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이 먼저 나오는 집안은 무엇이 다를까

by 안젤라

2026년 3월 31일


축복이 먼저 나오는 집안은 무엇이 다를까


우리는 좋은 가문, 건강한 공동체의 비밀을 경제력, 교육 방식, 인간관계, 정보력과 같이 대개 눈에 보이는 것에서 찾는다. 물론 그런 요소들도 중요하다. 그러나 성경은 때때로 훨씬 더 본질적인 것을 말하는 것 같다. 바로 그 집안의 말버릇, 그 집안의 언어적 습관에 비밀의 해답이 있는 것 같다.

룻기 2장을 읽으면 매번 눈길을 멈추는 곳이 있다. 한편으로는 왜 여기에 기록되어 있는가 생각이 드는 부분이다. 보아스가 밭에 와서 일꾼들에게 축복의 말을 건네는 장면이다.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하시기를 원하노라.” 일꾼들도 인사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주인님께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나이다.” (룻기 2:4)


이 장면은 짧지만 이상하리만치 깊은 여운을 남긴다. 주인과 일꾼의 대화인데, 주인이 처음으로 하는 말이 지시도 아니고 점검도 아니고 경고도 아니다. 서로를 향한 축복이다. 이것은 단순한 예의가 아니다. 이건 보아스의 공동체가 어떤 언어를 기본값으로 삼고 있는지를 보여 주는 단서다.


이건 개인의 특성일수도 있지만 가문의 특성일 수 있다.

어떤 집안은 불안이 먼저 나온다.

어떤 사람은 의심이 먼저 나온다.

또 어떤 공동체는 평가와 통제가 먼저 나온다.

그런데 보아스의 집안에서는 축복이 먼저 나온다.


더 놀라운 것은 이것이 한 번의 우연한 표현이 아니라는 점이다. 보아스는 낯선 이방 여인 룻을 대할 때도 축복의 언어를 사용한다. 타작마당에서 일하고 밤중에 예상치 못하게 룻을 발견한 상황에서도 그의 입에서는 저주나 경계가 아니라 복을 비는 말이 먼저 흘러나온다. 보아스의 입술은 이미 오래전부터 한 방향으로 훈련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쯤 되면 한 가지를 생각하게 된다. 사람은 위기 앞에서 본심이 드러난다고 말하지만, 어쩌면 더 정확히는

위기 앞에서 평소에 저장해 둔 언어가 튀어나온다고 해야 할지 모른다. 보아스는 축복을 즉흥적으로 선택한 사람이 아니라, 축복이 자기 안에 깊이 저장된 사람이었다. 그에게 축복은 특별 행사 때만 꺼내는 종교적 표현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반복되어 무의식에까지 내려간 삶의 문법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 장면을 읽으며 한 사람의 인격은 거창한 순간에 무슨 말을 하느냐보다, 무심한 순간에 어떤 말이 먼저 나가느냐에서 더 분명히 드러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 언어의 가풍은 보아스 한 사람에게서 끝나지 않는다. 그의 가문에서 태어난 다윗에게도 비슷한 말의 결이 보인다. 다윗 역시 자신을 돕거나 타인을 도운 사람들에게 복을 비는 말로 대답한다.


이처럼 성경은 축복의 언어는 한 세대의 미덕으로 끝나지 않고,

다음 세대와 함께 하고 그 분위기에서

하나의 가풍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어쩌면 가문이란 피만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반복되는 말의 리듬으로도 이어지는지 모른다.

집 안에서 날마다 오가는 말들,

무의식중에 자녀가 듣고 배우는 문장들,

서운할 때, 급할 때, 놀랄 때, 분노할 때 튀어나오는 말들.

그 말들이 한 집안의 가풍을 만들고, 관계의 질서를 세우고, 미래의 방향까지 바꾼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축복은 단지 친절한 말이 아니다.

그것은 나 자신의 내면을 통해 흘러나오는 선포이다.

내 입술이 무슨 말을 반복하느냐에 따라,

내 마음도 그 방향으로 조금씩 적응되고 길들여진다.

많은 경우, 우리는 인생을 바꾸고자 할 때 대단한 결심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성경을 읽으면 일상적이고 지극히 평범한 데서 시작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매번 매순간 내 입에서 제일 먼저 나가는 말,

너무도 친숙해서 내 의식을 통과하지 않고 생각 없이 반복하는 말,

가족에게 건네는 짧은 한마디.

어쩌면 거기에 우리 삶의 방향키가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


보아스 가문에서 축복은 단지 경건한 표현이 아니라,

한 사람과 한 공동체의 분위기를 설계하는 언어적 습관으로 자리잡았던 것이다.

좋은 습관을 가지려는 결단도 중요하지만 먼저 한 번의 실천과 이러한 실천의 반복을 통해 만들어진다고

말씀하시는 듯 하다.


그렇다면 스스로에게 물어볼 수 있다.

내 입술이 평소에 말하는 기본값은 무엇인가.

비판인가, 냉소인가, 불안인가, 축복인가.

한 가문에 있어서 어쩌면 가장 오래 남는 유산은

집 안에 흐르던 말의 분위기,

서로에게 건네던 축복의 문장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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