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가 본 2024 여의도 불꽃축제 후기
두려움은 다가올 미래에 대한 불확신에서 근거한다. 실체가 확실한 두려움은
미리 피하거나, 피할 수 없다면 포기하고 다가올 불행을 받아들인다.
불확신의 실체가 더욱 커질수록 두려움은 공포로 확장되어 수동적으로 만들다 못해, 의욕을
꺾어 결국 아무것도 못한다는 철학적 고민을 이맘때 즈음에 열리는 여의도 불꽃축제의
어마어마한 인파 때문에 번번이 포기했던 나는 매년 느낀다.
해마다 여의도 불꽃축제 소식이 들려오면 머릿속이 부산해진다.
소문으로 듣던 그 어마어마한 불꽃쇼를 올 해는 놓칠 수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인터넷에 떠도는 어마어마한 인파사진을 보면 가기도 전에 질려버린다.
그 인파사진을 보면, 도저히 떠오르지 않을 수 없는 인파에 관련된 공포가
물밀듯이 밀려든다.
지옥철을 연상케 하는 지하철의 인파, 걷기 조차 어려울 것 같은 공원의 인파,
행여나 용변이 급하면 화장실에 갈 수나 있을까? 제 때에 전철을 타고 집에
올 수 있을까? 등등 인파에 대한 공포의 상상력이 자가발전을 하다가
결국 포기한다. 더군다나, 몇 년에 일어난 끔찍한 사건은 더욱 나를 위축시켰다.
올해 불꽃축제 당일에는 잠에서 깬 뒤, 인터넷을 보다가 그날 불꽃축제를 한다는 것을
그제야 알게 되었다. 마침 할 일도 없고 해서 오늘은 가야겠다는 마음을 먹은 동기는
간단했다.
난 돗자리, 애인, 친구, 간식이 없다. 홀가분하게 혼자 가서 서서 볼 것이기에
사람이 많든 말든, 상관없다는 생각이 든 것은 전날 마신 술의 숙취가 아직
풀리지 않아 복잡한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고, 두통과 함께 잔존하는
술기운의 무모함이 내 안에 숨겨져 있던 결단력을 이끌어 냈다.
생각해 보니, 내 의지를 꺾는 인파 사진을 올린 이들은 그곳에서 사람들 사이에
찡겨서 사진을 찍은 것 아닌가? 사진에 보인 인파들이 두려웠으면 그곳에 가서
사진을 찍을 리가 없었겠지. 그런 단순한 깨달음을 얻게 되자 안 갈 이유가 없었다.
결심은 했지만, 그렇다고 무턱대로 아무 곳이나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어쨌든 사람이 무지무지 많은 것은 사실이니까. 인터넷으로 소위 말하는 명당자리를
지도와 대조하며 검색을 했다. 검색을 하며 숙취도 어느 정도 사라지면서, 다시
인파 사진들을 보자 수년간 축적되었던 공포가 스멀스멀 밀려 올라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인파 속에 있는 사람들도 견딜만하니까 갔을 거라는 점을 다시 상기하면서
인파에 대한 생각은 접었다.
하지만... 화장실은 어떡하지??? 그건 답이 없는데..라는 생각이 든 순간
그냥 옷을 챙겨 입고 나왔다. 어렵게 내린 결정을 번복하고 싶지 않았다.
몇 년을 벼르고 별렀는데.... 물통을 가져가지 말까 하다가 혹시 몰라서
물을 채워 작은 가방에 넣어 나왔다.
수년간 쌓인 공포는 쉽게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다. 소심한 나는 혼잡한 그
중심부에 들어가기보다는 주변을 살피며 서서히 접근하기로 마음먹었다.
불꽃 축제의 중심지인 여의도 한강공원과 마포대교는 깔끔하게 포기하고
건너편 이촌한강공원으로 목적지를 정했다. 원래는 마포역에 내려야 하지만,
사람이 많을 것을 우려해 한 역 전인 공덕역으로 향했다. 부평에서 출발하기에
1호선에서 5호선으로 한 번 환승하면 도착하지만, 역시나 사람이 많을 것을
우려해 신도림, 합정에서 환승을 하며 최대한 여의도 공원 근처 역을 바깥으로
배회하는 코스로 이동해 공덕역에 도착했다.
역시나 공덕역은 대체적으로 한산했고, 그곳에서 마포역 방향으로 접근했다.
마포역 근처에 다가서자 사람들이 확 늘어났다. 경찰과 행사진행요원도 눈에 띄게
부척 늘었다. 상황을 살피며 융통성 있게 최대한 골목길을 이용하며 접근하겠다는
나의 생각은 현장을 모르는 혼자만의 생각이었을 뿐이었다. 어디를 가든 사람은
많았다. 골목길이라고 생각한 곳도 어느 순간 난 스마트폰은 주머니에 넣고 사람들을
따라가고 있었으니까...
