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에서 읽는 요한복음 15장

by 안젤라

2026년 3월 29일


사무엘하에서 읽는 요한복음 15장: 예수님이라는 나무에 붙어 있으라


사무엘하를 읽다 보면 강하고 뛰어나고 매력적인 사람이 너무 많다. 막강한 권력을 가진 아브넬, 왕의 자리에 앉은 사울의 아들인 이스보셋, 젊고 아름다운 압살롬, 탁월한 지략을 가진 아히도벨 등 이들은 강했다. 그들의 눈에 다윗은 그렇게 이상적인 왕이 아닐 정도로 그들의 스펙은 화려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들은 오래가지 못한다. 사무엘하는 강한 사람이 남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오히려 누가 끝까지 남는지, 누가 무너지지 않는지를 보여준다. 사무엘하는 요한복음 15장 예수님의 이야기를 사람들의 삶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예수님은 먼저 열매를 요구하지 않으셨다. 먼저 주님 안에 거하라고 하셨다. 가지는 스스로 열매를 만들지 않는다. 다만 나무에 붙어 있을 뿐이다. 붙어 있으면 생명이 흐르고, 거하고 있으면 열매는 따라온다. 아브넬은 강했다. 그래서 처음에 굳이 다윗에게 항복할 필요가 없었다. 이스보셋은 허수아비 왕이었지만 왕의 권위와 자리를 지키려고 했다. 이들은 모두 훌륭하지만 그들에게 처한 상황을 자기 힘으로 해결하려다가 결국 무너졌다.


사무엘하에는 이 험한 시대에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이 폭풍우에서 조용히 살아남은 인물이 있다.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이다. 그는 사울과 요나단의 죽음 소식을 듣고 도망치는 유모가 그를 손에서 놓치는 바람에 두 발을 절게 된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비록 왕족이었지만 스스로 살아남을 수 있는 힘도, 그리고 그 장애의 몸으로는 왕권 경쟁에 들어갈 수 조차없었다.


그런데 사무엘하에서는 므비보셋이 살아 남는다. 단순히 약했기 때문이 아니라 다윗과 요나단의 언약 안에 머물러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 힘으로 버티지 않았다. 자기 이름으로 증명하지 않았다. 단지, 그 언약의 자리에 묵묵히 머물렀고 그리고 살아 남을 수 있었다. 어쩌면 그가 다리를 절게 된 일조차 다르게 볼 수 있지 않을까? 그에게 있어 너무 다리를 다치는 순간은 분명 비극이었다. 왕족이 도망치다가 떨어져 평생을 절게 되었다.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았다.


그러나 사무엘하를 끝까지 읽고 나면, 그 절뚝임마저 하나님이 그의 생명을 보존하시고 왕의 식탁까지 이끄시기 위해 사용하신 신의 한 수처럼 보인다. 강한 자들은 서로를 제거했고 힘 있는 자들은 서로를 경계했으며 왕이 될 수 있는 이들은 서로에게 위협이 되었다. 그러나 걷지 못하는 그는 그 경쟁의 한가운데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는 낮아져 있었고, 걸을 수 없었고, 그래서 오히려 살아남았은 것은 아닐까?.


이것이 일종의 역설이다. 우리는 더 강해져야 산다고 생각한다. 더 잘해야, 더 빨라야, 더 많이 가져야 살아남는다고 믿는다. 그러나 성경은 다르게 말한다. 살아남는 비결은 강함이 아니라, 거함이다. 그리고 그 거함은주님을 붙잡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욥을 보면 이 사실이 더 분명해진다. 욥은 많이 힘들어 했고, 많이 불평했고, 하나님께 따지듯 질문하기도 했다. 그런데 하나님은 친구들이 아니라 욥을 보시고 옳다 하셨다. 그의 불평은 하나님을 떠나서 한 불평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불평, 아니 하나님께 매달린 울음이었다. 하나님은 욥이 말한 불평의 말을 문제 삼지 않으시고, 그가 끝까지 놓지 않았던 그 마음을 받으셨다. 하나님은 불평 없는 입술보다 끝까지 주님을 붙잡는 마음을 기뻐하심을 알 수 있다.


사무엘하도, 욥기도, 요한복음 15장도 결국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강하고 완벽하고 잘난 자가 남는 것이 아니다. 부족해도 끝까지 붙어 있는 자가 남는다. 더 잘하려고 애쓰기보다, 주님께 더 붙어 있으려는 마음가짐과 자세가 중요하다. 더 강해지려 하기보다는 주님 안에 거하려는 마음과 결단이 중요하다. 므비보셋은 그런 면에서 주목할 만하다. 그는 스스로의 지략과 힘으로 살아남은 사람이 아니라 언약 하의 은혜에 머물러 있었던 사람이다. 그의 구원은 자신의 능력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언약 안에 머물러 있었던 그 관계에서 나왔다. 그리고 그의 절뚝임조차 그를 왕의 식탁까지 데려가는 도구가 되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사무엘하를 읽으며 나 자신을 돌아봅니다. 매 새로운 시작을 할 때마다 또는 같은 일을 되풀이할 때마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기도하며 나아갔던 초심을 잃고 늘 하던대로 하면 되겠지 하는 안일함으로 내가 운전대를 잡고 내 생각으로 결정하고 내 힘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나 자신을 보게 됩니다.


주님, 사무엘하를 다 읽고 나면 요한복음 15장은 더 이상 권면이 아니라 필연적인 귀결로 다가옵니다. 생명의 구조가 여기서 남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예수님 나무에 붙어 있으라! 끝까지 주님을 붙잡는 마음으로 거하라!


주님, 저도 이 믿음을 붙잡게 하소서.

내 힘으로 버티려 하지 말고, 주님 안에 거하게 하소서.

내 힘으로 열매를 만들려 하기보다 생명의 근원이신 예수님께 붙어 있게 하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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