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일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버 Nov 08. 2024

한 달  반 만에 겨울이라도 온 거니?

가을의 상실과 시간의 감각 상실에 대하여...

지난 11월 5일, 귀가 길에 온도가 6도까지 떨어지는 바람에 얼어 죽는 줄 알았다.

유독 길고 지독했었던 여름의 잔상일까, 후유증일까? 가을이 왔음에도 왠지 덥다는

느낌에 10월 말까지 여름에 입던 얇은 긴바지와 접은 셔츠를 계속 입었었고, 11월

들어서는 춘추용 작업조끼 하나를 더 걸쳤을 뿐이었다. 날이 계속 좋아 일기예보도

잘 안 보고 다니다가 지난 5일 그 얄팍한 차림으로 자전거까지 탔기에 실제 온도 6도씨

보다 더한 혹한을 느끼며, 과장이 아니라 입이 덜덜 떨릴 정도로 그야말로 얼어 죽는

줄 알았다. 집에 오는 내내 생각했다. 섭씨 6도가 이렇게 추웠나?

하긴, 인도에서는 영상 5도에도 얼어 죽는 사람이 수 십 명 매년 발생한다고 하니까.


저 정도는 입었어야 했는데


지독했던 올여름에 한참을 시달렸더니, 28도와 30도, 33도, 35도의 미세한 차이는 분명히

아는데, 6도, 10도, 15도에 관한 감각은 완전히 무뎌졌다. 거기에는 수년간,

봄, 가을이 실종되다시피 지나치게 짧은 탓도 있었을 거다.

다음 날에도 비슷한 온도가 예보되었고, 오랜만에 가을 점퍼를 입었지만, 그 정도로는

추위를 막을 수는 없었다. 어제보다는 덜 했지만 역시나 덜덜덜 추위를 느끼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면서, 오늘도 다시 생각은 섭씨 6도가 이렇게 추웠나? 좀처럼 가을에서 겨울로 가는

온도에 감이 잡히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기가 막힌 일이다. 정확히 기억한다. 9월 19일. 끝날 줄 모르던 열대야의 마지막 날이었다.

이 당시, 9월을 지나 추석까지 이어진 열대야가 지겨워,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일기예보를 

들여다보았기에 정확히 열대야가 끝나는 날을 기억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그다음 날부터 시원해

진 것도 아니었다. 대체적으로 9월 말까지는 여름 같은 날이 계속 지속되었었다. 


불과 한 달 반 전까지는 열대야가 지속되었고, 낮더위는 거의 한 달 전까지 지속되었는데,

불과 한 달 사이에 추위를 느낄 정도로 날씨가 변하다니. 자연현상이지만, 이건 좀 너무

한 거 아닌가 싶어도 항의를 할 곳도 없다. 하긴, 나를 포함해 우리 모두가 만든 현상이니까.


매년 가을이 되면, 쓸쓸하고 허무함이 느껴지는 것은 날씨 탓만은 아니었다. 올해도 또 이렇게

허무하게 보내는 게 아쉽기 때문이었다. 올 해는 허무함이 절망적으로 다가온다.

길었던 여름 탓에 아직, 한 해의 중간쯤에 있다고 착각하는 몸의 감각을 그대로 믿고 지나치게

여유를 부리다가 갑자기 어느 순간 불어닥친 찬바람에 한 해가 이제 거의 다 갔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점점 여름과 겨울만 존재하는 세상에서 봄, 가을의 존재는 무뎌지고, 감각마저 이제 사라질

세상이 다가오는 게 두렵다. 하지만, 그 보다 무뎌진 계절의 감각이 시간의 감각마저

집어삼키며 내 인생이 더욱 허무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안타까움 속에 유난히 좋았던

짧은 가을을 아쉽게 보낸다.





매거진의 이전글 두려움을 극복하고 불꽃축제를 봤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