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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버 Feb 04. 2023

많이 무서웠었니?

장애견을 위한 나의 작은 배려


자전거를 즐겨 타는 내게 우리 동네에서 약간 벗어난 곳에서 자주 목격되는 개가 있다.

그 녀석을 만나면 아무리 바빠도 자전거에서 내려 천천히 끌고 간다.

자전거와 내 모습이 녀석의 눈에서 완전히 벗어날 때까지...

물론, 얼마 안 되는 거리이다.

효과가 얼마나 있을지 모르지만, 녀석을 위한 나의 작은 배려다.


늘 다니던 길로만 다니기 마련인데, 자주 마주치는 개가 있다.

길거리에서 개와 마주치는 것이 무슨 대단한 일이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녀셕은

늘 바닥에 웅크리고 앉아서 길을 가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매번 볼 때마다, 그렇게 웅크려 앉아 있으니 어디 아픈가 싶어 절로 눈길이 갔다.


                                               


이때만 해도 이곳으로 가는 길이 언덕이 가파른 곳이 많아 걸어서만 다녔다.

어느 날, 조금 먼 곳으로 갈 일이 있어 자전거를 타고 녀석이 있던 자리 앞을 지나가는데,

그날은 녀석이 보이지 않았다. 아파서 드러누웠나?라는 생각을 하는 순간,

대문 안에서 갑자기 녀석이 튀어나와 나를 향해 매섭게 짖어대기 시작했다.

매번 힘없어 보이는 표정과 달리 한 마리의 맹수처럼 윗잇몸을 다 드러내며 사정없이

짖어댔다. 그 모습에 깜짝 놀라기도 했지만, 더 놀랐던 것은 녀석의 다리였다.

한쪽 다리가 짧아서 딛지 못하고 있었다.

세 다리로 아슬아슬하게 걷는 녀석의 모습에 많이 놀랐다. 녀석이 왜 매번 바닥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는지 그제야 알 수 있었다. 녀석을 뒤로하고 도망가듯이 얼른

그 자리에서 벗어나기 위해 힘차게 페달을 밟았다. 내가 도망가듯 달려 나가는데도,

녀석은 여전히 매섭게 짖고 있었다. 한 50여 미터쯤 달려가자, 그제야 녀석이 짖는

소리가 잦아들었다. 뒤 돌아보니, 세 다리로 서서 나를 바라보는 녀석을 보니 화가 나기

보다는 짠한 생각이 절로 들었다.


                                       

짖다가 주춤한 사이 다가가서 사진을 찍었다.


이때만 해도, 녀석이 그날따라 왜 그렇게 짖어댔는지 몰랐다.

문제는 자전거였다. 그 이후에도 녀석 앞을 걸어서 지나칠 때는 여전히 웅크리고

앉아 있었지만, 자전거를 타고 나타난 날은 어김없이 그 세 다리로 비틀비틀거리면서도

힘차게 달려와 내게 매섭게 짖어댔다. 자그마한 강아지이지만, 윗잇몸을 드러내며

짖어댈 때는 정말 살기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가끔은 개가 짖기 시작하면, 할머니가

부리나케 달려 나와 강아지를 혼내면서 안고 들어가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자전거를 타고 가면 어김없이 사납게 짖는 행동은 여전했다.


그렇다고 그 깟 자그마한 강아지 때문에 자전거를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고, 시내로 나가는

길이 그쪽 길 밖에 없어서 여전히 자전거를 타고 그 길로 다녔다. 매번 짖어대고, 난

도망가듯 피했는데, 녀석이 나를 만만하게 본 것인지 어느 날은 자전거 턱 밑까지 달려와

짖어댔다. 녀석이 자전거에 너무 가까워 자칫 깔릴 것 같아 자전거에서 내려 녀석을

가만히 바라보니까, 이내 기가 죽은 표정을 지으며 자기 집 대문 안으로 주춤거리며 들어갔다.

세 다리로 절뚝거리며 돌아가는 녀석의 모습이 너무 안 쓰러웠다.

대문 안으로 들어간 녀석은 원래 겁이 많은 놈이었는지, 빼꼼히 눈을 내밀고 살피다가

내가 계속 있는 것을 보고는 아예 숨어버렸다.
 

                                                 

자세히 보면, 머리 앞만 살짝 내놓고 있다.


예전에 개의 행동패턴을 다룬 다큐를 본 적이 있다.

개들이 갑자기 사납게 짖어대다가, 환경이 바뀌면 얌전해지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행동에는 개의 과거경험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개들도 과거의 폭력이나 사고 등의 충격적인 사건을 겪으면 그

후유증이 나타나는데, 본능이 이성보다 발달된 개의 경우는 공격적인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사람의 발만 보면 사납게 짖는 개의 경우는 과거에 사람에게 발로 심하게 맞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내가 만난 강아지의 경우는 분명 두 발 달린 오토바이나

자전거에 치여서 한쪽 다리를 잃었던 걸까?


익숙해지는 모든 것들은 다 친근감을 갖게 된다.

그것이 비록 건물이나 길, 벽 등 생명력이 없는 것이라 해도 자주 보면 친근감을 느끼고,

아주 자잘한 추억마저 생긴다.

동네에서 보는 나와는 상관없는 강아지 한 마리지만, 자주 보다 보니 녀석의 모습이

안쓰럽다. 녀석이 사고로 입은 충격이 아마도 두 발 달린 것에 대한 트라우마로 남았나 보다.


그 뒤로, 녀석의 집이 가까워지면 난 일부러 자전거에서 내려서 끌고 간다. 되도록 천천히...

언젠가는 자전거를 끌고 가다, 먼발치에 세워놓고 녀석의 앞에 앉아 "쭈쭈쭈..." 하며 손짓을 했더니,

가만히 나를 보던 녀석이 다가왔다. 머리를 쓰담쓰담해 주니 녀석이 좋아하는 듯싶었다.

아주 순한 녀석이었다.

말이 통한 다면,

"세상 모든 자전거가 다 나쁜 거 아니야. 네가 조금 운이 없었을 뿐이야."

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자전거를 끌고 나타났던 나의 다정한 모습으로 인해 자전거에 대한 공포가

작게나마 줄어들었으면 하는 나의 작은 바람이 녀석에게 조금이라도 통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앞으로 녀석과 친하게 지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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