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의 변덕으로 흐렸다가 맑았다가 갑자기 비가 내리기 바람에 하우스 철거 작업이 더 힘들었다.
천장 창, 벽면의 창이 열려 있어야 흙먼지도 덜 마시고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이 더위도 식혀 준다. 비가 내리면 우천 센스가 발동하여 모든 창들이 자동으로 닫아 버린다. 적정 온도에 따라 열고 닫기를 자동으로 시켜주는 환기 시스템이지만 수동으로 돌려 열기로 멈춰 두어도 자기주장이 강한 우천 센스는 비가 오면 어김없이
자기 일을 해내고 만다. 비가 내리면 열기를 식혀 줄 것 같지만 여름 하우스 안은 열기와 습기가 더해져 후덥지근 해진다. 날리는 흙먼지까지 더 해지면 그다음은 상상에 맡긴다.
다음 작기를 위해 철거 작업은 중요한 단계이다. 여태 자란 고추나무들이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시간이다.
땅에 유기물로 양분이 되어 줄 것이다. 여러 날에 걸쳐 하나하나씩 설취했던 것들을 단시간에 철거하는 것은
힘이 많이 들었다.
수분 공급을 위한 점적 호수와 수분 증발을 막고 풀 나는 것을 방지해 주는 멀칭 비닐을 걷어 낸다.
19줄 고랑고랑을 다니면서 멀칭에 떨어져 있는 잎들을 털어 내고 점적 호수의 연결 마개와 밸브를 불리해서
모아 둔다. 점적 호수와 멀칭 비닐을 걷어 내고 병충해 방제를 위한 약줄도 풀어서 돌돌 말아 두면 작업 첫째 날이 벌써 지나가버렸다.
둘째 날은 고추 지지를 위한 T자 모양의 철로 만든 지지대를 뽑아야 했다. 지지대는 고추가 바로 설 수 있도록
옆 줄을 치는데 그것의 높이와 유지를 위해서 줄과 T자 양쪽 끝을 꽃철사로 묶어둔다. 천장에서 내려오는 유인줄도 함께 묶는다. 손으로 일일이 풀어내야 한다. 그러다 보면 또 하루가 지나간다.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면서 100m를 여러 번 왕복해서 움직인다. 작업이 끝나고 나면 다리에 감각이 안 느껴지는 것 같다. 자고 일어나면 내 다리가 어디에 달려 있는지 내 허리가 어디 인지 통증이 말해주는 것 같다.
셋째 날부터 철거 작업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진다. 세세한 티 안나는 작업들이 끝나고 이제부터는 고추나무들이
한 줄씩 자연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일하는 티가 팍팍 난다.
유인 줄들을 트랙터에 묶어서 잡아당기면 고추나무들이 뽑히거나 옆으로 쓰러진다. 그 위를 트랙터가 지나가면 흙과 함께 갈려서 길이 생긴다.
그 길을 따라 천장에서 내려오는 하얀 유인 줄을 묶어서 천장 하우스 뼈대로 걸쳐 놓으면 된다.
말은 참 쉽다. 유인 줄에는 스테이플러 침이 박혀 있다. 옆줄을 잡아 주는 역할을 할 때 고정을 위해서 박아 둔다. 딱딱딱 박아주면 일이 빠르게 진행되기 때문에 사용하고 있다. 철거 시에는 줄을 잡아당기기 때문에 줄에 그대로 박혀 있거나 한쪽이 빠져서 대롱대롱 달려 있다. 줄을 말아서 올리다 보면 손에 박히기도 하고 내 손은 상처로 가득하다. 앞뒤 쪽에 묶어둔 줄을 자르다가 손을 베었다. 깊이 베였는지 피가 꽤 많이 나왔다.
이 것만 하고 휴식을 취하려고 했는데.. 남편의 재촉 덕이다.
좀 쉬자는 말에 알았다고 했는데 빨리 나오라는 통에 피를 보고 만 것이다. 표정이 어두진 남편이다.
작년 3월에 전동가위에 손을 잘렸다. 다행히 뼈진적까지 잘려서 응급실을 다녀왔던 기억이 났던 것 같다.
하필 오른손 엄지 바깥쪽 마디 가까운 곳이었는데 일할 때마다 붙여 놓은 밴드가 빠져 버렸다.
피도 나고 욱신거렸다. 그렇다고 일을 안 할 수도 없다. 둘이서 해야 그나마 빨리 끝이 나기 때문이다.
쓰고 남아있던 탄력테이트가 있어서 동동 감아서 일을 이어 갈 수 있었다.
열기에 물을 많이 마셔가면 중간중간 휴식을 취하면서 일이 반쯤 진행되었다. 만개가 넘는 줄을 묶어서 일일이 위로 던져 올리다 보니 팔이 아파왔다. 이건 몸살이 올 각이다.
양손을 사용하기는 하지만 주로 왼손 쪽 손을 쓰다 보니 어깨에 통증이 느껴졌다.
우리는 철거 중인데 옆 하우스는 새로 시작하는 중이다. 사람들 소리가 들려서 창문 너머로 바라보니 모종을 심고 있었다. 옆 하우스 창가 쪽으로 겨울에 단열을 할 때 쓰는 벽면 이불을 올렸다. 창을 닫으면 순환이 안되기 때문에 벽면 이불을 올려 흙먼지가 덜 갈 수 있게 배려하는 것이다.
5줄 남았을 때 작은 아이를 데리러 가야 했다. 흙먼지를 털어내고 세수를 했다. 머리를 빗고 외출용 모자로 바꿔 쓰고 아이 학교에 도착해서 선생님과 인사를 나누고 돌아왔다.
오늘은 꼭 철거 작업을 마무리하고 싶었다. 남편은 계속 일을 하고 있어서 2줄이 남았다.
유인 줄을 묶어 올리고 던지고 반복하다 보니 철거 작업이 끝이 났다.
열대 나무를 심어 놓은 곳이 훤하게 드러났다. 나무가 너무 많이 자라 있었다. 고추에 열중하다 보니 약간의 방치 상태이긴 했다. 나무들 전정 작업이 기다리고 있다.
짧게 잘라서 둥치를 키우고 새순을 받아서 열매를 키우면 된다. 취미 생활도 규모가 커지면 일이 된다.
3일 동안 철거 작업을 하고 나니 여기저기 안 쑤시는 곳이 없다. 저녁에는 먼지도 많이 마셨으니 고기를 먹기로 했다. 집 근처에 공동축산이 있어서 신선한 고기를 살 수 있다. 목살로 선택했다.
술도 한잔하고 싶지만 몸이 아플 때는 좋지 않을 것 같다. 패스~
며칠간 몸살로 고생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휴식기다. 틈틈이 가을, 겨울, 봄을 위한 작기를 준비해야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