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 13일
오늘 히스기야 왕이 생명을 연장받는 사건(이사야 38-39장)을 읽으며, 하나님께서 때로 우리의 기도를 응답하시는 것이 반드시 최선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깊이 깨닫게 되었다. 히스기야는 남유다의 왕으로서 개혁을 통해 믿음으로 나라를 지켰고, 기도로 앗수르의 대군을 물리친 신실한 왕이었다. 하지만 생명을 연장 받은 후에 일어난 일들을 보면, 하나님께서 처음에 그를 부르시려 했던 것이 더 나은 일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히스기야는 자신이 병에 걸려 죽을 운명에 처했을 때,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고, 하나님은 그에게 15년의 생명을 연장해 주셨다(이사야 38장). 처음에 이 부분을 읽었을 때에는 기도의 위대함과 하나님의 응답에 대해 감탄하였지만, 생명 연장 이후 그의 삶에서 펼쳐지는 사건들을 보며 내 마음은 복잡해졌다. 그는 생명이 연장된 후 바벨론 사신들에게 유다의 모든 보물과 무기고를 보여주는 실수(이사야 39장)를 저질렀고, 이 일은 결국 바벨론이 남유다를 침략하는 계기가 되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그 15년 동안 아들 므낫세가 태어났고, 므낫세는 남유다를 최악의 영적 타락으로 이끌어, 가나안의 우상숭배보다 더한 악행을 저질렀다는 점이다(열왕기하 21장).
이 백성이 듣지 아니하였고 므낫세의 꾐을 받고 악을 행한 것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멸하신 여러 민족보다 더 심하였더라. 여호와께서 그의 종 모든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여 이르시되 유다 왕 므낫세가 이 가증한 일과 악을 행함이 그 전에 있던 아모리 사람들의 행위보다 더욱 심하였고 또 그들의 우상으로 유다를 범죄하게 하였도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이제 예루살렘과 유다에 재앙을 내리리니 듣는 자마다 두 귀가 울리리라. 내가 사마리아를 잰 줄과 아합의 집을 다림 보던 추를 예루살렘에 베풀고 또 사람이 그릇을 씻어 엎음 같이 예루살렘을 씻어 버릴지라. 내가 나의 기업에서 남은 자들을 버려 그들의 원수의 손에 넘긴즉 그들이 모든 원수에게 노략거리와 겁탈거리가 되리니 (열왕기하 21: 9-14)
므낫세 이야기까지 알게 되면 하나님이 이것을 미리 아신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든다. 히스기야가 자신이 죽지 않도록 기도한 것은 잘못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일찍 데려가시려는 이유를 묻지 않았다. 우리는 종종 “내 뜻”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구하지만, 정작 하나님이 왜 이런 상황을 허락하셨는지를 묻는 기도는 소홀히 할 때가 많다. 만약 히스기야가 이 때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라고 기도했다면, 남유다는 므낫세의 우상숭배와 같은 타락을 겪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내가 원하는 것이 정말 하나님의 최선일까? 내가 원하는 것을 간절히 구할 때, 하나님의 계획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미국의 경우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도록 많은 기독교도들이 투표를 했기 때문에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었다. 아마 이들은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를 많이 했을 것이다. 당시 기독교인들이 오바마를 지지한 이유는 다양하다. 오바마는 사회적 평등과 인권을 강조하였고, 서민층을 돕는 정책을 강조하였다. 게다가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라는 역사적 중요성을 생각한 유권자들이 그에게 투표했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의 정책은 기독교적 가치와 상반된 것들이 많이 있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2015년 대법원 판결을 통해 동성 결혼을 합법화하는 방향을 지지했다. 이는 보수적인 기독교계에서 강하게 반대했던 사안이었다. 오바마 대통령 시절, “메리 크리스마스” 대신 “해피 할리데이” 캠페인을 통해 공공기관에서 종교적 표현을 자제하도록 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생겼고, 일부 주나 지역에서는 특정 기관에서 “메리 크리스마스” 라고 말하거나 표기하는 것을 피하는 정책을 도입하기도 했다. 또한, 오바마 대통령은 낙태권을 옹호하는 입장이었고, Planned Parenthood(미국 최대의 낙태 지원 단체)에 대한 정부 지원을 확대했다. 이러한 정책들은 미국 내 보수적 기독교 공동체가 우려했던 부분이며 기독교적 가치에 반하는 것들이었다.
