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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버 Nov 15. 2023

자전거를 주차장에 버려둔 이들에게

자전거를 즐길 줄 아는 자 만이 자전거를 탈 자격이 있다??


아파트 단지 내 자전거 주차장은 늘 만원이다. 그래서 주차하기 꽤나 힘들다. (차를 생각하면 안 된다. 

여기서 주차의 어려움은 내 자전거를 끼워 넣을 틈이 없다는 뜻으로 이해해야 한다.)

나름 노하우가 있어 빽빽이  꽂혀 있다시피 한 자전거들을 살짝살짝 옆으로 옆으로 밀착시켜 공간을 

만든 뒤, 내 자전거를 밀어 넣는다. 

사실 노하우라기보다는 노가다에 가깝다고 해야겠지만, 그런 식으로 하지 않으면 도난 위험이 높은 

길거리에 세울 수밖에 없다. 엄연히 주인이 있는 내 자전거를 노숙자로 만들 수는 없기에 30도가 넘는 

폭염이 닥쳐도, 나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작업한 뒤,  내 자전거를 안전하게 주차장에 밀어 넣는다. 

그렇게 애를 쓰고 난 뒤, 타지도 않으면서 공간만 차지하고 그야말로 썩어가고 있는 자전거를 보면 화가 

난다. 자전거를 사랑할 줄 모르는 인간들이라니...


타지 않는 자전거라는 것을 어떻게 아냐고? 그냥 보면 안다. 길거리에 노숙자가 지나가면, 

"저 죄송하지만, 정말 궁금해서 그런데, 노숙자예요?"

라는 돼 먹지 않은 질문을 하지 않아도 딱 보면 알 수 있지 않은가?

주인에게 버려진 자전거는 딱 보면 알 수 있다. 주인에게 버려졌다는 것을. 다만, 버려진 시간의

경과에 따라 어떤 녀석은 노숙자의 신세로, 어떤 녀석은 도저히 회복할 수 없는 이미 고독사에 처해

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게 버려진 녀석들은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주기적으로 정리한다. 물론, 함부로 정리하지는 못한다.

일정 기간 동안 등록스티커를 발부하니, 그걸 받아서 자전거에 붙이면 폐기하지 않는다는 공고가 

주민들이 자주 다니는 곳곳에 붙여진다. 그럼에도 이미 버려진 녀석들을 다시 찾는 주인은 그리 많지

않다. 그렇게 버려진 녀석들은 관리사무소에서 부른 트럭에 실려 알 수 없는 어딘가로 끌려간 뒤, 아마도 

최후를 맞이했을 거다.



관리사무소에서 정리하고 나면 대강 이 정도의 분위기입니다. 쾌적하져?

자전거를 정리하고 나면, 한 동안 쾌적해진 자전거 주차장 덕분에 언제든 편하게 주차할 수 있지만,

그 기간은 두 달을 넘기지 못한다. 다시 타지도 않을 자전거들이 하나둘씩 좀비처럼 다시 모여들어 자리를

차지하고, 꿈쩍도 안 한다. 왜 자전거를 사다 놓고 안 타는 걸까? 하는 짓으로 봐서는 정리하기 이 전에

자전거를 버렸던 인간들이 행동과 크게 다르지 않아 그 인간들이 다시 벌인 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전과자들이 자꾸 같은 범죄를 반복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사를 오고 가는 가구수를 생각하면, 같은

인간들이 벌이는 일이라는 생각을 도저히 지울 수 없다.


자전거 정리한 지 두 달이 지났는데, 한쪽은 다시 꽉 찯고, 한쪽은 저렇게 엉망인 상태로 다시 채워지고 있습니다.


이 인간들은 왜 타지도 않을 자전거를 사서 괜히 자리만 차지하고 버리는 걸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고 한다. 펑크가 나거나, 고장이 나면, 귀찮아서 미루어 두었다가 잊어버렸는데,

그 사이에 자전거가 타고 싶지 않을 만큼 낡아서 대책 없이 그냥 방치하는 경우가 제일 많다고 한다.

그 외에도 운동을 목적으로 샀다가 운동을 거의 포기해서. 낡은 자전거를 버리고 싶지만 비용이

들어서인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 외에도 여러 이유가 있을 거다. 개인사가 다 다르듯, 버리는 이유도

다 다를 거다. 


그렇게 각 자의 개인적인 사정에 따라 버리지만, 그들에게 공통점은 있다. 자전거에 대한 애정이 없다는 

점이다. 자전거에 애정이 없으니, 자전거와 함께 했던 즐거운 시간에 대한 애정도 그리 많지 않을 거다.

자전거를 애초에 즐기는 마음이 없으니, 사소한 고장에도 그냥 방치해 두는 것은 아닐까? 

