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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의투영 Sep 05. 2024

나에 삶의 조각들

45. 백수는 끝났다.

추석이 다가오고 있다.  산업도로가 인접해 있는 곳에 살고 있다 보니 아침에 줄지어 서있는 차들을 자주 본다. 컨테이너를 실은 차들이 많이 다니면 경재가 잘 돌아가는 거라고 했다.

요즘은 경재가 좀 불안정하고 어려워 보인다. 산업단지들도 풀이 죽은 느낌이다.


차가 막힐 길은 아닌데  정체로 인해 귀성길 행렬처럼 쭉 늘어섰다. 안 그래도 바쁜 출근길 마음이 조급해진다. 사고 났나? 한쪽 차선을 막아 놓았다.

명설이 시작되기 전 고향을 단장하듯 도로 정비와 풀을 베고 가로수를 전정하고 있었다.

하필 바쁜 아침이냐고 화를 낼 수도 있겠지만 일하시는 분들 마음도 바쁠 것이다. 명절 연휴가 시작되기 전까지 다 끝내야 할 테니. 밤늦게 까지 아스팔트 포장을 하는 것도 보았다.  

며칠간 귀성길이나 단풍놀이의 길 막힘을 간접 체험했다.

일가친척들이 가까이에 살다 보니 멀리 갈 일이 없다. 멀리 있어도 작기가 시작되면 하우스를 벗어날 수가 없다. 차례를 지내고 곧 장 농장으로 출근이다.


아쉬운 나의 휴식이 끝 남과 동시에 일이 시작되었다. 가을에서 봄까지의 작기 준비해야 된다.

작물은 늘 하던 오이맛 고추를 한 동하고 11월에는 쥬키니 호박을 심어 볼 예정이다. 모두 걱정이 많다.

그게 돈이 되겠어? 뭘 새삼스럽게 걱정을 하고 그러는 건지 모르겠다.

농사도 도박인걸 알면서 그 해에 같은 작물이 얼마나 심겼나에 따라서 시세가 춤을 출 것이다.

너무 추우면 돈이 많이 들 것이고 겨울이 덜 춥거나 비가 많이 오면 병충해로 약 값이 많이 들 것이다.

원데이 투데이 농사를 지으시나 하면서 벌써부터 걱정하냐면 핀잔을 준다.

걱정은 넣어둬~ 열심히 준비하고 최선을 다하다 보면 좋은 결과도 따라오겠지.


해마다 농사의 스킬이 늘어간다. 이제는 뭘 해야 하는지 몸이 자연스럽게 움직인다. 언제 다하나 싶은 것들도

눈은 게으르고 손은 빠른다. 하루 종일 쫓아다니며 종종 거리던 모습은 사라졌다.

반나 절이면 끝이 나고 여유가 생긴다.

둘이서 꼬인 줄을 풀어가면 손발이 안 맞아 화를 내기도 했지만 이제는 싸울 일이 없다.

필요한 것들을 만들어가며 나름 발명가가 되어 가는 남편 덕에 일이 한결 더 쉬워졌다. 서로가 각자 맡아서 할 일을 하면서 일의 능률이 좋아진 셈이다.

5일에 정식을 하기로 했는데 주문한 모종이 조금 덜 자랐다고 한다. 7일로 미루어졌다. 이틀 지난다고 많이 클 거 같지는 않지만 뭐.. 조금 더 여유롭게 준비하면 된다.

작년 농사는 망했다. 그래서 올해는 더 잘해야 한다.  친정부모님의 걱정을 그만 듣고 싶다.

40년이나 농사를 지으셨던 아버지. 마음은 훤하다. 몸이 안 따라와 주니 구경조차 안 오신다.

이 번에는 제발 농사를 잘 지어서 주머니를 두둑이 채워 보자.


가을이 내려앉은 기분이 드는 오후다. 가로수 잎들의 색이 변했다. 이 맘 때가 되면 가물어서 타들어가는 듯이 잎이 말라버리는 경우를 많이 봤다. 가물다 보면 잎은 물도 들기 전에 말라 떨어져 버렸다.  예쁜 단풍들을 본 게 언제 인지 모르겠다. 이번 가을에는 예쁜 사진을 많이 찍어 보려고 했는데.. 불안한 마음이 든다.


9월이 시작되면서 아이들이 다시 학원에 가기 시작했다.  큰 아이는 포토샵을 배우기 위해 컴퓨터 학원과 미술학원을 작은 아이는 미술학원만 다닌다. 비용이 늘었지만 뭔가를 배운다는 것은 좋은 것이다.

요즘 포토샵 배우려고 학원을 찾는게 더 어려워졌다. 많이 있던 학원들이 문을 닫았다.  

멀리 있는 학원까지 가야 해서  학원 끝나고 두 아이를 데리고 와야 한다.  다행히 학교에서 한 번에 가는 버스가 있단다.  


작은 아이 학원 끝나고 핫도그 하나 먹으면서 공원산책을 하자고 했다. 오랜만에 핫도그를 먹을 생각에 갑자기 허기가 졌다.  가게 앞에 도착하니 정기휴일이다. 실망한 작은 아이의 눈망울이 슬퍼 보인다.

공원에도 푸드트럭이 있기 때문에 가보자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아니 여기는 또 왜 쉬는 건데.. 망했다. 슬쩍 눈치를 보다가 나중에 오빠 데리러 가면서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 사주겠다고 말했다. 조금 기분이 풀린 것 같았다.


작은 공원이지만 연못도 있고 메타세쿼이아길도 있다. 간혹 연못에 물고기 밥을 주는 사람도 보인다.

오늘은 아무것도 들고 온 것이 없어서 걷기만 했다. 발소리만 듣고도 물고기가 모이기도 한다.

계절의 변화인 건지 가물어서 그런 건지 메타세쿼이아 나무 잎도 갈색 빛이 돈다.

가을이라서 그런지 하늘이 참 예쁜 것 같다.  연 못에 보라색 연꽃이 피어 있어서 너무 예뻤다.

그려 보고 싶은 생각에 여러 각도로 사진을 찍었다.


어느 책에서 읽은 글 중에서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 사진은 찍는 순간 과거가 된다. 추억이 된다.

우리는 그 추억으로 살아간다.


하고 싶은 것이 많으니까 마음을 다 잡고 돈 벌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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