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빛의투영 Sep 11. 2024

나에 삶의 조각들

47. 비가 와서 그래.

 현관문을 나서려고 하자 후두둑 떨어지는 빗소리가 들렸다. 창으로 들어오는 빛이 어두워서 오늘 날씨는 흐리구나 생각했다. 휴대폰 날씨 알림은 하루 종일 흐림이었는데.. 비가 와서 반갑다.

계절은 바뀌었는데 아침저녁을 제외한 한낮의 더위는 여름의 티를 벗지 못했다. 36도를  향해가는 온도계는 거침이 없다. 뭘 얼마나 움직였다고 땀이 머리에서부터 흘러내린다.


습도 100%로 일지라도 숨통이 좀 트이는 것 같다. 일하기 싫은 핑계는 만들면 많다.

아이들 등굣길 운전대를 잡는다. 아직 친해지고 있는 중인 차는 운행 일주일 차다.  운전을 하루 이틀 한 게 아니라서 운전하기 어려운 것은 아니지만 차마다 특성이 달라서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유럽 감성에 풀 옵션이라고 하는데.. 어디가 풀 옵션인지는 모르겠다.

우리나라 차에 익숙해져 있다 보니, 풀 옵션하면 버튼을 터치하는 순간 자동으로 작동되는 것 아니었나.

무슨 차에 지붕은 만들다  만 건지 창은 안 열리고 밖만 보인다. 그것도 손으로 밀어서 열어야 한다.

크루즈 컨트롤은 쓰면 편하다고 하지만 별로 쓸 일은 없을 것 같고 차에서 내려 차키가 멀어지면 사이드 미러가 접히고 자동으로 잠기는  좋다. 짐이 많거나 급하게 움직이다 보면 차를 잠그는 것을 깜박하기도 하니까.

기어봉과 컵홀더 사이에 작은 구멍이 하나 있었다. '뭐 하는 거지?' 쓸 때 없어 보였다. 청소하기 귀찮게 만들어 놨다고 생각했는데.. 에스프레소 잔 놓는 곳이란다. 실소가 터졌다.

저 것도 유럽 감성인가? 가죽을 잘라서 먼지 안 들어가게 덮어 놓고 싶다.

액셀을 밟을 때 들리는 웅웅 하는 소리가 신경을 자극했다. 앞에 타던 차는 엑셀에 발만 올려놔도 가는 것 같았다는데 조금의 힘이 더 필요했다. 3 기통 엔진이라서 그런 소리가 난다고 했다. 달리는 맛이 있는 차란다.

스피드 좋지~하지만 조용한 차를 탔던지라 고장인 줄 알았다.

며칠 전 밤에 남편이랑 치킨을 사러 나갔다. 요즘은 운전하기 싫은지 달려가서 조수석에 탄다.

니차 니까 니가 하는 게 당연하다는 리다. 그래 내가 한다. 밤 눈도 어두운 내가.

산골 오지도 아닌데 치킨 배달이 오지 않는다. 정확히 말해 오긴 온다. 배달비 1만 5천 원만 내면.

이 동네는 거의 독점이 많다. 문 닫은 곳이 많고 버텨낸 가게가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새로 생긴 치킨 집이 있긴 하지만 비싸다. 내가 원하는 가게는 멀어서 드라이브 삼아 다녀온다.

운전 도중에 오소리가 튀어나와서 급 브레이크를 밟았다. 순간 내가 튀어 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브레이크 한번 강력하네."라고 말을 하는 순간 남편의 설명이 시작되었다.  드럼 브레이크라면서 어쩌고 저쩌고 비 많이 오는 날 팍팍 밟으면 안 된다고 잔소리를 시전 한다.

여기서 무심한 듯 시크하게 "어 주의할게." 한마디로 끝내야 한다. 궁금하다는 리앙스를 1%로라도 풍기면 안 된다. 집에 돌아갈 때까지 걱정을 담은 잔소리와 설명이 쭉 이어져 귀에서 피가 날지도 모른다.

다행히 오소리는 다치지 않고 잘 피해서 갔다.

"저 놈 니 때문에 살았네. 다른 사람이었으면 어두워 안 보이데 그냥 갔다."

순간 소름이 쫘악~ 돋았다. 무모한 살생은 싫었다. 아이들도 키우고 있고 하다 보니 미신 일지 모르지만 업보가 자식에게 갈 수도 있다고 들은 적이 있다.


비가 내려서 기분이 센티해진다. 늘 아이들을 데려다주지만 매일 드라이브하는 기분으로 가려고 노력한다.

물론 늦어져서 시간 안에 보내야 하다 보니 조급 해지고 낭만 따위는 찾을 겨를이 없을 때가 다반사 이긴 하지만. 오늘은 여유가 있었다. 콘서트에 가본 지가 백만 년은 된 것 같다. 비도 오고 라이브 음악을 듣기로 했다.

하나만 틀어 놓으면 유튜브 뮤직에서 알고리즘으로 비슷한 곡으로 선곡을 해준다.

마음에 들면 듣고 아니면 패스. 아는 노래는 신나게 따라 불러 주고 모르는 노래는 콧노래로 멜로디를 따라 흥얼거려 본다. 아이들은 익숙한 풍경 같은 느낌인 이다.

작은 아이는 자기가 좋아하는 동영상을 보고 큰 아이는 졸거나 그날의 스케줄, 노래가 마음에 들면 제목이 뭐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음? 우리 동네만 비가 오나?' 10분 정도 달려왔는데 날씨만 흐릴 뿐이다. 고등학교에 내려주고 중학교에 내려준 다음 길을 되돌아간다. 역시 우리 동네만 비가 내리고 있다. 뉴스에서는 전국적으로 비가 온다고 보도 했다. 같은 하늘 아래지만 신기하다.

비도 오고 시원하니 일하기 좋지만 농땡이를 부리고 싶다. 아직은 여유가 있는 편이다. 차에서 내리기가 싫다. 음악이 고막에서 녹아내리는 것 같다. 황금빛으로 물 들어가고 있는 들판도 아름답다.

남편은 하루 전에 내가 해야 일은 미루 알려준다. 어젯밤에 말이 없었으니까. 필요하면 전화를 하겠지.


집에 돌아와 컴퓨터를 켜고 키보드를 두드려 기분을 글로 써본다.

스케치해 둔 그림에 물감을 칠해 볼까? 생각 중이다. 스케치는 그나마 나쁘지 않지만 채색을 하면 누구세요? 가 된다. 연습이 많이 필요하지만 감성만은 충만하다.


이 비가 여름 티를 벗지 못 한 더위를 한 풀 꺾어 주면 좋겠다. 지금은 가을이라고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에 삶의 조각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