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상

시속 7km로 역전극을 꿈꾸다.

큰 물에서 실력을 늘리다.

by 리버

거의 12년 만에 시내에 있는 공원에서 조깅을 했다.

그동안은 살이 쪄서 뒤뚱거리며 뛰는 모습을 보이기 창피해 동네에 있는 길이 약 250미터로 추정되는

인적이 드문 공원에서 나름 꾸준히 뛰었었다. 거리는 대략 다섯 번 정도 왕복을 해서 총 2.5km~3km 정도.

이젠 실력이 늘었다고 생각해 사람들로 붐비는 시내의 큰 공원에 도전한 결과, 깜짝 놀랄만한 기록이 나왔다.

공원 한 바퀴는 대략 1.4km였는데, 12분이 걸렸다. 이 결과를 나누어 보면 더욱 놀랍다.

700미터를 6분에 뛰었고, 다시 1분 단위로 나누면 대략 110m를 1분에 뛰었다는 충격적인 결과가 나온다.

믿을 수 없는 기록은 죽도록 뛴 내게 걸었냐고 묻고 있었다.

언덕이 있어 속도가 느려진 구간이 꽤 되었지만, 그때도 결코 걸은 적은 없었는데...

그런데, 나한테 추월당했던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 사람들은 뭐지? 100m를 2분에 뛰었다는 건가?

늘지 않았던 내 실력의 의문점은 큰 공원에서 한 번 뛰고 나서 너무나 간단하게 해결되었다.

동네 공원의 거리 측정을 잘못해 본래 내 실력보다 훨씬 잘 뛴다고 착각을 하고 있었던 거다.

그야말로 우물 안의 개구리 밖에 안 되는 실력으로 대단한 마라톤을 하는 듯 착각하고 있었고,

열정은 찻잔 속의 태풍 같은 미미함이 실체였던 거다.


다음 날부터, 운동 장소를 시내공원으로 바꾸었다.

뛰면서 관찰해 보니, 마라톤 대회라도 출전하려는 듯 뛰는 자세와 속도, 몸매 등에서

선수의 향기를 풍기는 이들이 꽤 많았다. 이들은 공원 안에서만 돌지 않는다.

내겐 너무 버거운 공원 안도 좁다고 느끼는지, 공원 외곽으로 뛴다.

그렇게 뛰면, 아마도 한 바퀴 도는데, 2km 이상이 나올 듯싶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건 그들만의 세계이고...

S7300014.JPG 저 멀리 소음벽 밑으로 난 길로 달린다.


뛰다가 보면, 곳곳에 있는 공원 출입구로 외곽에서 뛰던 사람들이 안으로 들어오기도 한다.

대체적으로 그들은 잘 뛰기에 나를 추월해서 달려가도 난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워낙 잘 뛰니까.

그런데, 지난번에는 나와 비슷한 속도로 외곽에서 뛰던 한 녀석이 힐끔

공원 안 쪽으로 시선을 돌리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날은 컨디션이 별로 안 좋아 평소보다 천천히 달리고 있었다.

녀석이 공원 안으로 천천히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들어오면서 힐끌힐끔 쳐다보는 게,

영 신경이 거슬렸다. 왜 저렇지?

공원 안으로 들어와 내 뒤에 붙은 녀석은 그 전과 달리 꽤 빠른 속도로 나를 추월해 앞으로 치고 나갔다.

너무 노골적으로 나를 추월하는 바람에 순간적으로 기분이 상했지만, 그건 괜한 나의 열등감

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을 추스르고 계속 달렸다.

나를 추월한 녀석은 10미터 정도 앞에서 달리고 있었는데, 천천히 달리는 나와 거의 같은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그러든 말든 신경 안 쓰려했는데, 녀석의 속도가 점점 느려져

내가 녀석을 추월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 붙어버리고 말았다.

추월할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그때쯤에 몸이 풀려서 가볍게 뛰어도 속도가 그 전과 달리 훨씬 더

가속이 붙어 본의 아니게 녀석을 곧 추월하게 될 듯싶었다.


몸은 풀렸지만, 워낙 뛰는 게 신통치 않아 숨을 헉헉거리며 뛰었기에 녀석은 내가 자신의

뒤에 붙은 것을 눈치챘던 모양인지 다시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녀석과의 거리는 10미터 이상이 벌어졌다. 신경을 쓰지 않으래야 않을 수 없었지만,

경쟁을 하거나 추월을 하고 싶은 생각도, 실력도, 자신감도 없었기에 녀석이 얼른 꺼져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실력이 안 되는 녀석이 만만해 보이는 나를 보고 오버한 것이 분명했다.