한참을 따라가다 보니 한강이 보이는 인도에 사람들이 돗자리를 깔고 앉아
간식을 먹는 모습이 보였다. 평소라면 그냥 길거리 인도였는데... 그곳이
소위 말하는 숨은 명당이라는 곳이었다. 이건 뭐지, 하면서 그곳에 우두커니
사람들 사이에 서 있다가 상황을 살피기 위해 좀 더 이동하다가 주유소를
발견했다. 다행히 화장실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기에 볼 일을 보고,
행여나 소변이 마려울 것을 염려되어 목이 말라도 참았던 물을 벌컥벌컥
마시고 나니 괜한 긴장감도 함께 풀렸다. 게다가 그렇게 걱정하던, 화장실 문제도 근처
주유소에서 언제든 볼 수 있으니 편안해진 마음을 느끼면서 다시 한번 참았던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불꽃놀이가 시작되었고, 오랜만에 보는 불꽃들은 아름답기는 했지만, 왠지 심심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던 것은 지역축제에서 보던 형식적인 불꽃들보다 조금 더 크기는 하지만, 그게
그렇게 특별하다는 생각이 안 들었다. 더군다나, 인파에 치일 것을 감안하고 무리해서 온 것을
생각하면 그랬다. 첫 공연이 끝나고, 두 번째 공연에서는 좀 더 불꽃이 화려해졌다.
그래! 이 정도는 되어야지.라는 생각을 했지만, 다시 올 일은 없다는 게 내 솔직한 심정이었다.
솔직히 심심하게 보다가 그래도 고생하며 왔는데, 의미라도 남기고 싶어 불꽃들에 관한 나름
철학적 의미를 생각하며 스마트폰에 메모했다.
인생은 불꽃처럼 찰나 같은 순간들이고, 그 찰나 같은 인생을 살면서 우리는 저 불꽃처럼
화려한 삶을 동경하고 누군가를 미워하고 저주하는 보잘것없는 존재라는 식의 메모를
지껄이듯이 스마트폰에 써서 저장했다.
세 번째 공연은 시작부터 달랐다. 마치 쌍둥이처럼 양쪽에서 불꽃이 터지기 시작했는데,
그 크기도 그 전과 달리 두 배는 커진 듯싶었다. 그 화려함에 넋을 놓은 것은 불꽃 때문만이
아니라 하늘과 땅을 뒤흔드는 천둥 같은 소리에 가슴이 뛰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불꽃이 화려해질수록 스마트폰을 들고 찍는 사람들이 늘어났지만, 난 온전히 육안으로 즐기고
싶었다. 찍어봤자, 현장에서 본 감동을 스마트폰 영상에서 다시 느낄 수 없는 것은 뻔했기 때문이다.
불꽃공연의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정말이지 폭죽을 있는 대로 쏟아부어서 터트리는 듯, 하늘과 땅이
진동하는 것은 물론, 다리가 후들후들 거릴 정도의 압도적인 폭죽과 소리에 오감이 뒤흔들리며
그 감동에 빠져들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일본, 미국, 한국의 순서로 공연이 진행되었고, 마지막이 주최 측인 한화의
공연이었기에 그렇게 화려했다는 것을. 공연을 보고 집에 가는 길에 화려하면서도 강렬한 불꽃의
잔상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스마트폰에 적어놓았던 헛소리들은 모두 지우고, 내년이 얼른 왔으면
하는 바람이 든 것은 가슴속에 잊히지 않을 감동의 불꽃이 타고 산화되면서 지워지지 않을
흉터처럼 잔상을 남겼기 때문이다.
그 뒤로 한동안은 멍하니 있을 때마다 불꽃축제에서 봤던 불꽃들이 눈앞에서 신기루처럼
터지는 현상을 경험하기도 했다. 그리고, 든 생각! 내년에 또 가야지!
불꽃들을 보고 알았다. 매년 보러 가는 사람들에게는 인파는 문제가 아니었다 것을.
일 년에 한 번 있는 멋진 쇼가 주는 가치가 모든 고생을 상쇄한다는 것을.
역시나 뭐든 하고 보면 별거 아닐 때가 많다.
도전하는 자먼이 결실의 열매를 따 먹을 수 있다.
내년에는 진짜 무지무지 사람 많기로 소문이 난 여의도 한강공원에 가서 바로 눈앞에서
불꽃을 볼 예정이다. 사람들 사이에 찡기거나 말거나. 사람이 많은 데에는 다 그럴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인파에 대한 공포도 사실, 경험해 보면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함께 탄성을 지르고 공감하며 즐거움을 더욱 극대화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플러스 요인이지,
두려워하거나 포기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이쪽은 길이 막혔어요! 다니는 통로에 서 있으면 안 돼요!"
불꽃이 터지면서 계속 들었던 경찰과 진행요원들의 말이었다. 이들의 헌신적인 통제 덕에
축제는 안전하게 끝이 났다. 몇 년 전의 참사는 떠올릴 필요가 없을 정도의 차분한 통제가
있는데, 사람 많다고 몇 년 동안 그렇게 보고 싶었던 불꽃축제를 포기한 내가 미련하게
느껴졌다. 두려움은 극복하는 것이지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는 이런 말을 했지?
"포기는 배추 셀 때나 쓰는 단어다."라고....
벌써 내년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