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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의투영 Sep 07. 2024

나에 삶의 조각들

46. 어머니의 텃밭

 일이 바빠지기 전에 해야 하는 것 중 하나는 부모님 자주 찾아뵙기다. 같은 지역에 살고 있어도 각자의 일정에 따라서 만나기가 쉽지 않다.  집 안에서 막내인 남편은 뭔가를 뚝딱 잘 고친다. 보일러의 물이 세거나, 조명이 고장 나거나 방충망이 낡아서 구멍이 나면 모두 해결한다.

양가에서 일이 생기면 전화가 온다. 엄마는 이런 사위가 무척 마음에 든단다. 술도 잘 안 마시고 담배도 안 피운다. 이야기도 잘 들어주고 다정하다며 다음 생에는 이런 사람이랑 살아 봤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신 적이 있다. 아버지는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 그 자체셨다.


작은 아이 놀이치료 가기 전에 30분 정도가 여유 있어서 잠깐 시댁에 들렀다.

일찍 가면 주차비만 더 나올 뿐이다. 2시간 수업에 1시간 30분만 무료이다.  

거실에서 휴식을 취하고 계셨던 시부모님. 어머니 텃밭 가까이 친척의 하우스와 밭이 있다. 농업 용수로 사용하기 위해서 지하수를 팠다며 사용해도 된다고 했단다.

아주버님이 수도관 파이프를 깔아만 놓았는데 그걸 연결해야 사용할 수 있다. 언제 해줄지 모른다는 하소연을 하셨다. 두 형제는 말은 꺼내 놓고 실행하는데 한참이 걸린다. 어머니는  답답하지만 닦달할 수 없다.


"어머니 걱정 마세요. 제가 내일 남편 데리고 올게요."

"너희도 일 준비하느라 바쁠 텐데.."

"심을 준비는 다 해놨어요. 시간적 여유가 조금 있으니까 내일 오전 중으로 올게요."


지금 한창 김장배추를 심는 시기다. 어머니의 밭은 천수 답인 셈이다. 하늘이 도와줘야만 농사가 잘 된다.

힘들게 물을 싣고 가서 주는 방법이 있지만 밭 전체를 주기에는 무리다.

가물어 밭작물들이 말라죽어 가고 있었다. 어머니 밭에는 여러 가지 작물들이 있다.

토란, 수수, 콩(번디콩, 작두콩, 메주콩, 결명자 등), 생강, 호박, 들깨, 배추, 파 웬만한 건 다 있다.

곧 마늘과 양파도 심을 것이다.

텃밭이 군데 있는데 다른 곳에는 감자를 수확하고 고구마와 땅콩을 심어서 한창 수확 중이다.


얼마 전 벌초를 다녀온 남편이 고구마 한 상자를 들고 왔다. 먹어치우기 프로젝트에 고구마도 포함될 예정이다. 김장배추를 심어 놨는데 말라죽어 간다는 말을 남편에게 전했다. 꼭 가야 한다고.

다음날 아이들을 등교시킨 후 남편을 데리러 밀양식 하우스에 갔다. 옆집에 정식을 한다고 이른 아침에 나갔다. 잘 지내는 형님이라서 서로 돕는다.  거의 끝났을 것 같아서 전화를 했다.


"어디야?"

"옆에 조금만 기다려라. 곧 갈게."

남편이 오자마자 연장들을 챙겨서 시댁으로 갔다. 차 타고 15분 가까운 거리에 있지만 걸어서 오기는 힘들다.

오늘 날씨는 구름이 끼어 있었지만 꽤나 뜨거웠다.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났다.

3시에 비예 보가 있지만 안 올 수도 있으니 어머니 숙원 사업을 해결해야 한다.


마당에는 검은 닭들이 돌아다니고 아버님은 통째로 뽑아온 땅콩을 따서 바구니에 담고 계셨다.

남편은 아버님을 양계장 사장님이라고 부른다.

"아이고 양계장 사장님 사업은 잘 되시고요?"라며 너스레를 떤다.


청계란 15개가 모이면 아이들 먹이라며 챙겨 주시곤 하신다. 얼마나 정성을 다해서 키우시는지 과일껍질이며 채소 자투리를 잘게 다져서 먹기 좋게 만들어 넣어 주신다. 여름에도 닭장 앞에서 시간을 보내곤 하셨다.

얼굴이 새까맣게 그을려 있었다. 달걀도 아버님만 꺼내 올 수 있다.

신기하게도 마당에 풀어놓았다가 해질 무렵이나 외출 하신기 전에 "집에 들어가자" 하시면 닭들도 알아듣고 닭장으로 들어갔다. 병아리들도 엄마를 따라 들어갔다.


어머니 텃밭에 도착해 보니 너무 심각했다. 물이 없어 살지도 죽지도 못하는 것 같은 작물들.

나는 뭐가 있나 관찰을 하고 사진을 찍었다. 이 가뭄에 풀은 죽지도 않고 생생하다. 역시 잡초.

남편과 어머니는 친척 텃밭으로 가 호수 배관을 연결해 가며 자르고 끼우고 조이고 하는 중이었다.

"비만 오면 괜찮은데 너희들을 귀찮게 하네." 바쁜데 왔다며 미안하셨던 모양이다.


철물점에 가서 필요한 T연결관과 호스를 20M을 샀다. 수도관 중간중간에 열결 해서 물이 밭고랑으로 들어갈 수 있게 만들었다. 시험 가동을 해보니 시원하게 물이 나왔다. 스위치를 어떻게 켜고 끄는지를 어머니께 설명을 드리고 호수배관에 연결된 밸브를 꼭 열어야 모터가 과부하에 걸리지 않는다며 신신당부를 드렸다.

날씨가 뜨거워서 땀으로 샤워를 했지만 기분은 좋았다. 어머니 표정도 기뻐 보였다.

어머니 댁으로 시원한 물을 한자 마시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낮잠을 한 시간 정도 잤다. 작은 아이 하교 시간이 다되어서 준비하고 나가려는데

투두둑 투두둑하는 소리가 들렸다. 예보 되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가뭄에 단비다. 비 오는 날 운전하는 것이 싫지만 너무 반가운 비라서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메마른 대지를 적셔줄 고마운 비. 거리에 가로수들도 즐거워 보였다. 곧 싱그러워질 것이다. 어머니 밭에도.

이번 가을엔 예쁜 단풍을 기대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작은 아이 학교에 도착하니 비가 더 굵어졌다. 장화랑 우산을 안 챙긴 아이는 비를 싫다고 말했다.

차를 타고 학원으로 가는 동안

"이번 비는 고마운 비야. 나무들이 목이 말라서 힘들어하고 있었어. 지금은 나무들이 너무 기쁘데."

"우와 정말이요? 비야 고마워."

작은 아이의 순수함에 미소가 지어졌다.  비가 내리고 나면 더위도 한 풀 꺾기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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