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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버 Mar 17. 2023

영화 판소리 복서 리뷰

우린 잊혀지지 않는 존재가 되고 싶다.

스포일러 가득하니 주의하세요



약 4년 전, 깊어지는 가을 어느 날 봤던, ‘판소리 복서’는 재미나 완성도를 떠나 가을과 참 잘 어울리는

영화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영화 내용이 가을을 소재로 한 것은 아니지만, 잊혀져 가는 것들에 대한

기억의 향수를 환기시키는 작품의 분위기는 한 해가 저물어 가는 쓸쓸한 가을날과 어딘지 잘 어울렸던

작품이었습니다. 그 뒤로 해마다 가을이 깊어지면 이따금 이 영화가 생각났습니다. 언젠가 다시 보겠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크게  흥행하거나 큰 재미를 주었던 작품이 아닌 이상 다시 본다는 게 말처럼 쉽지는

않습니다. 얼마 전, 우연히 케이블 tv를 통해 보고 접할 수 있었고, 별로 대단해 보이지 않는 이 작품의

여운이 제 머릿속을 4년이 넘게 떠나지 않게 했던 것은 존재감 없는 복서였던 병구의 기억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아련함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영화는 펀치드렁크 진단을 받은 병구가 관장에게 머뭇머뭇 거리며, 복싱을 다시 하겠다는 결심을 밝히는

교회에서 시작됩니다. 체육관 전단지를 우선 다 돌린 뒤에나 복싱을 시작하자면서 우회적으로 병구의 말을

거절하지만, 병구는 이해하지 못하고 기뻐하며 전단지를 돌리기 위해 교회를 나갑니다. 하지만, 이내 다시

교회로 들어와서는 관장에게 좀 전에 자신이 했던 말과 행동을 모두 잊은 듯, 머뭇머뭇 거리며 복싱을 다시

하고 싶다는 말을 하는 병구의 모습에서 펀치 드렁크 증세가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펀치 드렁크와 도핑테스트에서 실격이 되어 복싱계에서 완전히 퇴출된 병구는 여전히 복싱 체육관에

있습니다. 물론, 선수는 아니고, 그렇다고 온전한 코치의 역할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관장이 복싱을 하겠다는 병구에게 직업훈련을 추천하는 장면으로 병구가 선수도 코치도 아닌 어정쩡하게 체육관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 때 전성기를 누렸던 복싱 체육관은 이젠 관원이 모두 빠져나가고, 선수 한 명과 다이어트를 위해 등록한 비만의 아이 둘과 다리가 불편한 관장뿐입니다.

이미 옛 것이 되어버린 브라운관 tv는 툭하면 고장 납니다. 전성기를 지난 복싱과 낡은 체육관, 다시 복싱을

할 수 없는 병구와 이제는 잊힐 브라운관 tv, 그리고 세상을 떠난 여자친구 지연... 이제 곧 잊힐 것들이

병구 주변을 감싸고 있습니다.     


펀치 드렁크 증세의 빠른 진행으로 이제 곧 치매로 인한 과거의 기억을 모두 잃을 병구는 자신이 기억이 남아

있을 때, 앞으로 잊힐 존재와 기억들이 이루지 못했던 것을 이뤄내고 싶어 하는 듯 보입니다.

그 절박함은 브라운관 tv에도 감정이입을 해 새 tv 가격보다 더 많은 수리비용을 감수하고 고쳐달라고 할

정도로 절박합니다. 마치 고장 난 브라운관 tv의 폐기가 마치 자신의 폐기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죠.     


고장난 브라운관tv를 악동들에게서 지키는 병구네요.


중증의 펀치 드렁크 증세를 갖은 병구가 한 때 꿈꿨던 복싱은 ‘판소리 복싱’이라는 아주 특별한 복싱입니다.

거기에는 자신과 판소리복싱을 함께 했던, 지금은 세상을 떠난 여자친구 지연에 대한 애착이 남아 있습니다.

지연과 함께 꿈꾸었지만, 펼치지 못했던 판소리 복싱을 자신의 모든 기억을 잃어버리기 전에 세상에

보여주고 싶은 욕망은 여전합니다. 병구의 상황을 아는 관장은 병구가 다시 복싱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유일한 선수였던 교환이 떠나고, 체육관을 정리하기로 한 관장은 병구의

어쩌면 마지막이 될 소원을 들어주며, 다시 선수로 등록해 시합에 뛸 수 있게 노력합니다. 결국, 시합을

갖게 된 병구에게 관장은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복싱을 하고,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판소리 복싱’ 도 한 번 마음껏 해보라고 합니다.

