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십 인이 돌아오다: 누가복음 10:17-20

by 안젤라

칠십 인이 돌아오다

누가복음 10:17-20


17 칠십 인이 기뻐하며 돌아와 이르되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18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19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

20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칠십인을 파송하신 예수님은 추수하는 주인에게 일꾼을 보내달라고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자신이 일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더 많은 일꾼이 필요하다는 말씀은 공동체적 사명의 중요성을 일깨워 줍니다. 나 혼자 사명을 감당하려는 태도를 내려놓고, 하나님의 방식대로 일군들과 협력하며, 기도와 연대로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야 함을 느낍니다.


칠십 인은 기쁨에 차서 돌아왔습니다.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이 항복했다는 놀라운 경험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사탄이 하늘에서 번개같이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단순한 은유를 넘어서, 칠십 인의 사역을 통해 사탄의 권세가 실제로 흔들렸다는 것을 뜻하는 것 같습니다. 사도 바울이 말한 공중 권세 잡은 자의 영향력조차 무너지는 순간이었던 것이지요.


그러나 예수님은 눈에 보이는 성과보다 더 깊은 기쁨의 이유를 가르치십니다.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는 말씀은, 우리의 정체성과 기쁨의 뿌리가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음을 분명히 합니다. 성취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 시민으로 불림 받은 은혜가 진정한 기쁨의 근거입니다.


사역이 열매를 맺을 때 교만하지 않고, 열매가 보이지 않을 때에도 낙심하지 않으려면, 하나님의 자녀이자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라는 정체성을 굳게 붙잡아야 합니다. 자신이 하는 일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가가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이 누구인가가 먼저입니다.


칠십 인이 기뻐한 이유는 분명했습니다. 자신들이 귀신을 쫓고 기적을 행했다는 성취감이 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기쁨보다 더 깊은 차원의 기준을 제시하십니다. 누가복음의 본문만 보면 하늘에 이름이 기록된 것이 당연하게 보이지만, 성경 전체를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처럼, 기적을 행했다는 이유만으로 천국이 보장되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능력을 행한 자들에게도 주님은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심지어 예수님의 수제자였던 베드로조차도 발을 씻기시려는 주님께 제 발은 절대 씻지 못하신다고 했을 때, 예수님은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않으면 너는 나와 상관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아무리 오래 예수님과 함께 있어도, 관계의 본질을 놓치면 안 된다는 경고입니다.


결국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외적인 사역의 성공보다 예수님과의 친밀한 관계이며, 하늘에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는 확신입니다. 이 확증 위에 서 있을 때, 우리는 어떠한 사역을 감당하든 흔들리지 않는 기쁨과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오늘도 이 정체성을 붙들며 주님의 기쁨 안에 거하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예수님 시대에 칠십 인의 사역을 읽으며,

주의 이름으로 기적과 이적을 행했을지라도

하늘나라에 이름이 기록된 것이 가장 중요하고,

예수님과의 관계의 본질을 잊지 말아야 함을

깨닫게 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아버지,

저는 기적과 이적은커녕

사도 바울이 말한 은사조차 받지 못한 자처럼 느껴집니다.

예수님은 칠십 인을 추수하러 보내시며

뱀과 전갈을 밟는 권세와 원수의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셨고,

그들은 실제로 귀신을 쫓는 사역의 열매를 경험했습니다.

오늘날의 추수 때에 저는

단지 전도지만 전하는 자로 머물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주님,

먼저 권세와 권능을 받아야

참된 추수의 일꾼이 될 수 있음을 고백합니다.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어찌 전갈을 주겠느냐고 하신 말씀처럼,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그 말씀을 붙잡고

오늘도 성령의 불을 간절히 사모합니다.

제 기도를 들으시고,

주의 성령으로 제 안에 불을 지펴 주소서.

능력보다도 예수님과의 깊은 사귐,

주님의 임재 속에 사는 삶을 먼저 누리게 하시고,

주님 주시는 권세와 은혜로

감당해야 할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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