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sgo Jan 15. 2023

여기서 당장 나가세요!

고급아파트 쉼터의 딜레마

지난가을, tv광고에서 많이 보던 고급아파트 단지가 많은 도로를 지나던 도중 자전거 펑크가 났다. 

게다가 비까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해서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때마침, oo파크라는 아파트 단지 안을 보니 고급아파트답게 20층은 족히 되어 보이는 건물 세 개가 병풍처럼 아름답게 둘러서 있었고 그 앞에 쉼터로 

꾸며놓은 듯한 벤치에 들어서니 고맙게도 지붕까지 있어서 비를 피하면서 펑크를 때울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이었다. 그동안 펑크를 때우는 작업을 무수히 많이 해왔기에 약 20분 정도면 충분히 작업을 끝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우선 벤치 앞에 자전거를 뒤집어 세워 놓은 후 가방을 벤치에 놓았다. 그리고, 가방에서 

몽키와 펑크패치, 휴대용 펌프를 꺼내어 작업준비를 마치고 서둘러 펑크를 때우기 시작했다.

쉼터에 벤치가 두 개가 있는데, 내가 한 곳을 다 차지하고 있는 점이 아무래도 부담스러워 서둘렀다.

지나가던 할아버지가 비어있는 벤치에 앉아서 내가 작업하는 모습을 보시더니 펑크를 때우는 도구를 항상

 들고 다니냐, 정말 고칠 수 있냐면서 이것저것 물어보시더니 대단하다며 칭찬을 해 주시고 사라지셨다.

대단한 기술은 아니지만, 칭찬을 들으니 비 맞고 펑크 나서 짜증 났던 감정은 일순간  사라지고 괜히 

우쭐한 마음에 기분은 오히려 좋아졌다.


                                                   

비 오는 날 라이딩을 즐기지 않는 다면, 저렇게 곤혹스러운 느낌인데, 펑크까지 나면.... 환장합니다.

                                              


하지만, 그 기분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한참 뒷바퀴를 분해해서 나온 튜브의 펑크 난 부분을 찾느라 귀를 튜브에 바싹대고 집중하는 중이었다.

갑자기 검고 거대한 무언가가 내 앞에 서서 나를 내려다보는 눈길이 느껴졌다.

처음엔 경찰인 줄 알았다. 깔끔한 검은 제복을 입고 기름기를 잔뜩 먹은 머리는 단정하게 넘겨진 40대 

중반의 남자였다. 가슴에 oo경비업체 마크가 있는 걸 보고 경비원인 줄 알았다.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아... 예, 펑크가 나서 잠깐 수리 좀 하려고요."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하긴 럭셔리한 분위기의 아파트라서 약간 마음이 찜찜하긴 했다. 괜히 미안한 마음도 들고...

"죄송합니다. 웬만하면 도로가에서 하려고 했는데, 비도 오고, 펑크 수리할 때는 조용한 곳에서 펑크 

난 곳을 찾아야 하거든요. 금방 하고 나갈게요."

"안 됩니다. 당장 나가세요. 여기는 입주자들 쉼터입니다.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죄송해요. 그런데, 밖에 비가 와서 그러니까 이번 한 번만 봐주세요."

그러자 경비원도 고개를 돌려 내리는 비를 잠깐 보더니,

"안 됩니다. 아저씨가 이러시면 저희가 징계받습니다. 지금 당장 나가세요."

자신의 말을 더 강조하려는 듯, 완강한 표정으로 두 손으로 x자를 그으면서 안된다고 강조를 했다. 

할 수 없다. 나가야지...

"알았어요. 그럼, 이 바퀴만 조립해서 당장 나갈게요."

"안됩니다. 지금 당장 이거 모두 다 갖고 아파트 밖으로 나가세요."