다만, 언제든지 수건을 던질 준비를 하고 병구의 마지막 시합을 맞이합니다.     


시합에 나선 병구가 예전의 기량을 다시 찾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결국, 처참하게 얻어맞으며

그로기 상태에 놓인 병구에게 장구를 치는 민지가 보이고, 그에 맞추어 병구는 놀라울 정도의 움직임을

장구 장단에 맞추어 판소리 복싱을 마침내 보여줍니다. 모든 사람들이 놀라는 가운데, 상대를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던 병구는 회심의 어퍼컷을 날리지만, 허공을 가른 주먹과 함께 링 바닥으로 쓰러집니다.

바닥에 쓰러진 병구에게 민지와 장관이 달려오자, 병구는 자신이 이상한 꿈을 꾼 것 같다는 말을 하면,

횡설수설합니다. 죽은 여자친구 지연이 언젠가 들려주었던 애인이었던 두 남녀가 서로 다른 남녀를

만나 결혼했다는 단순한 이야기조차 온전히 기억하지 못하는 병구는 남녀가 그냥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이야기로 더욱 단순화시켜 말해줍니다. 기억을 못 하는 것 일 수도, 어쩌면 자신의 희망을 이야기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그 후에 이야기는 병구가 민지와 행복한 순간들을 보내고, 체육관은 판소리 복싱을

배우기 위한 관원들로 가득 차 있고, 병구에게 존경을 표시합니다.

현실이 될 수 없었던 병구의 꿈은 펀치 드렁크로 현실을 잊어가는 병구의 머릿속에서만 펼쳐진 것이었습니다.

신명 나는 판소리 복싱 경기도, 죽은 강아지 포먼의 세 마리 새끼도, 판소리 복싱을 배우기 위해 체육관을

가득 채웠던 관원들도 모두 병구의 머릿속에서만 존재하는 판타지였습니다.     

결국, 지연이 들려주었던 재미난 이야기는 ‘옛날에 병구와 민지가 남녀가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로

병구의 머릿속에서만 해피엔딩으로 끝이 납니다. 해피엔딩으로 끝났지만, 결코 관객에게 행복감이나

편안함을 줄 수 없는 해피엔딩이었던 것은 사실상 병구의 머릿속에서만 존재하는 해피엔딩이기 때문입니다.

잊혀가는 것들에 대해 온몸을 불사르며 기억하고 잊혀지지 않으려 했던 병구의 처절한 판소리 복싱이

다소 과장되고 우습게 묘사되었음에도 그 장면이 결코 웃기거나, 우습게 보이지 않았던 것은 병구의 절박함

때문이었습니다.     


병구가 보인 판소리 복싱은 병구의 머릿속 판타지에서만 존재하는 안타까운 장면이죠. 다시 보면, 우스운 장면입에도 안타까움이 더 앞섭니다.


우리는 언젠가 잊힐 존재입니다. 우리의 삶과 기억, 흔적 모두 잊힐 것입니다. 시간이 흐르면, 우리가

그렇게 소중하게 여겼던 존재, 가치 모두 잊히겠지만, 잊힐 존재들이 살았던 그 현실의 치열함과

가치마저 희석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잊혀 가는 것들에 대한 가치를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면,

하찮은 삶을 살았고, 하찮은 존재였어도, 하찮은 기억조차도 그들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모두 소중하고

삶의 전부였고 절박했던 것들입니다. 우리네 인생이 다 다르듯이 다른 이가 우습게 보이는 ‘판소리 복싱’

따위를 한다고 해도 그 판소리 복싱을 하는 그 당사자에게 소중하고 절박한 가치입니다.

세상에 빛을 못 보고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해 따뜻한 시선을 담은 이 영화도 언젠가는 잊히겠지만,

누군가에게 절박했던 것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 영화의 시선은 너무나 소중한 것 아닐까요?               

사족 1:

잘 만든 영화지만, 판소리 복서라는 타이틀을 들고 나온 이상, 마지막 병구가 보여준 판소리 복싱 장면이

너무 부족했습니다. 좀 더 신명 나게 판소리 복싱 장면을 보여주었다면 병구의 안타까운 바람이 관객들에게

좀 어필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어쨌든 복싱 영화는 시합 장면이 중요하니까요...     

사족 2: 

병구가 절박하게 판소리 복싱을 하려는 것은 지연에 대한 미련과 연민일 텐데..

        지연에 대한 병구의 기억과 감정을 좀 더 세심하게 묘사했으면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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