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K-장녀다. 집안의 대소사에 관여해야 속이 시원하고, 내가 떠안지 않아도 되는 의무까지 어깨에 짊어지고서는 무거워한다. 동생에게 잔소리하는 역할도 그 쓸데없는 의무 중 하나이다. 부모님이 하라고 한 적도 없는데, 동생이 해달라고 한 적도 없는데 어느새 잔소리가 술술 나온다.
"학교보다 과가 더 중요한 것 같아."
"대학교 다닐 때 여행 많이 다녀. 추억이 기억이야."
"하고 싶은 게 없으면, 일단 남들이 하는 거라도 따라 해."
2살 어린 동생한테 해줬던 조언들이다. 나는 동생에게 정답을 알려주고 싶었다. 보통 형제, 자매는 같은 세대에 태어나, 비슷한 경험을 한다. 세대도 경험도 그다지 차이가 나지 않으니, 내 실수담(혹은 성공담)이 도움될 것이라 생각했다. 무엇보다 내가 했던 실수를 동생은 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한때 나도 남들의 성공 스토리를 열심히 찾아다녔다. '스무 살 때 해야 하는 것들', '서른 살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선', '꿈은 이렇게 해야 이루어진다' 등 지름길이 있을 만한 데는 구석구석 살폈다. 먼저 가 본 사람들의 미래는 분명 내 앞 길에 도움이 될 것이니까.
그렇다고 그 책들의 조언이나 내가 동생에게 한 조언이 만점짜리는 아닐 것이다.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만점짜리 조언은 흔치 않다. 내가 겪었던 상황에 여러 가지 시나리오를 섞으면 100점 만점에 85점은 되려나. 85점짜리가 어디랴. 알려준 답을 그대로 쓰면 중간 이상은 간다. 물론 만점은 못 맞는다. 85점짜리 컨닝페이퍼의 한계다.
동생은 눈 앞에 들이밀어진 컨닝페이퍼를 자주 사용했다. 그러다 보니 사소한 일에서까지 컨닝페이퍼를 찾기 시작했다. 연애, 직장, 친구 등 어려운 일이 닥치면 나를 찾았다. 아차 싶었다. 어미새가 아기새를 둥지 밖으로 내쫓듯, 동생이 혼자 날갯짓하도록 컨닝페이퍼를 뺏어야 한다.
이제 나도 그만 책 속에서 컨닝페이퍼를 찾는 일을 멈춰야겠다 싶었다. 그렇다고 오해는 마라. 여전히 자기 계발서는 '최애' 책 중에 하나다. 당근과 채찍으로 그만한 게 없기 때문이다. 침대와 몸이 하나가 되고만 싶을 때 이불 걷어붙일 의지를 주고, 더 이상 해낼 기력이 없을 때 자양강장제처럼 불끈하는 힘을 주기도 한다. 지름길을 을 찾기 위해 파묻히지 않고, 건강한 당근과 쌔끈한 채찍으로 당당히 걸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