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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의투영 Sep 04. 2024

나에 삶의 조각들

44. 작가명을 바꾸다.

 남편이 차등록신고를 하기 위해서 지인에게 서류를 받아야 했다. 만난 김에 점심을 같이 먹자고 했다.

주꾸미를 먹기로 했다. 남편이 좋아하는 음식점 중에 하나다. 일 년에 4~5번은 꼭 온다.

매운 걸 잘 먹지 못했던 남편은 나를 만나서 매운 음식에 맛을 알게 되었다.


지인은 막걸리와 파전이 먹고 싶다고 했지만 여기는 숯불 향을 입힌 양념 주꾸미가 메인이다. 도토리 전과 고르곤졸라 피자 중에서 하나를 골라 먹을 수 있다.

항상 피자를 선택했지만 오늘은 도토리 전으로 주문을 했다. 맥주 한 병과 함께.

내가 덜어 먹어도 되는데 과잉친절을 베푸는 남편으로 인해 매운 주꾸미 양념 범벅으로 비벼 먹어야 했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매운 건지. 밥을 절반도 먹지 못했다. 물로 배를 채운 셈이다.


남편은 언제 지인한테 내 이야기를 했는지.

"제수씨 작가라면서요? 그런 재주가 있었어요?"

"아 네. 뭐 글 쓰는 것을 좋아해요."

도서관에서 다 같이 모아서 쓴 글이 출간되기는 했지만 소장용이지 판매용은 아니라서 민망한 상황이었다.

물론 브런치에서 활동하고 있어서 작가 타이틀을 달고 있기는 하지만 밖에서 작가라고 하고 말하기는 아직 부끄럽다.

브런치에서 볼 수 있다고 알려 주면서 작가명을 알려 주었다.

"오할인간 검색하시면 돼요."

"오할 이면 반피 아이가?"

경상도에서는 오할을 50%로 반밖에 안 되는 사람으로 반피라고 부른 단다. 남편이 50대에는 할리를 타고 싶은 사람이라는 뜻으로 오할인간이 있다면서 다른 뜻으로 해석해서 그것으로 써라고 했다.

당시에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모 아니면 도라는 생각으로 50%로의 확률이라는 뜻이기도 했지만 어쩌다 보니

반푼이 모지리가 되어 버렸다.

배경 음악으로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냐'라는 음악이 깔리는 기분이 들었다.


안 그래도 너무 급하게 지어서 바꾸고 싶은 생각이 들고 있기는 했다. 마땅히 떠 오르는 것도 없었다.

그런데 모자라는 사람이 되기는 싫었다. 한 참을 곰곰이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공원을 산책하면서 보았던 연 못에 비치는 햇 빛. 그리고 이 번에 읽었던 빛이 이끄는 곳으로 라는 책에서 

느낀 것을 작가명으로 만들고 싶었다. '빛의 투영'으로 정했다. 투영의 사전적 의미는 물체의 그림자를 어떤 물체 위에 비추는 일 또는 비친 그림자이다. 그래서 빛이 비친 그림자라는 의미로 만들어 보았다.

 

처음엔  그냥 본명으로 해? 하다가 성까지 똑 같은 유명한 소설가와 작사 작곡가가 있었서  안될 것 같다.


바꾸고 싶었는데 바꿀 기회를 준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농담처럼 한 말에 화를 낼 수는 없지 않은가?

기분이 썩 좋은  아니지만.

열심히 글을 써서 좋은 작가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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