자신이 수리할 것도 아니고, 자전거 수리점에 끌고만 갔다 오면 예전처럼 즐겁게 자전거를 탈 수

있는데 말이다. 수리비에 돈이 든다. 바쁘다(뭐든 이런 변명이 제일 듣기 싫다!) 등등 어떤 변명을

해도 그냥 자전거를 타는 것이 즐겁지 않기 때문일 거다. 그리고, 그 근간에는 자전거에 대한 애정이

없기 때문이지 않을까?


뭐든 같이 오래 할수록 우정도 깊어지고, 사랑도 깊어진다.

자전거도 마찬가지다. 자전거와 함께 하는 시간이 늘어갈수록 자전거를 타는 것이 즐거워지고, 

그냥 자전거가 좋아진다. 신기한 것은 자전거를 타고 멀리 갈수록 자전거에 대한 애정은 더 깊어진다.

자전거로 강화도를 여행할 때, 길도 잃고, 개떼에 수차례에 쫓기는 등 여러 고생을 하고 나서 

강화도에 도착한 뒤, 잠시 자전거에서 내려 쉬면서 서 있는 자전거를 보고 있다가 절로 말이 나왔다.

"주인 잘못 만나 고생이 많다. 그래도 이렇게 경치 좋은 곳에 여행 오니까 좋지? 수고했다."

녀석은 아무 대답도 없었지만, 그저 내 옆에 꿋꿋이 서 있는 모습 자체에서 든든함을 느꼈었다.

그 순간, 내게 자전거는 단순히 탈 것이 아니라, 내겐 친구이자 동지가 되었다.


강화도에 갔을 때, 수 없이 개떼에 쫓기다가 잠깐 여유가 생겨 한 방 찍고 잽싸게 도망갔음. 저 멀리 개 보이시나요? 결국, 저 놈에게 따라 잡혀서 고생했지만...

먼 곳으로 자전거를 타고 이동하면, 자전거와 나는 자전거와 나가 아니라, 하나의 몸으로 인식된다.

이동하는 동안에는 하나가 되어야 하니까. 그 시간이 길어지면, 자전거에 대한 정도 깊어진다.

정이 깊어지면, 자전거와 함께 하고 싶은 시간은 당연히 늘어난다. 우정과 연인 간의 사랑처럼 말이다.

그다음부터는 연인의 모든 모습이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것처럼 자전거의 모든 모습에 깊은 애정을 느낀다.

1단에서 7단으로 기어를 변속한 뒤, 페달에서 느껴지는 묵직한 변화와 함께 날아갈 듯 한 자전거의 

스피드는 어디든 갈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박진감과 함께 마음을 뒤 흔든다. 힘들고 피로하다 싶을 때는

7단에서 2단 내지 3단으로 기어변속을 하면 마치 내 종아리를 잡고 뒤로 당기는 듯한 느낌이 어느새

사라지고 다리에 아무런 힘도 없이 자전거가 참 편하게도 잘 간다는 아늑함을 느끼기도 한다.

자전거와 가까워지면, 공간은 확장되고 그 사이에 자전거에 대한 애정은 깊어져 어디를 가든 자전거와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이쯤 되면, 자전거를 주차장에 버려두고 고독사하게 만드는 일은 절대

발생하지 않는다.


자전거를 사다 놓고 오늘도 어디에 주차해 두었는지 기억나지 않는 한 때 라이더(라고 할 수 있을까?)였고,

라이더를 꿈꿨던 이들은 한 번쯤 얼마나 자전거 타는 내 모습을 즐기고, 자전거를 즐겼을까? 를 한 번 

생각해 보기를 바란다. 

최고급 자전거, 최고금 용품으로 무장하고 국토종주를 할 듯한 기세로 자전거를 타는 마니아가 아니라면,

자전거를 타는 목적은 소소할 것이다. 가까운 거리를 이동하거나, 거기에 더해 운동도 하려는 목적.

대부분 저 두 가지 목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거다. 그런데, 자전거에 애정이 없으면, 매일 출퇴근하거나

가까운 거리를 이동할 때도 그저 힘들고, 때로는 고통스럽기만 할 뿐, 전혀 즐겁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다시 마을버스를 찾고, 고장이 나도 고칠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다.


사실, 인간의 감정인 애정을 강요하는 것 같아 미안한 감이 없지 않다. 하지만, 세상에 자신이 하는 그

어떤 일이든 애정이 없는 일은 지속이 가능하지 않다. 애초에 자전거로 뭔가를 계획했다면, 그 계획에

자전거를 즐길 마음이 있었는지 한 번 고민했으면 좋겠다. 한 번의 착오는 있을 수 있지만, 애정도

없이 다시 자전거를 하나 구매해서 뭔가를 하고 싶다면, 내가 자전거 타는 즐거움을 얼마나 느끼는지

한 번쯤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제발 부탁인데, 자전거 안 탈 거면 자전거 주차장에 처 박아 놓지 말고, 베란다에 잘 모셔두든지

했으면 좋겠다. 오늘도 안 타는 자전거로 북적이는 주차장에 자전거를 넣을 공간이 없어 이리저리 

배회하는 거 정말 짜증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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