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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버 Aug 04. 2024

도서관의 아재들

도서관에서 겉도는 일부 아재들

앞으로 할 이야기는 일부 아재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근래 들어 도서관의 풍경이 2~3년 전에 비해 많이 달라졌다.

바뀐 풍경의 주인공은 60대 중반의 중년들이다. 이들이 늘어난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을 정도다.

50년대 말의 베이비부머 세대의 은퇴가 가속화된다고 하더니, 그 인원들의 상당수가

도서관에 유입된 것으로 보인다.


도서관에 중년 여성도 늘었지만, 아재들이 훨씬 많이 늘었다. 지금 은퇴한 세대가 활동하던 주요시기는

가부장적이고, 남성 중심의 사회였기에 사회활동도 남성들이 압도적으로 많았기 때문인 듯싶다.


문제는 겉도는 아재들이 심심치 않게 눈에 많이 띈다는 점이다.

내가 자주 보는 아재들은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공무원 직군에서 은퇴한 것 같았다.

이들을 자주 발견할 수 있는 곳은 도시락존인데, 이곳에서 시사프로그램에 나온

패널들처럼 점잖게 다리를 꼬고 앉아, 교육구조에 대한 꽤 심각한 이야기를 나누며 비판한다.

"과도한 이런 경쟁구조에서 교육이 바로 설 수 있겠어?"

엄지와 검지를 v자로 만들어 턱에 괴고 진지하게 듣던 상대방은,

"그것 보다 표준화된 커리큘럼에 의한 교육은 세계화에 뒤쳐질 뿐만 아니라..."

우연히 옆 자리에 앉아 도시락을 까먹던 난 커리큘럼이 무슨 말인지 몰라

고개를 갸우뚱하는데, 두 사람은 '그렇지, 그렇지' 하며 심각하게 맞장구를 친다.

무슨 말인지 몰라도, 이들이 허세를 부리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마치 도시락존에

있는 사람들 다 들으라는 식 큰 목소리 말하고 있었으니까.

가관인 것은 나누던 대화가 툭 끊기면, 어색한 침묵이 한 동안 이어져도 좀처럼 자기

자리에 가서 공부할 생각을 안 하고 버틴다. 그러다가 누군가 새로운 화제를

던지면, 신나게 떠든다.  사람들 들으라는 식으로.

그리고, 저녁때가 되면 그 아재 셋은 자신의 가방을 둘러 매고, 함께 도서관을

같이 나선다. 은퇴한 지, 얼마 안 되어 경제적인 여유가 있을 테니, 소주 한 잔

나누면서 낮에 미처 풀지 못한 허세를 술기운을 빌려하겠지.


이들은 그래도 양반이다.

목적 없이 온 듯한 아재들은 수시로 졸다가 이내 엎어져 잔다.

그나마 얌전히 자면 다행이지만, 대부분 그 나이가 되면 건강한 몸을 갖은 아재는 별로

없을 것이다. 그 때문일까? 열에 아홉은 정말로 '드르렁드르렁' 코를 골며 잔다.

이것도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니 괜찮다.

신문이나 보며 시간 때우겠다고 온 아재는 신문을 5~6개를 깔아놓고 보다가 도서관 직원에게

제지당하고, 신문 두 개를 깔고 꾸벅꾸벅 졸다가 깨더니, 허리를 툭툭 치고는 소파를

붙여놓고 누워 자다가 다시 직원에게 제지당한다.


도서관은 목표가 있다면, 새벽 6시부터 와서 폐관하는 저녁 10시까지 공부를 해도

순식간에 시간이 지나가고, 부족하다. 반면, 목표가 없거나 성의 없이 앉아 있으면 세상에 없는

졸리고, 지루한 곳이다. 도서관에서 대강 시간 때우고 가려는 젊은 학생들이 책이나

강의보다 자꾸만 스마트폰을 만지작 거리며 손에서 놓지 못하다가 이내 엎어져서 자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되는데, 같은 이유 때문이라 생각한다.


10년 전쯤에는 나이 든 사람이 도서관에 그리 많지 않았다. 거의 젊은 사람들 위주였다.

하지만, 노인분들 어느 정도 계시기는 했다. 대부분, 은퇴한 뒤, 신문이나 독서를 하면서 은퇴생활을 

즐기려 오신 듯한 분들이었다. 평소에도 독서를 하셨을 테니, 교양이 있어 이 분들은 점잖게 독서만 

하고 가신다.

그런 모습을 보면 품격 있게 늙는다는 것이 저런 것이구나 싶었다.

하지만, 종종 도서관에 시간 때우려고 작정한 듯, 오는 일부 노인들은 앞서 언급한 에피소드처럼

코를 마구 골면서 자거나 휴게실에 드러눕고, 신문을 독차지하고 보는 등등 민폐를

끼쳤는데, 10년 전에 무례했던 노인들이 종종 보여주던 모습은 며칠 전에 봤던 아재들의

민폐와 놀라울 정도로 닮았었다. 도서관 게시판에는 그런 노인들의 모습에 젊은 학생들이

불만을 종종 표시하곤 했다.


은퇴 새로운 시작을 위해서, 혹은 은퇴생활을 즐기기 위해 도서관을 선택했다면

탁월한 선택이라 생각하지만, 자신의 모습이 남들 보기에 흉하게 보인다면,

그건 잘못된 은퇴설계가 아닐까?


물론, 묵묵히 열심히 공부하는 아재들이 훨씬 많다. 그들의 모습을 보면 짠한 느낌도 든다.

나이 든 사람을 지나치게 공경하는 문화가 강고하다 보니, 나이 든 사람이 채용되기

어려운 환경이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 만만치 않을 텐데도 도전하는 모습은

아름답다.


나이가 많던, 적던 열심히 하는 모습은 아름답다.  하지만, 그 반대일 경우 흉한 것은 역시나

나이가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다. 단, 나이가 든 이들은 눈치를 잘 안 보니,

더욱 두드러진다는 점을 알고 있었으면 좋겠다.

도서관에 온 목적을 잃고, 우왕좌왕 하며 흉한 모습으로 은퇴 뒤의 삶을 꿈꾸신 것은 아니잖아요?


하시는 공부 열심히 하시면, 나이가 있어도 저렇게 멋있어 보일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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