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눈 위에서 부르는 노래, 그리고 부스러기 은혜

by 안젤라

2026년 1월 25일 일요일


[영화 묵상] 붉은 눈 위에서 부르는 노래, 그리고 부스러기 은혜


“아버지, 저 잘했디요...”

영화 <신의 악단>의 마지막 장면, 흰 눈이 덮인 언덕 위에서 박교순이 내뱉은 이 한마디가 아직도 귓가에 맴돕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이야기 속에서, 나는 지금도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거대한 섭리를 봅니다. 그가 흘린 붉은 피와, 광활한 언덕길의 흰 눈이 만들어내는 대비는 멜 깁슨의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그곳은 북한의 어느 차가운 땅이 아니라, 예수님이 피 흘리셨던 골고다 언덕이었습니다. 그의 상처는 주님의 채찍질 자국 같았고, 그의 죽음은 누군가를 살리기 위한 대속의 희생처럼 보였습니다.


1. 사울을 바울 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일하심


박교순의 삶은 아이러니 그 자체입니다. 그는 본래 교회를 핍박하던 자였고, 예수쟁이라며 사촌마저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사울’과 같은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순교자 집안의 기도는 땅에 떨어지지 않고, 시간을 넘어 기어이 그를 ‘바울’로 변화시켰습니다. 스데반의 순교를 목격한 사울이 결국 바울이 되었듯, 어머니의 순교를 간접적으로 초래한 교순이 결국 순교자가 된 것은 창세기 50:20의 섭리 신학을 생생히 증거합니다.


교순은 어릴 때, 어머니가 성경 읽는 모습을 생생히 묘사한 자신의 일기장이 수업 시간에 공개되어 어머니가 순교하게 되었던 기억을 떠올립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씻을 수 없는 죄책감이겠지만, 요셉의 고백을 빌려 묵상해 봅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창세기 50:20)


어머니를 고발하고, 외삼촌을 직접 처단한 박교순의 비극은 사탄의 올무였을지 모르나, 하나님은 그조차 선으로 바꾸셨습니다. 당시에는 6명의 목숨을 살렸고, 지금은 영화를 통해 수천만 명의 영혼을 깨우고 있으니 말입니다.


2. 광야의 시간, 그리고 독수리의 갱생


영화 속 박교순은 승리 악단과 함께 부흥회 준비를 했지만, 한편으로는 승리 악단의 반동분자들이 확인되었으니 부흥회가 끝나면 그들을 처형하라는 당의 명령을 받았습니다. 외삼촌을 처단했듯 승리 악단 단원을 처단하면 박교순은 진급도 하고 자신의 목숨도 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들의 안위와 자신의 안위를 완전히 맞바꾸었습니다.


이 장면을 보면서 나는 최근 연구 주제인 involution(반전, 대합)이라는 단어를 떠올렸습니다. 이는 단순한 반전이 아니라—수학적으로, 기하학적으로—내 안위와 타인의 안위를 서로 바꾸는 선택, 다시 말해 나를 접어 타인의 길을 펼치는 선택입니다.


원래 일정이라면 승리 악단은 대동강 교회에 몇 시간 전부터 와서 리허설을 하고 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승리 악단이 아니라, 그들의 악기와 짐을 실은 박교순은 NGO 대사가 도착하고 난 이후에 도착합니다. 그는 승리 악단을 탈북시키기 위해 스스로 볼모가 되어 시간을 벌어 준 셈입니다.


이 장면에서 예수님도 겹쳐 보였고, 지금 고난을 당하고 있는 많은 분들도 겹쳐 보였습니다.

“왜 굳이… 가만히 있으면 되는데… 왜… 굳이….”

타인의 안위와 공동체의 안녕을 위해 자신의 안위를 포기한 많은 분들이 떠올랐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과 어떤 공동체를 광야로 통과하게 하실 때, 그 시간이 정직과 분별을 낳는 과정이 되게 하실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 속 찬양 <광야>의 가사처럼, 인간적인 모든 수단이 끊어진 그곳은 절망의 장소가 아닙니다. 그곳은 오직 주님만 도움이 되시는 곳, 낡은 부리를 깨고 새 힘을 얻는 독수리처럼 ‘인생 2회차’를 준비하는 거듭남의 장소입니다. 또한 광야를 지나는 모든 분들이 그곳에서 하나님을 깊이 만나, 진정한 갱생을 이루기를 기도합니다.


3. 김태성, 그리고 나의 고백


영화를 보면서 박교순의 회심과 순교에 깊이 감동했지만, 영화 속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은 인물인 김태성이 영화를 보고 난 지금까지도 마음에 오래 남아 있습니다. 그는 박교순처럼 순교자 집안의 핏줄도 아니었습니다.


주님이 주신 자유함과 해방감이라는 은혜도 체험하기는 했지만 김태성이 순교를 결정하게 된 실질적인 계기는 어쩌면 더 개인적인 서사였을지도 모릅니다. 자신의 혁명적 과업을 위해 승리 악단에 첩자로 심어 놓은 사랑하는 여인이, 승리 악단과 함께 처형당하게 되자 그녀를 살리고 싶다는 마음—그 지극히 인간적인 마음 말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그도 귀한 순교의 자리에 동참하게 하셨습니다. 순교자 가문의 혈통도 아니고, 영화상에서는 극적인 회심 체험이 두드러져 나타나지 않는 그가 “사랑하는 여인을 살리려는 지극히 인간적인 마음”으로 시작해 순교에 이르렀다는 것—이는 하나님이 인간의 불완전한 동기마저 거룩한 목적으로 재구성하신다는 은혜의 증거입니다.


영화에서 마치 이방인 같은 김태성의 순교를 보며, 나는 수로보니게 여인의 간절함을 떠올립니다.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나또한 믿지 않는 집안에서 태어나, 열심히 주님을 전하시는 목사님들 옆에서 묵묵히 곁을 지키는 실라 같은 존재이고 싶습니다. 기도하는 목사님들 곁에서 영혼을 구하는 이 거룩한 사역에 ‘꼽싸리’ 끼어 동참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는 것—그것만으로도 나는 가슴 벅찬 감사를 느낍니다.


아울러 나의 학문과 연구, 그리고 이 모든 사유가 그저 나만의 것이 아님을 고백합니다. 부스러기 은혜라도 족합니다. 가나안의 이방 여인, 여리고의 이방 여인, 모압의 이방 여인에게도 허락된 그 은혜를 붙들고, 오늘도 나에게 주어진 광야를 걸어갑니다.


[기도문] 부스러기 은혜를 구하며


하나님 아버지, 흰 눈 위 붉은 피로 쓰인 박교순의 고백을 보며 저 또한 떨리는 마음으로 주님 앞에 섭니다. 자격 없는 이방 여인들을 예수님의 족보에 들이시고, 사랑 때문에 움직인 김태성의 마음마저 순교의 재료로 쓰신 주님. 오늘 저에게도 그 ‘부스러기 은혜’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비록 식탁 아래 떨어진 작은 조각일지라도, 그것이 주님의 몸에서 떼어낸 생명의 빵임을 믿습니다. 믿음의 동역자들 곁에서, 제가 가진 작은 지식과 사유가 주님의 나라를 이루는 거대한 퍼즐의 한 조각으로 쓰이게 하소서. 나의 나 된 것은 오직 주님의 은혜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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