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버 Sep 19. 2023

길 막고 뭐 하는 거야!

어느 소심한 라이더의 슬픈 자가수리 입문 동기

난 자전거 수리점에 절대 가지 않는다. 내 자전거에서 발생하는 고장은 모두 스스로 해결한다.

솜씨는 형편없다. 덕분에 주인 잘못 만난 자전거만 고생이다. 지금 타는 자전거는 싸구려 생활자전거인데,

무려 10년을 버틴 것을 보면 꽤 맷집이 좋은 놈이다. 그래도 자전거에게 미안하기는 하다.     



제 에피소드 속 실제 모델이지만, 이젠 고인이 된 제 추억의 자전거 입니다.부평에서 강화, 서울 곳곳을 누빈 놈.고물상에서 7천원에 장례를 치뤘어요. 물론, 제가 돈을 받고.

자전거 수리점에서 당한 황당한 바가지와 불쾌했던 경험이 나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았다.

부품 교체 가격을 두 배 받는 일은 수 차례였고, 가장 황당했던 경험은 구입한 지 얼마 안 된 자전거 

바퀴에 펑크가 났는데, 튜브와 타이어가 불량이라는 수리점 사장의 말을 듣고, 새 자전거의 튜브와 

타이어를 삼만 원을 주고 교체한 일이었다.

당시에는 수리점 사장이 그렇게 말하니, ‘네, 네.’ 하고 돈을 지불하고 교체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일이었다. 새 자전거의 타이어와 그 안에 있는 튜브가 모두 불량일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라는

의문이 집에 가는 길에 뒤늦게 들었고 또 당했다는 생각에 낙담을 하며 자전거를 끌고 왔었다.

그 당시 펑크 수리비가 삼 천 원이었으니, 괜한 돈 삼만 원을 날린 것 같아 분한 마음이 

한 동안 가시질 않았다.

그 뒤로, 불량이라고 했던 튜브와 타이어를 그 수리점에 두고 왔는데, 어떻게 했을까 상상하면 또 괜한

근심에 열받아 자다가 이불 킥을 차기도 했다.     


내가 피해망상에 빠져 착각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몇 번의 불쾌한 경험은 자전거 수리점을

점차 멀리하게 되었다. 그리고, 자전거 타면서 흔하게 겪기도 하고, 쉽게 자가 수리가 가능한 펑크 정도는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스스로 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자전거 수리점을 절대 안 가겠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자전거의 구조에 문제가 생기거나, 또는 전문가만 수리할 수 있는 영역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생각했으니까. 게다가 가끔 당하는 수리점의 바가지도 나름 이해하려고 했다.

자전거 수리점으로 크게 성공하거나 떼돈을 벌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없었고, 실제로 내가 방문했던

많은 자전거 수리점들이 영세한 모습이기도 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들른, 한 자전거 수리점에서 일어난 에피소드로 자전거 수리점을 가느니, 차라리

자전거를 버리거나 타는 것을 포기하겠다고 마음먹은 사건이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15년 전의 일이다.(물론, 15년 동안 자전거 수리점에 한 번도 간 적이 없다.)

몇 번의 경험을 통해 펑크 정도는 스스로 해결하기 시작하던 무렵이다.

문제는 내가 덜렁된다는 점이었다. 펑크 난 타이어를 다 수리하고 기뻤는지, 바퀴를 자전거에 장착하고서는

너트를 손으로만 대강 조이고, 몽키로 완전히 조여야 하는 것을 깜빡 잊고 말았다.

그 상태로 신난다고 무려 부평에서 서울까지 긴 원정길을 나섰다. 지금의 고척 구장 근처를 지날 무렵,

갑자기, 너트를 조이지 않은 게 생각났다. 자전거에서 내려 확인해 보니, 역시나 자전거에 달린 바퀴를 

조여 주는 너트가 손으로 힘없이 풀리는 것 아닌가? 서울까지 무사히 간 것이 다행이었다. 운이 나빴으면 

신나게 달리다가 바퀴가 분리되는 신기한 장면을 사람들에게 보여줄 뻔 한 상황이었다.

그냥 몰랐으면 계속 달렸을 텐데, 너덜너덜하게 조여진 너트가 달린 바퀴를 타고 자전거를 계속 

탈 강심장인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자전거 수리점에 들러서 고치려고 하니, 이게 또 수리를 맡길 정도는 아니었다. 그냥

몽키로 너트를 두세 번 정도 힘 있게 조이면 되는 것이었으니까....     


뭐 대단한 것을 빌리는 것도 아니고, 자전거 수리점에서도 돈을 받고 몽키로 두세 번 조여주는

것이 참 애매한 상황이었기에 가까운 수리점에 들러 사정을 말하고, 정중하게 몽키를 빌려달라고 부탁했다. 

내 말을 들은 수리점 주인은,

“뭐라고!”

40대 중반의 수리점 사장은 버럭 하고는 매우 불쾌한 표정을 짓더니, 아무 말 없이 그냥 안쪽으로 들어갔다.

이때까지만 해도 살짝 놀랐을 뿐, 먹고사는 도구인 연장을 빌려달라고 했으니,

‘기분 나쁠 만도 하네.’

