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십자가 고난: 의도된 구원의 길

by 안젤라

2026년 2월 4일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 의도된 구원의 길


몇 년간 읽어왔던 마가복음. 오늘따라 마가복음 8장의 말씀이 새롭게 다가왔다.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처음으로 비장한 말씀을 하신다.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그들에게 가르치시되”(마가 8:31)


이 충격적인 선언 앞에 베드로는 예수님을 붙들고 항변한다. 로마를 전복하고 영광의 자리에 앉아야 할 예수님이 처형당한다는 시나리오는 제자들의 계획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베드로의 항변을 단호히 거부하신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마가 8:33)


그리고 곧바로 제자들에게 새로운 명령을 내리신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마가 8:34-35)


이 말씀의 의미는 명확하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입성하면 십자가 처형을 받고 죽었다가 부활할 것이다. 그러니 그 분의 제자가 되려거든 똑같이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각오해야 한다는 말씀이다. 뒤 부분에는 자기 목숨을 내어 놓는다면 구원을 받으리라고 까지 하신다.


흥미로운 점은 마가복음은 베드로의 항변을 기록했지만, 누가의 서술에는 베드로의 반응이 전면에 나오지 않는다. 덕분에 누가복음을 읽으면 ‘예수님의 고난 예고’와 ‘제자들의 자기 부인 명령’이 끊김 없이 하나로 연결된다. 베드로의 항변이 텍스트에서 없으니, 예수님의 의도가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 예고와 이후 제자들에게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을 받을 것이라는 말씀이 사실상 하나의 명령문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 말씀은 단순한 윤리적 훈계나 죽음을 각오하라는 엄포가 아니다. 예수님이 먼저 자신의 죽음을 예고하신 뒤, 곧바로 이 명령을 덧붙이신 데에는 예수님이 스스로를 부인함으로써 하나님의 일이 이루어지는 ‘의도된 구원의 패턴’이라는 것을 알려 주시기 위함이다. 예수님은 당신이 가시는 길이 이렇다고만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제자들도 이 패턴을 따라라고 초청하신 것이다.


아마도 제자들은 상당히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그들은 예수님이 파도를 잠잠하게 하시고 죽은 자를 살리는 것까지 다 지켜보았기 때문에 이 능력의 메시아가 도대체 왜 십자가 고난을 받아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도 나무에 매달리는 이는 저주받은 이이기 때문에 더욱 이해가 가지 않았을 것이다. 나또한 과거에 십자가 고난을 읽으면 그런 생각이 들곤 하였다.


그러나, 우리가 독뱀에 물렸을 때를 생각하면 이해가 된다. 뱀의 독처럼 죄는 우리에게 유입되는 순간 영혼과 육체에 확산된다. 독이 퍼진 사람은 스스로를 치유할 수 없다. 독이 퍼져 죽기 전에 누군가가 그 독을 자기 몸으로 떠안는 길밖에 없다. 그 독을 다른 이가 다 제거한 이후에야 약으로 그 사람을 회복할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인류의 몸에 퍼진 사망의 삵인 죄의 저주를 대신 담당하셨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 고난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그래서 십자가는 패배가 아니라 저주와 사망의 권세라는 독을 끊는 의도된 구원의 길이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의 계획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은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라며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는 일에 자신을 맡기신 것이다.


공관복음보다 훨씬 후에 기록된 요한복음을 보면 이 패턴이 더욱 선명해진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요한 5:19)


이것은 예수님이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능력한 존재라는 뜻이 아니다. 모든 일에 대한 결정권을 하나님께 철저히 ‘위임’하셨음을 보여주는 선언이다. 예수님의 사역은 즉흥적인 반응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고 그대로 본받아 행하시는 철저한 순종의 결과였다. 그리고 십자가 고난을 받으신 예수님의 죽음이 힘이 모자라서 당한 ‘패배’가 아니라,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 능동적으로 선택한 ‘전략적 순종’이었던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자기를 부인하라”는 말씀은 자신을 학대하거나 미워하라는 뜻이 아니다. 인생의 운전대를 내가 쥐고 있다는 점을 다 포기하고, 그 결정권을 주님께 넘겨드리라는 명령이다.


또한 “십자가를 지라”는 말은 주님께 운전대를 맡긴 그 상태를 끝까지 유지하라는 당부다. 십자가는 고난의 상징이기 이전에, 내가 다시 주도권을 되찾아오려는 충동을 거절하며 끝까지 조수석을 지키는 자리다. 이는 자학이나 금욕이 아니라, “내 인생의 결정권을 더 신뢰할 만한 분이신 하나님 아버지께 맡기는 신뢰를 바탕으로 한 행동”으로 정의함으로써, 자기 부인을 율법적 의무가 아닌 관계적 신뢰의 문제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주님께 운전대를 맡긴 사람은 더 이상 자기의 길을 스스로 선택하여 가려고 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일은 바로 이 구조—나의 주도권을 내려놓고 아버지의 뜻에 따라 행동하는 예수님의 거룩한 패턴—을 통해서만 온전히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십자가는 고난의 사건이기 전에, 주도권을 내려놓는 순종의 구조이며, 제자도란 그 구조 안에서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하는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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