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차린 식탁에 초대하고 싶은 단 한 사람
언제나, 언제까지나
기억 속 감각의 사진을 꺼내 들고 눈을 지그시 감는다. 사진이 워낙 오래되어 지갑에 넣고 다니면 더 바래고 찢기고 없어질까 봐 머릿속 품에 꼼꼼하게 숨겨둔 한 아이. 눈을 감으면 그 아이가 오린 듯 선명하게 떠오른다. 입은 언제든 울 수 있게 앙다물었고 누구에게도 지지 않겠다는 듯 눈을 부릅뜬, 얕은 미간이 유달리 그늘진 일곱 살 아이. 50년 세월을 훌쩍 뛰어넘은 흑백사진의 그 아이는 눈을 감을 때마다 쪼르르 다가와 조잘조잘 잘도 떠든다.
삼남 이녀 중 넷째. 그 아이는 제 엄마가 육아 스트레스로 아기를 떼려고 거꾸로 매달리기, 아이 떨어지는 약, 그리고 온갖 저주를 자기에게 자행했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 아이는 사춘기가 되기 전에 제 아비를 잃었다고 했다. 당시 최연소 판사가 바로 자기 아빠였다고 자랑할 때 미간의 옅은 그늘이 펴졌다. 그때야 비로소 아이다운 얼굴이 됐다. 제 아빠가 살아있었다면 이렇게 살고 있지 않았을 거라고 깜빡이는 속눈썹이 말해주는 듯했다. “그래도 아빠가 빨리 돌아가셨으니까, 형제자매끼리 서로 의지하며 우애가 깊었겠구나” 넌지시 추임새를 넣었다. 아이는 큰오빠가 리모컨을 던져 머리에 피가 흐른 이야기, 언니가 도화지에 '넌 젖꼭지가 못생겼다'며 희롱하는 그림을 그린 이야기, 혼자 책을 읽는 것만이 유일한 낙이었다는 이야기를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이어갔다.
시간이 쌓여 밀도가 높아진 이야기는 곧 가시가 되어 나를 찔렀다. 눈을 감으면 늘 들리는 이야기였지만, 그때마다 가슴이 아팠다. 아마 내가 이 아이의 자궁 안에서 자랄 때 나도 모르게 그 가시를 흡수했기 때문이리라. 누구보다 타인이 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나의 엄마이기 때문이리라.
엄마는 이제 “나의 아픔을 너에게 풀어 미안하구나”라며 60년 넘게 파인 미간으로 날 바라본다. 질곡 많은 엄마의 시간이 나로 인해 조금은 말랑말랑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녀에게 달걀말이를 해주고 싶다. 최대한 얇게 달걀물을 펼치고 천천히 익히며 엄마 이야기를 들어줘야지. 그 가시에 달걀물이 입혀지며 카스테라처럼 부드러워질 때까지 충분히 익혀줘야지. 언제나, 언제까지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