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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아스, 오벳, 그리고 우리의 기업 무를 자 예수님

by 안젤라

보아스, 오벳, 우리의 기업 무를 자 예수님, 그리고 또다른 보아스가 되고 싶은 나


2025년 3월 12일


룻기를 처음 읽었을 때는 룻이 시어머니 나오미를 돌보는 것과 보아스의 사랑과 희생이 감동적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룻이 보아스와 결혼하여 유대인 가정에 속하게 되고, 룻을 통해 다윗의 조상인 오벳을 낳게 하신 하나님의 축복 또한 감동적이었다.

그러나 기업무를 자의 역할에 대해 알고 난 후 룻기를 읽었을 때 나의 시선은 룻기의 마지막 장 계보에 집중하게 되었다. 오벳은 나오미가 바라던 손자로 엘리멜렉의 가문을 잇는 후손이 되었다. 적어도 율법적으로는 그것이 맞다. 그러나, 성경은 그를 보아스의 아들로 기록하고 있다는 점이 특이했기 때문이었다. 이는 마태복음 1장에도 분명하게 나온다. 이에 대해 묵상하는 것은 참으로 귀한 시간이었다.


1. 보아스는 단순한 남편이 아니라, 기업 무를 자였다


그 기업 무를 자가 이르되 나는 내 기업에 손해가 있을까 하여 나를 위하여 무르지 못하노니 내가 무를 것을 네가 무르라 나는 무르지 못하겠노라 하는지라 (룻기 4:6)


기업 무를 자(고엘)는 잃어버린 가족의 재산과 명예를 되찾아 주는 자를 뜻한다. 기업 무를 자는 그 가정의 재산만 단순히 회복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과 가문을 보호하는 중요한 구속자 역할을 하였다.


[1] 땅을 되찾아 주는 역할 → 가난하여 땅을 판 친족이 있다면, 기업 무를 자가 대신 사서 가족에게 돌려준다.

만일 네 형제가 가난하여 그의 기업 중에서 얼마를 팔았으면 그에게 가까운 기업 무를 자가 와서 그의 형제가 판 것을 무를 것이요 (레위기 25:25)


[2] 형제의 후사를 잇게 하는 역할 → 형제가 후손 없이 죽으면, 그의 아내와 결혼하여 후사를 남겨 그의 이름이 끊어지지 않도록 한다.


형제들이 함께 사는데 그 중 하나가 죽고 아들이 없거든 그 죽은 자의 아내는 나가서 타인에게 시집 가지 말 것이요 그의 남편의 형제가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를 맞이하여 아내로 삼아 그의 남편의 형제 된 의무를 그에게 다 행할 것이요 그 여인이 낳은 첫 아들이 그 죽은 형제의 이름을 잇게 하여 그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서 끊어지지 않게 할 것이니라 (신명기 25:5-6)


[3] 노예로 팔린 가족을 되찾는 역할 → 경제적으로 어려워 노예가 된 가족이 있다면, 기업 무를 자가 값을 치르고 속량해 준다.


만일 너와 함께 있는 거류민이나 동거인은 부유하게 되고 그와 함께 있는 네 형제는 가난하게 되므로 그가 너와 함께 있는 거류민이나 동거인 또는 거류민의 가족의 후손에게 팔리면 그가 팔린 후에 그에게는 속량 받을 권리가 있나니 그의 형제 중 하나가 그를 속량하거나 또는 그의 삼촌이나 그의 삼촌의 아들이 그를 속량하거나 그의 가족 중 그의 살붙이 중에서 그를 속량할 것이요 그가 부유하게 되면 스스로 속량하되 (레위기 25:47-49)


[4] 피의 복수를 하는 역할 → 가족 중 누군가가 부당하게 살해당했을 경우, 기업 무를 자는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원수를 갚을 수 있다.


피를 보복하는 자는 그 살인한 자를 자신이 죽일 것이니 그를 만나면 죽일 것이요 (민수기 35:19)


당시 나오미와 룻을 위해 기업 무를 자는 이러한 역할을 감당해야 했다. 나오미(엘리멜렉) 집안의 밭을 그의 돈으로 사야 했고, 룻을 아내로 맞이해야 했다. 룻과의 사이에서 난 자식은 율법에 따라 엘리멜렉의 가문을 이어가야 했다.


그러나 첫 번째 기업 무를 자는 이를 거부했다.


그 기업 무를 자가 이르되 나는 내 기업에 손해가 있을까 하여 나를 위하여 무르지 못하노니 내가 무를 것을 네가 무르라 나는 무르지 못하겠노라 하는지라 (룻기 4:6)


기업 무를 자가 되려면 경제적 부담과 희생을 감수해야 했는데, 첫 번째 기업 무를 자는 이를 원하지 않았다. 그러나 보아스는 이 모든 것을 감수하며 룻을 아내로 맞이했다.


2. 오벳: 율법과 은혜 사이에서 태어난 자


베레스의 계보는 이러하니라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헤스론은 람을 낳았고 람은 암미나답을 낳았고 암미나답은 나손을 낳았고 나손은 살몬을 낳았고 살몬은 보아스를 낳았고 보아스는 오벳을 낳았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더라 (룻기 4:18-22)


율법대로라면 오벳은 엘리멜렉의 후손으로 기록되어야 했다. 그러나 성경은 그를 보아스의 후손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보아스는 사사기 시대에 베들레헴의 한 가정을 위한 기업 무를 자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실 예수님의 모형이었다. 예수님도 우리를 구속하셨지만, 단순히 율법을 따른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새로운 정체성을 주셨는데 보아스가 이미 이것을 예표한 것이다. 오벳이 엘리멜렉의 후손이 아닌 보아스 가문의 자녀로 인정된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 안에서 새로운 가문의 일원이 될 수 있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갈라디아서 3:29)


예수님이 우리의 기업 무를 자가 되셨기에, 우리는 더 이상 죄의 자녀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을 룻기의 보아스의 계보와 오벳의 정체성 변화로 더욱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3] 기업 무를 자 예수님과 또다른 보아스가 될 나


룻에게 보아스가 있었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예수님이라는 기업 무를 자가 계신다. 예수님은 우리의 잃어버린 생명과 영생의 권리를 찾아주셨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값을 대신 치르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가족으로 삼으셨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로마서 8:15)


예수님이 나를 구속하셨다면, 이제 나도 또 다른 나오미와 룻을 품어줄 보아스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고향에 돌아온 나오미처럼 믿음을 떠난 자들이 다시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도울 수 있을 것이다. 룻처럼 소외된 이들을 돌보고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진리를 전하고 복음을 전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수님이 나의 기업 무를 자가 되어 주셨듯이, 나도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할 수 있을 것이다.


<기도문>


하나님 아버지,

룻기의 이야기를 통해 예수님께서 우리의 기업 무를 자가 되셨음을 다시금 깨닫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율법대로라면 나는 하나님의 가족이 될 수 없는 자였지만, 예수님이 나를 구속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셨습니다. 저도 보아스처럼, 누군가의 기업 무를 자가 되게 하소서. 누군가의 삶을 위해 나의 유익을 희생하고, 누군가의 아픔을 보듬고, 그들을 다시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요한복음 13장 34절 말씀이 내 삶이 되게 하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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