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짹짹 Dec 10. 2020

내가 엎지른 최초의 물

태어나 저지른 가장 큰 잘못은?


태어나 저지른 가장 큰 잘못은? 

잘못은 '저질렀다'라고 표현한다. 물이 쏟아져 버린 것처럼, 잘못된 행동이 쏟아진다. 그게 고의이든 아니든 말이다. 물이 나에게만 쏟아져 버렸다면 '다음부터 조심하면 되지' 하고 넘길 텐데, 피해자가 내가 아니라 타인이라면 사과의 말만으로는 잘못을 용서받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태어나 저지른 가장 큰 잘못은 아닐 테지만, 태어나 저지른 가장 최초의 잘못은 9살 때의 일이다. 타인에게 저지른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잘못이었다. 그 물은 내 단짝에게 엎어졌다. 


내 단짝은 옆집 땡땡이(가명)였다. 우리 둘은 유치원도 초등학교도 같이 다녔다. 옆집에 살았기에 부모님들끼리도 친했다. 유년시절 사진 속엔 꼭 땡땡이가 한편에 자리 잡고 있었다. 어렸을 적 동생과 나는 참 많이도 다퉜다. 심하게 다투다가 집 밖으로 쫓겨나기 일수였는데, 우리는 맨발로 쫓겨나서는 당당하게 옆집 초인종을 눌렀다. "땡땡이 있어요??" 하고 소리치면, 옆집 아주머니는 "아이고 또 혼났구나~ 빨리 들어와"하며 문을 열어주시곤 하셨다. 엄마는 그런 우리를 보고 어이없어하셨지만, 옆집 아줌마는 애들이 다 그러면서 크는 거지 하고 우리 편을 들어주셨다. 그럼 우리는 또 언제 싸웠냐는 듯이 땡땡이와 땡땡이 동생까지 같이 신나게 놀았다. 


그러다 땡땡이와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우리는 처음으로 유치원 버스가 아닌, 몸통만 한 책가방과 신발주머니를 들고 등하굣길을 걸었다. 엄마가 가끔 심부름하러 다녀오라던 마트보다 먼 학교 길이였다. 그래도 땡땡이와 함께라서 지루하지 않았다. 우유 급식이 싫어 매일 같이 신발주머니에 하나씩 숨겨와서 땡땡이한테 넘겼다. 그럼 땡땡이는 나 대신 벌컥벌컥 마셔줬고, 때론 몰래 화단에 뿌려주기도 했다. 은행잎이 마구 떨어진 그 날, 우유갑을 차면서 걸었던 그 길이 아직도 생생하다.


땡땡이와 멀어진 게 된 건 순전히 나 때문이었다. 어느새부터 학교에서는 남자와 여자가 같이 어울려 놀면 놀림거리가 되었다. 왜 놀림거리가 되어야 하는지도 모른 채, 땡땡이와 같이 있으면 놀림거리가 되었다. 사실 놀림을 받았는지 어쨌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놀림당하기 싫어서 땡땡이에게 거리를 두었던 것만 기억난다. 나는 매일 아침 조금 일찍 학교를 가기 시작했고, 땡땡이는 내가 없는 우리 집 초인종을 매일 누르기 시작했다. 엄마는 땡땡이와 어울려 놀지 않는 이유를 몇 번이고 물었지만, 가타부타 부연 설명 없이 다른 친구들이랑 놀고 싶다는 대답을 했던 것 같다. 


태어나서 딱 두 번 코피가 났는데, 바로 그 날이 처음이었다. 아침에 코피가 터졌다. 소파에 누어 피 묻은 휴지를 잡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벌써 등굣길에 나섰어야 하는 시간이었다. 땡땡이는 그날도 여느 때와 같이 초인종을 눌렀고, 엄마는 땡땡이에게 내가 코피가 머질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일어나 휴지를 돌돌 말아 코에 쑤셔 넣고는 학교 갈 채비를 했다. 애들이 땡땡이와 내가 나란히 걷고 있는 걸 보면 손가락질하고 놀릴게 분명했다. 땡땡이와 같이 갈 수 없었다. 엄마한테 학교 간다는 말도 안 하고 쌩하고 현관문을 나섰다. 


땡땡이는 나를 기다렸다가 한 번 더 초인종을 눌렀을 것이다. 

내가 가버린 것을 알고 얼마나 서운했을까. 

땡땡이는 나를 기다리다 지각을 했을까. 

그 이후 땡땡이와 내가 영영 말도 안 했을까. 

내가 사과를 하긴 했을까. 

의문이 꼬리를 물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다. 3학년이 될 쯔음, IMF 위기가 심하게 우리나라를 뒤흔들고 있을 때쯤, 우리 집은 이사를 갔고, 그렇게 땡땡이와 정말 멀어졌다. 시간이 아주 많이 흐른 뒤에, 페이스북에 땡땡이의 이름을 쳐보기도 했다. 진심으로 사과하고 싶었다. 나를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그때 정말 미안했다고. 몇 명에게 메시지를 보내보긴 했지만, 답장은 없었다. 


땡땡아 내가 쏟은 물이 지금은 다 말라서 흔적도 없었으면 좋겠다.

네가 차라리 나를 기억하지 않는 편이 좋을 것 같은데.

혹시라도 나를 기억한다면, 땡땡아 정말 미안해. 


작가의 이전글 85점짜리 컨닝 페이퍼, 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