예상한 데로 녀석의 속도는 다시 점점 떨어졌고, 뒷모습만 봐도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그 쯤 되자, 짜증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추월을 했으면 쭉쭉 치고 나가서 안 보이는 곳에 가서

쉬던가... 난 평소에 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특히나 조깅은 워낙 못 뛰니까 뚱뚱한 아줌마가

나를 추월해도 난 개의치 않는다. 하지만, 녀석이 계속 앞에서 알짱거리는 모습이 나를 희롱하는

것처럼 느껴진 것은 뛰고 있기에 심장이 평소보다 빠르게 뛰어 마음의 여유를 갖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다소 열이 받은 나는 녀석을 추월하기로 마음먹고 힘을 내기 시작했다.

녀석의 상태와 몸이 풀린 내 몸 상태를 생각하니, 추월이 가능해 보였다.

속도를 내서 다시 녀석의 뒤에 바짝 붙기 시작하자 녀석은 예상했던 데로 속도를 올리며

다시 앞으로 치고 나갔다. 다시 10미터가 벌어져 거리가 상당한 데도 녀석의 거친 숨소리가

생생하게 들렸고, 녀석의 상체는 심장이 요동을 치는지 심하게 흔들렸다.

나도 오버를 했기에 심장이 터질 것 같았지만, 녀석을 추월할 결정적인 찬스였기에 좀 더 힘을 내 달렸다.

드디어 녀석과 거의 나란히 하며 추월하려는 순간 녀석이 온몸을 쥐어짜듯 숨소리를 토해내며 다시

치고 나갔다. 추월할 기회를 놓친 나는 이게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에 이를 악물고 녀석을 쫓아가며

다시 녀석의 뒤에 바짝 붙었다.

앞에서 걷던 아주머니 한 분이 우리 둘이 뛰는 모습을 뒤 돌아보며, 다소 놀란 눈으로 쳐다봤다.

녀석과의 치열한 경쟁 때문에 숨이 너무 거칠었던 걸까?

아니면, 수많은 러너들에게 추월을 당하면서도 둘이서 벌이는 치열한 추격전을 행여나 눈치챈

것일까?


여기서 지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주머니의 놀란 눈을 보니 그 순간, 정신이 들면서

'내가 지금 뭘 하고 있지?'라는 생각과 함께 다리에 힘이 풀리며 속도를 늦추다가 걸으면서 녀석을 멀리

보내주었다.

걸으면서 110미터를 1분에 주파하는 놈이 누구를 이기겠다고 아등바등거린 내 모습이

얼마나 웃겼을까를 생각하니 픽하고 웃음이 절로 나왔다. 다행히 녀석을 한 번도 추월하지 못해

얼굴을 보지 못했다. 녀석도 아마 내 얼굴을 못 본 듯싶다. 다행이다. 다음에 공원에 나갔을 때,

서로 알아보기라도 그 무안함을 어찌했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한 일이다.


그 유치한 경쟁을 한 효과는 의외로 좋았다. 다음날, 몸이 훨씬 가볍고 그전보다 속도도

훨씬 빨라졌다. 마치, 난 가만히 있는데, 몸이 알아서 스스로 밀고 나가는 매끈한 기분이

들었다. 너무 잘 뛰어져 보폭도 조금 더 넓히고, 속도도 조금 더 붙였는데 그전보다 숨은 덜

차고 앞으로 쭉쭉 나아가는 기분이었다. 속도가 붙어 이제는 달리는 탄력이 생기는 듯한

참으로 오랜만에 느끼는 속도감이었다. 뭐, 그래도 사람들은 여전히 나를 너무나도 편안하게

추월을 하고 있었지만... 마라톤은 나와의 싸움이니까, 개의치 않았다. 어쨌든 실력이

대폭 늘었으니까.


괘씸한 녀석이라고 생각했던 녀석 덕분에 의도치 않게 달리기에 압박을 가했고, 결과적으로

실력이 늘었다. 인적이 드물어 나의 부족한 조깅 솜씨를 감추고 뛸 수 있어 운동을

마음 편하게 할 수 있던 그 작은 공원이 나를 운동으로 이끌었지만, 거기까지가 한계였던 거다.

진짜 실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자극과 함께 내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 느낄 필요가 있어야

내 위치를 알 수 있고, 앞으로 나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역시 큰 물에서

놀아야 한다. 큰 물에서는 나를 자극하는 좋은 경쟁자도 만날 가능성이 높고 발전할 수 있는 기회도

많을 것이다.


그걸 나를 추월했던 친구와 웃기지 않는 경쟁을 통해 배운 거다.

우물 안의 개구리는 자기 집이 있지만, 그 편안함에 안주하고 더 발전할 수 없다.

성장하고 싶으면 역시나 큰 물에서 놀아야 발전의 가능성은 열리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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