촉하니 진짜 맛있다. 사진으로 보기에는 작아 보이지만 엄청 크고 육개장도 양이 많아서 2개를 시키면 3명이서 나눠먹으면 딱 좋다. 기다리는게 부담되면 포장을 하면 5분도 안 되어서 빠르게 나온다. 그리고 빈대떡도 주문하자마자 바로 만들기 때문에 10~15분만 기다리면 맛있는 고사리육개장과 빈대떡을 맛볼 수 있다. 사람이 가장 많은 시간대에는 1시간은 기본이고 많으면 2시간까지 기다린다고 한다. 그래도 해장국은 뚝배기에 먹어야 진짜 맛있다. 기다렸다가 혹은 일찍 가서 식당에서 바로 맛보는 것도 추천한다.
그리고 제주도에서 해장국하면 또 떠오르는 은희네 해장국을 방문했다. 제주시청 근처에 있는 본점에 가면 주문한 지 3분도 안 되어서 뜨끈한 해장국을 맛볼 수 있다. 진한 국물이 일품인 소고기해장국 안에는 선지와 당면 콩나물과 소고기가 듬뿍 들어가 있다. 양이 푸짐해서 성인 남자가 한 그릇 다 먹기도 벅차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미 육지에도 은희네 해장국은 많다고 하는데 아마 본점을 따라가지 못할 것 같다. 왜냐하면 제주도 내에서도 본점이 아닌 다른 곳을 가보았는데 맛이 조금씩 달랐고 양도 달랐다. 역시 본점에서 먹어야 진정한 은희네 해장국을 먹었다고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나는 우진과 은희네 둘 다 맛있지만 은희네 해장국이 내 스타일이다. 지금까지 우진은 2번 은희네는 4번 먹었기에 횟수가 나의 취향을 말해주는 것 같다. 제주도에 오게 된다면 꼭 본점에서 먹어보기를 바란다.
제주도에는 많은 식당이 있다. 그중 일식점이 많이 보인다. 다양한 일식집 중에서도 여기는 안에 들어서자마자 일본 가정집을 떠오르게 하고 외부에 있는 정원도 잘 꾸며놓은 식당 중 하나이다. 돼지고기를 갈비양념에 볶고 바로 앞에서 불향을 입혀주는 쿠로보타동과 부드럽고 고소한 맛이 특색인 에그 인 헤븐은 밥에 비벼먹든 빵에 올려먹든 둘 다 환상적인 맛이었다. 나중에 또 방문하게 된다면 이 가게의 대표적인 메뉴인 비주얼부터 인상적인 황게카레를 먹어봐야겠다. 어느 분위기 있는 식당에 가면 그 분위기가 맛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마치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플레이팅도 이쁘게 해 놓았다. 그리고 좋은 사람과 같이 먹는 음식은 더욱 맛있다.
바로 근처에 제주도에서 유명한 프리미엄 디저트 우무를 방문했다. 우무는 가게 안이 생각보다 많이 협소해서 1팀씩 입장이 가능한 가게였다. 들어가기 전 옆에 우무 소프라고 핸드크림, 립밤, 비누를 파는 곳이 있어서 구경하러 들어갔는데 안에 인테리어도 깔끔했고 직원분이 오셔서 신기한 말랑말랑한 우무비누를 사용해 보고 핸드크림을 발라주었다. 누가 봐도 영업을 하는 듯한 느낌이었지만 이런 친절한 서비스를 받다 보면 손에는 핸드크림이 들려있다. 그래도 향이 정말 좋아서 하나 사서 채원이에게 선물로 주었다. 그리고 우무 매장으로 들어가서 종류별로 하나씩 구매했다. 맛이 너무 궁금했고 게하에 사람들도 챙겨주려고 다양한 맛을 사갔다. 막상 첫 입을 먹어보니 식감은 특이했지만 개인적으로 맛은 평범한 푸딩맛이었다. 그런데 뭔가 일반 푸딩보다는 건강한 맛이었다. 제주 해녀분들이 채취한 우뭇가사리로 친환경적인 비누와 건강한 디저트를 만드는 곳이니 한 번쯤은 방문해 봐도 좋을 것 같다.
이렇게 제주도를 온몸으로 느끼는 사이에 내가 가장 싫어하는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바로 이별의 순간이다. 같이 지내면서 밥을 먹고 추억을 남기면서 식구가 되어버린 사람이 떠난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나는 기록하기로 했다. 한 명씩 떠나보낼 때 사진과 글을 남겨서 기억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형이 해주던 음식들과 조언들 그리고 함께 보낸 시간들을 잊지 못할 거야! 육지에서 곧 보자 잠깐 사이에 정이 많이 들었는데 이렇게 글을 쓰면서 또 추억하게 되네 덕분에 제주 생활 잘 적응하고있어!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