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올린 '한적한 가을 풍경'은 아이의 감정 표현을 꽤 많이 수정했던 글이다.
글 속 에피소드에서 수줍음이 많은 아이가 부끄러움을 느끼는 횟수가 너무 많았다.
(매번 써 놓은 글을 다시 보면, 왜 이렇게 같은 표현을 주야장천 반복하는지....)
아이가 자주 부끄러움을 타니, 글이 지루하고 진부해져 그 글을 쓴 내 부끄러움만 남게 되었다.
한 문단에서는 가급적 같은 단어를 두 번 이상 반복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기에 아이가 실제 느낀
감정은 부끄러움이었지만, 일부러 쑥스러움, 수줍음 등의 다른 표현으로 대체했다. '겸연쩍어'라는
표현도 한 번 썼다가 지웠는데, 부끄러움과 비슷한 감정이지만, 주변을 의식해 겸손한 표정을
짓는 듯한 어른스러운 느낌 때문에 다섯 살쯤 된 아이에게는 지나치게 어른스럽다는 느낌에 지웠다.
표현할 단어를 하나 잃고 나자, 부족해진 단어에 더욱 난감해졌다.
잠시 문학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다. 인물이 느낀 감정은 부끄러움뿐이었는데... 게다가 아이이기에 감정선은
어른에 비해 단조롭다. 그럼에도, 부끄러움은 한 번 써야 하고, 다른 표현으로 대체해야 글이 지루해지지
않으니... 이게 문학의 실체일까? 아니면, 뒤늦게 발견한 문학의 단점일까?
시간이 조금 지난 뒤, 썼던 글과 생각이 정리되면서 상황과 인물에 대한 관찰과 인식이 부족해 표현이
한 가지에만 매몰된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문학의 본질에 대해 잠시지만, 대단한 착각을 했음에 아찔했다.
아이가 느낀 감정을 물건 파는 표준 정찰제처럼 '부끄러움'이라는 한 단어로 '퉁 친' 표현은 지나치게
협소한 해석이자 시각이었다. 아이가 당시 느낀 감정은 부끄러움과 쑥스러움, 그리고 당혹감의 삼각
편대 감정의 3차원 속의 어느 지점이 아닐까? 혹은 내가 못 본 감정이 더 혼재되어 있을 지도..
글이란 그 지점을 포착해서 작가의 개성으로 표현하는 것인데.
뒤늦게 부끄러움, 쑥스러움, 당혹감 등으로 쉽게 표현하려 한 것은 글을 쓰는 내가 매너리즘에
빠진 지극히 게으른 태도이고, 더 나아가 궁극적으로 글쓰기를 더 이상 좋아하지 않고, 어쩌면
적성에 맞지 않는 짓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분명한 것은 표현의 자유를
만끽하지 못하니, 글 쓰는 게 즐거울 리가 없고, 당연히 좋은 글을 절대 쓸 수 없다.
표현하는 게 힘들다면, 내가 글을 쓰는 마음과 태도는 어떤지 한 번 돌아볼 일이다.
표현의 자유를 즐기고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