그렇다면, 오바마가 대통령 후보였을 때 당시 기독교도들이 하나님의 뜻을 구하면서 투표한 것이 맞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히스기야와 오바마 대통령 당선 사건의 공통점은 기도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결과를 구하고 응답받았으나, 그것이 하나님의 뜻과 일치했는지는 별개의 문제라는 점이다. 히스기야가 기도했을 때, 하나님은 그의 생명을 15년 연장해 주셨지만, 그 기간에 낳은 므낫세의 악행으로 인해 남유다의 멸망을 가속화하셨다. 이처럼 기도 응답이 곧 하나님의 뜻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미국의 기독교 공동체가 오바마를 지지하면서 놓친 것은, 정말 그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지도자가 될 것인가를 깊이 고민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링컨 대통령은 남북전쟁 중 “하나님이 내 편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않고, “내가 하나님의 편에 서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다고 한다. 이는 오늘날 우리가 나라를 위해 기도할 때, 단순히 특정 당이나 특정 지도자의 당선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해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
히스기야가 바벨론 사신에게 보물 창고를 보여준 것도 놀랍지만, 이 일에 대해 이사야가 책망을 한 후 보여 준 히스기야의 태도는 더욱 충격적이었다. 이사야가 보물창고를 보여 준 일로 인해 남유다가 바벨론에 의해 멸망할 것이다라고 경고하셨을 때, 그는 다음과 같이 반응했다.
이사야가 히스기야에게 이르되 왕은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보라 날이 이르리니 네 집에 있는 모든 소유와 네 조상들이 오늘까지 쌓아 둔 것이 모두 바벨론으로 옮긴 바 되고 남을 것이 없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또 네게서 태어날 자손 중에서 몇이 사로잡혀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 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이르되 당신이 이른 바 여호와의 말씀이 좋소이다 하고 또 이르되 내 생전에는 평안과 견고함이 있으리로다 하니라 (이사야 39:5-8)
39장의 이 마지막 구절을 읽으며 정말 놀랐다. 히스기야는 오직 자신의 생애 동안만 평안하면 된다고 생각했다는 것이 충격적이었다. 물론 각자 믿음은 개인적인 것이지만, 그 믿음이 후대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한다. 히스기야는 남유다의 개혁을 위해 열심히 살았지만, 믿음을 후대에 전수하는 데는 실패했다.
히스기야의 사례를 보면서 나도 깊이 반성해 본다. 하나님의 뜻을 묻지 않은 채, 내가 원하는 것만을 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나님께서 나에게 “안 된다”라고 하실 때, 그것이 겉보기에는 다소 속상한 결정처럼 보일 수 있지만 알고 보면 나를 보호하시기 위한 결정일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믿고 있는지? 내 기도가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후대와 공동체 전체를 위한 기도가 되고 있는지?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잠언 16:9)
<기도문>
하나님 아버지,
오늘 이사야 38-39장 말씀을 읽고 깨닫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닌 때를 허락하셨을 때, “주님의 뜻이 나의 뜻보다 높습니다. 주님의 말씀이 내게 선하시니, 내가 순종하게 하소서!”라고 고백하게 하소서. 내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걸어갈 수 있도록 하옵소서. 그리고 히스기야처럼 믿음의 유산을 후대에 넘겨 주지 않은 자가 되지 않게 하소서.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도를 할 때 “이 지도자가 세워지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하기 보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지도자가 세워지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하게 하소서. 최초의 흑인 대통령, 최초의 여성 대통령 등등 역사적 의미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의 뜻과 그 지도자의 정책이 기독교적 가치와 일치하는지 깊이 고민하면서 기도하게 하소서. 특정 정치인을 맹목적으로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정책과 방향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가를 살피고 기도하게 하소서.
우리의 기도가 단순히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 가는 과정이 되게 하소서. 링컨 대통령의 말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의 편이 되어 주시기를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뜻 안에 머물게 해 달라고 기도하게 하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