내 가방을 툭툭 치며 경비원은 완강한 태도로 말을 하고, 그나마 다행스럽게 아파트 건물 쪽으로 바쁜 

듯이 사라졌다. 너무 무안한 마음에 나도 그 자리에 잠시도 있고 싶지 않았다. 계속 있다가는 봉변을 

당할 것 같기도 싶었다. 가방을 메고, 뒷바퀴가 빠진 자전거 본체를 들고 비 오는 아파트 밖 인도에 갖다 놓고, 나머지 바퀴와 부품, 수리도구를 갖고 아파트 밖으로 일단 나왔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그나마 비를 덜 맞을 것 같은 커다란 가로수 밑에서 펑크 난 바퀴를 조립하고 

약 10분을 질질 끌고 가다가 공원에서 수리를 마치고 다행스럽게 비도 멈춰서 다시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른 동네 아이가 와서 놀면, 아이들도 너 나가 그럴까요?


집에 와서도 찜찜한 기분은 영 가시지 않았다.

고급아파트에 살아보지 못했고, 주변에 잘 사는 사람도 없어서 그런 아파트에 가본 적도 없어 그 쉼터라는 

공간이 외부인에게 그렇게 폐쇄적인 공간인 줄 몰랐다.

그 쉼터라는 공간은 일종의 '사랑방'과 같은 역할도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물론, 입주자들만을 위한....

나처럼 너저분하게 수리를 하겠다고 자리를 차지하는 모습은 입장을 바꿔 생각하면 입주자의 눈에는 보기 

싫을 것이다. 그래서 외부인이 드나드는 걸 봉쇄하고 경비원칙에도 정해놓은 것 같다.

내게 나가라고 하고 사라졌던 그 경비원이 오히려 인간미가 느껴진 묘한 기분은 그 경비원이 경비원칙에 

충실했지만, 내게 어느 정도 여유는 주었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아쉬운 점은 비까지 오는 상황에서 나를 나가라고 했던 경비원의 태도는 공식적인 입장이고, 

마음 불편한 원칙이었다. 이제 고급아파트 단지를 지나다가 쉼터를 보면 보이는 것처럼 여유 있어 보이지도 

사랑방 같은 편안한 느낌도 안 들 것 같다.

겉모습은 사랑방 같은데, 결코 사랑방의 용도로는 쓰이지도 않고, 그것을 용납하지 않는 모습은 자신들의 것을 지키려고 애를 쓰는 자들의 모습과 너무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에도, 펑크가 나서 서민아파트 단지 안의 쉼터에서 고친 적이 있는데, 그때는 오히려 나른해 보이는 

경비원이 다가와서 필요한 도구 없냐고 친절을 베푼 기억이 있었다.

예전에 부촌의 대명사로 유명했던 타워팰리스에 투표소가 설치되었는데, 선관위 직원들마저 출입을

제한하는 바람에 뉴스가 된 적도 있었다. 가진 것은 많으니 철저하게 지키고 싶고, 그러니 완강한 태도로 

외부의 어떤 것도 자신들의 아파트에 함부로 들어서면 안 된다는 입장도 이해된다.

하지만, 그만큼 자신들이 세상과 격리되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몰인정에 익숙해지는 것은 자각하고

있을까?

'사랑방' 운운하는 내가 세상변화를 너무 모르는 사람이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펑크 수리할 때 어떤 할아버지가 내게 보여준 적대적이지 않고 다소 우호적인 모습은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마저 그렇게 차갑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힘차게 솟은 건물이 견고한 느낌도 들지만, 그만큼 외부와 차단된 것처럼 보이는 것은 기분 탓일까요?


나중에 내가 고급아파트의 경비원이 된다면 나도 똑같이 행동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시스템으로 구축해 놓으면, 전통적으로 이어져 온 인정, 베풂도 모두 차단될 수밖에 없다.

딜레마다....

그 경비원을 욕할 것도 아니고, 그 아파트의 원칙을 욕할 수도 없다.

몰인정해지는 세상에 적응하며 사는 수밖에 없다.

다만, 인간답다는 것에 대한 관심을 잊지 않는 다면 이런 허무한 딜레마를 메워줄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 희망한다.

작가의 이전글 '최후의 라이오니'를 읽고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