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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버 Nov 21. 2022

'아버지의 해방 일지'를 읽고.

이념의 틀에 갇힌 자기 삶의 해방을 꿈꾸었던 한 아버지의 이야기

종전이 된 지, 70여 년이 지났고, 전쟁을 겪은 세대는 이제 소수라고 할 정도로 역사 속의 일이 되었지만, 

이념 문제는 지난 일이라고 하기에는 여전히 정치나 선거에 큰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빨치산이었던 아버지를 모델로 한 이 소설은 조금이라도 발끝을 잘못 디디는 순간, 나락으로 빠질 위험이 

있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작가는 어느 매체 인터뷰에서 농담처럼 말했습니다.

“그래서, 일단 죽여 놓고 시작했습니다. 하하하”

픽션으로 그리면서도 아버지의 죽음을 농담처럼 말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그만큼 부담감이 컸던 것일까요?

소설은 아버지의 죽음으로 시작되지만, 의외로 경쾌하게 시작합니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시작한 이야기는 3일 동안의 장례과정을 따라갑니다. 그 과정에서 아버지 삶의 현재와

과거를 오가면서도 그 폭을 확장시켜, 아버지와 맺었던 좌우의 이념과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던 다양한 

인간관계에서 숨겨진 아버지의 본모습이 드러냅니다. 

이야기는 사회주의자였던 아버지의 삶에 대한 정당성이나 변명 따위는 늘어놓지 않습니다.

비 전향 무기수였다가 수 십 년 만에 출소한 동료의 에피소드에서 그 점이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완벽한 사회주의자인 줄 알았던 그가, 막노동 3일을 하고, 몇 개월 동안 입원했었다며 하소연을 하면서,

“노동이... 노동이... 힘들어.”

나중에는

“노동이... 난 너무 무서워”

라며 사회주의자로서 평생을 힘든 삶을 꿋꿋이 살아왔던 사람들의 입에 나온 말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믿기

힘든 농담 같은 말을 하면서 박장대소를 합니다. 사회주의자들이 ‘노동’의 신성함과 그 노동을 착취하는 

자본가들을 개혁의 대상으로 여긴다는 점을 생각하면, 결코 웃음이나 농담이 나올 수 없음에도 

아버지가 입버릇처럼 말하던 “오죽허면 그랬겄냐?” 라는 상대를 이해하는 인생관은 사회주의라는 이념마저

개의치 않습니다.     


아버지의 삶을 평생 옥죈 것은 4년 동안의 빨치산 활동이었습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아버지의 조카는 연좌제에 걸려 육군사관학교에 시험 칠 기회도 얻지 못했습니다.

빨치산의 딸인 작가의 삶도 그리 만만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아무리 자기 확신이 확고하다 해도, 

주변 사람들마저 자신의 과거 때문에 같이 발목을 잡히는 모습을 감당해내기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만일, 자신의 과거 전력 때문에 아버지가 조용히 살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해 봤습니다. 그저 전직 빨치산, 사회주의자로서 남한사회에서 낙인찍힌 그가 운신할 폭은 큰 한계가 있었을 것이고, 동네 사람에게도 

주변 사람에게도 한 때 잘못된 선택으로 인생을 망친 사람 정도로 여기고 말았을 것입니다. 빨치산 4년의 

자기 확신의 시간이 평생을 옥죌 수 있었지만, 아버지는 늘 입에 달고 다녔던 말인 ‘오죽허면 그랬겄냐?“ 

라는 말을 마치 자신에게 하듯 자신의 인생관을 꿋꿋이 지켜나갑니다.  

   

장례식장에 모인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에서 아버지는 자신의 삶을 이념의 틀 안에만 가두어 두지 않았다는 

점이 드러납니다. 집에서는 오지랖 넓어 골치 아픈 존재로 여겼을지 몰라도, 아버지는 자신의 삶을 살려고 

노력하며 이념, 나이, 성향 같은 것을 따지지 않고 폭넓은 인간관계를 가졌습니다.

심지어 다문화 가정의 여고생이었던 담배 친구가 등장하기도 합니다. 삐뚤어질 수 있었던

여고생을 ‘오죽하면 그랬겄냐?’ 라는 마음으로 다독이며 같이 담배를 나눠 피우면서도 검정고시를 

준비하게 하고, 사회에 안정되게 정착할 수 있게 얼마 없는 자신의 머리를 시험용으로 연습하면서 미용사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라고 격려했습니다. 그런 담배 친구였던 아버지가 떠나자, 여고생은 장례식장에서 

두 번의 절을 하는 예절도 모르면서 나타나 눈물지으며 아버지를 원망하는 듯, 애도합니다.

“머리카락도 얼마 없으면서 자기 머리로 연습해서 미용사 준비하라고 하더니...”     


빨치산의 딸로서 아버지를 늘 한심하게 바라봤던 딸도 장례식장에 모인 다양한 사람들을 통해 비로서야 

아버지가 이념에 묶인 자신의 삶에서 해방하기 위해 부단히 도 노력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사회주의자로서의 아버지가 아닌 인간적인 아버지의 본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런 아버지를 겨우 4년 동안 

빨치산으로 활동했던 백운산에 유해를 뿌릴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의 평생에 거친 진짜 삶은 어쩌면 

시골마을인 구례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있었으니까요. 딸은 아버지의 유해를 아버지의 추억이 있던 곳에 

골고루 뿌립니다. 여고생과 함께 담배를 피우던 곳에도 조금 뿌리고, 그 가루를 여고생과 함께 흠뻑 맞기까지 합니다. 마지막으로 여고생은 유해를 아버지가 자주 가던 하동댁 술집이 있던 자리에 뿌리면서 말합니다.     


"할배가 그랬는지, 언니가 여개서 썽을 냈담서? 할배가 아줌마 궁뎅이 두들겠다고?"

 아무튼 아버지는 제 허물도 제 입으로 까는 데 선수다. 그것도 이 어린아이를 상대로.

"그때게 할배 맴이 요상허드래. 아부지라는 거이 이런 건갑다, 산에 있을 적보담 더 무섭드래. 겡찰보담 군인보담 더 무섭드래."


딸이 싫어하는 것을 두려워할 만큼 딸을 사랑하는 마음이 보통의 아버지들과 다를 것이 없었음에도

자신은 아버지가 죽는 순간까지 사회주의자로서의 아버지의 모습만 기억하고, 보려고 한 것이 미안했던

것일까요? 아니면, 안도감이었을까요? 두 가지의 감정 모두 딸로서는 아버지 살아생전에 제대로 느끼지 못한 

감정이었기에 눈물이 하염없이 흐릅니다.    

  

잘못된 사상과 가치관은 그것 나름대로 판단할 가치가 있으면서도 우리는 때로 그 선입견이 너무 

강력하면서도 자신의 판단이 정당하다는 생각에 폭력적인 판단과 생각으로 인간적인 삶의 본모습을 

놓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지 한번 깊게 생각해 보게 하는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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