라고 내 딴에는 매우 너그러운 마음으로 수리점 사장의 화를 넉넉한 마음으로 이해했다.

그리고, 그냥 나왔어야 했는데, 머저리였던 나는 쫄래쫄래 가게 안으로 들어간 사장을 쫓아갔다.

몽키를 빌려줄 줄 거라는 착각을 하고 말이다.

사장은 자기 자리에 앉더니, 내게 그야말로 우렁찬 목소리로 악을 썼다. 

“배달 들어오는데, 길 막고 뭐 하는 거야!”

어찌나 크게 소리를 질렀는지, 내가 돌아봤을 때, 중국집 배달원이 어리벙벙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쨌든 배달원이 지나가는 길목을 내가 막고 있는 상황이라, 

“아이고, 죄송합니다.”

하고 배달원에게 자리를 비켜주자, 배달원이 매우 민망한 표정으로 내게 목례를 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살면서 그렇게 자신의 감정을 온전히 실어서 화를 내는 사람은 처음 봤다. 

여태껏 살면서 누군가의 고함 소리에 그렇게 온몸의 신경이 쭈뼛 서는 기분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마치 자신의 악감정을 모두 실은 듯 한 화를 들은 나는 순간적으로 주눅이 들었다.

좀 더 솔직히 말하면 겁이 났던 것도 같다. 그러다 잠시 생각하니 어이가 없기도 하고, 화도 막

나려고 하려는 순간 사장의 마누라가 내 팔을 잡고 가게 밖으로 끌고 나갔다.


어이가 없기도 하고, 화도 나면서, 그 순간이 창피하기도 한 나는 정신이 없었다.

사장의 마누라는 평소 거의 쓰지 않을 것 같은 낡은 공구만 담긴 공구상자를 내게 내밀었다.

“원래 연장 같은 거 빌려주는 거 아닌데.”

당연히 몽키는 없었다.

가게 안을 들여다보니 사장은 짬뽕을 쳐 먹느라 정신이 없었고, 사장이 짬뽕에 정신이 팔린 순간 난

사장 마누라에게 소심하게 화를 냈다. 내 자전거 바퀴를 가리키며,

“이것 봐요. 몽키로 두세 번 조이면 끝나는 거 아니에요!”

라며 살짝 언성을 높였다.

“.......”

팔짱을 낀 사장 마누라는 나를 비웃듯이 쳐다보더니,

“그럼 이거 필요 없는 거죠?”

라며 공구상자를 들고 가게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하도 기가 막혀서 가게 안을 들여다보니, 짬뽕 먹는 사장이 마누라와 대화를 몇 마디 나누면서 후련한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그 후련한 표정이 짬뽕이 얼큰해서 일 것 같지는 않고, 내게 정말 후련하게

버럭 소리를 지른 것이 통쾌해서 짓는 웃음 같아 기분은 더욱 나빠졌다. 그렇다고 다시 가게에

들어가서 따지기도 애매한 상황이 되어서 그냥 그 수리점을 떠났고, 15년이 지난 난 지금도 이 이야기를

쓰면서 다시 열이 받는다.     


돈 안 되는 놈은 행여나 나중에 손님이 될지라도 당장은 응징해 버리겠다는 태도로 내게 악을 지른

사장의 모습은 자전거 수리점을 갈 일이 생길 때마다 떠올랐다. 결과적으로 이성으로 누르던 여러

자전거 수리점에서의 불쾌했던 내 안의 감정을 모아 폭발하게 만든 셈이었던 모양이다. 남의 일처럼

말하는 것은 악플을 다는 식의 복수도 모두 포기하고 불쾌한 마음을 지우고 싶어 얼른 잊었는데, 자전거 

수리점에 갈 일이 생길 때마다 그때의 일이 사장의 고함과 함께 저절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 사장은 그냥 화풀이로 한 악이 내게는 상처가 되어, 내 인생에서 전국의 수많은 자전거 수리점을

지워버렸다는 것을 알려나?     


티핑포인트라는 말이 있다. 작은 변화들이 모여 누적되다가 아주 작은 변화가 큰 변화의 기폭제가

되어 큰 변화를 초래한다는 말이다. 내게 악을 썼던 사장과의 만남이 내게는 자전거 수리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확정하는 티핑포인트였던 것 같다. 나중에는 자전거에만 쓰이는 전문수리공구가

비싸도 거리낌 없이 구입해서 스스로 해결했다. 어차피 자전거 수리점에는 절대 안 갈 것이고, 난

자전거를 고쳐야만 하니까...     


자전거를 수리해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크랭크 분리공구로 작업해야 하는 난이도가 약간 높은 작업인데, 이것도 합니다.

가끔은 생각한다. 

누군가에게 아무렇지 않게 내 감정을 노출시켰는데, 그게 그 사람의 감정에 미묘한 파장이

되어 티핑포인트에 다 다른 순간 무서운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15년째 자전거 수리점에

절대 안 가는 내 모습을 떠올리며 늘 조심하려 노력한다. 내가 누군가에게 던진 작은 조약돌이 만든

파장이 어쩌면 훗날 감당할 수 없는 해일이 되어 돌아올지 모른다는 경각심을 갖고 말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