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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밀 Dec 27. 2022

시작에 관하여

#1

"아 채색 시작을 말았어야 했는데. 과거의 나야 왜 그랬니"

채색의 결과가 점점 산으로 갈수록, 이 색을 쓸지 저 색을 쓸지 생각하기 귀찮아질수록 과거의 나를 탓하기 시작했다. 처음 펜스케치의 느낌이 꽤 마음에 들었었고 색이 입혀지는 순간부터 스케치만으로 남아있는 그림의 물성이 사라지는 것과 같아 더 아쉬웠다. (물론 사진으론 남아있다) 돌담 하나하나 색을 입히는 정성으로 시작했지만 지친 마음으로 대강 밀어버리는 걸로 끝이 났다.

그럼 결과물이 마음에 드느냐?

아니다. 어떤 그림들은 완성하고 나면 그렇게 뿌듯하고 그렇게 자랑하고 싶은데 얘는 아직이다. 성공과 실패 두 가지 관점에서만 봤을 때 실패에 가깝다고 말할 것 같다. 여러모로 아쉬운 그림이다.

- 카페에서 그림을 그리고 집에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쓴 글. 30분 정도의 여정이다.


#2

딸기를 사고 집에 들어와 딸기 몇 개를 씻어먹고 다시 그림을 들여다 본다. 노란 빛의 카페 조명보다 훨씬 밝고 선명한   조명 아래서 보니 그림은  다른 느낌을 뿜어낸다.  벽을 배경으로 두고 그림을 대어본다. , 조금 마음에 드는 구석이 생겼다. 사진을 요리조리 찍어본다. ', 역시 실물이  낫군' 생각한다. 마  그림을 갖고 싶어하는 남친의 카톡이 왔다. 같이 여행갔던  그린 그림이기 때문에   생각이 난다고 한다. 액자해 두고 보고싶다고 한다. 막상 줄려니 나도 두고 보고싶어졌다. 예상치 못한 수요가 만들어낸 갑작스런 애정일까? 가지긴 싫은 건 아니지만 어쨌든 주긴 아까운 심보인가?   동안  방에 붙여두고 감상하다    보내기로 했다. 새하얀 벽을 배경삼아 붙여놓으니 투박한 손그림의 매력이  살아난다. 그동안 너무 많은 정이 들어 보내기 싫어지면 어쩌지?


#3

글을 쓰다보니 스케치를 마치고 채색을 하고 싶어했던 과거의 내가 떠올랐다. 색연필로 이렇게 저렇게 칠하면 예쁜 그림이 나오겠다! 기분 좋게 상상하던 내가 있었다.


지금의 내가 채색을 시작한 과거의 나를 탓할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닫는다. 어찌됐건 나는 그림 하나를 더 완성한 사람이 되었고 그림을 선물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림그리는 나에 대한 글감을 얻었다. 이로써 나는 글을 쓰고 싶어하는 나에서 글을 쓰고 있는 내가 되었다. 뭉클한 과정이다.


모든 일에 시작과 끝에서 느끼는 감정은 같을 수 없다. 더 좋을 수도 더 나쁠 수도, 때론 비참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작을 해야하는 이유는, 시작은 다채롭고 더 나은 나를 이끌어낸다.

이런 저런 이유로 시작을 망설이고 있는  있다. 망설임에는 두려움이 있다. 실패라 생각했던 오늘의 작은 성공을 기억하자. 미래의 내가 조용히 읖조리고 있을 것이다. '흠, 나쁘지 않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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