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행복
메마른 가지에 생기가 돈다. 노랗고 하얀 꽃들이 자기 존재감을 드러내는 봄이 왔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초록은 잡초다. 생명력이 참 끈질기구나. 작년에 왔던 각설이가 죽지도 않고
또 왔네 같다. 잔디는 아직도 깨어나지 않았는데 잡초 천지로구나. 제초제를 뿌려야 하나 뿌리까지 캐내야 하나 생각만 하고 있다. 그 와중에 파란 쪼꼬미 꽃은 이쁘긴 하다.
바람에 실려오는 은은한 향기에 마당 한편에 비파나무가 꽃이 피었다는 것을 알았다.
소안도로 여름휴가를 다녀오면서 얻어 온 접목 2년생 비파가 심은지 5년 만에 열매를 맺었다.
작년부터 비파 맛을 보게 되었는데 별미다. 대과종이라고 했는데 생각보다 알이 작다. 솎아내길 해줘야 할지도 모르겠다. 날씨의 변덕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다. 하우스 안은 벌써부터 찜통 속이었다가 차가운 바람이 불어 휘청이게 했다가 3월에 눈까지 흩날려 준다.
날씨가 풀려서 기름을 안 넣어도 될 것 같다 생각했는데 2000L를 더 넣었다.
3월부터 나오는 물량부터가 진짜인데 벌써 삐그덕 거린다. 반짝 추위 일거라고 애써 다독여 본다.
그래도 작년보다는 살만하다. 바쁘다 보니 그림 그릴 시간도 없지만 작기가 끝나면 두 달이라는 휴식이 주어질 테니 그때 즐기기로 한다. 6월에는 농민수당 30만 원이 나온다. 그걸로 미술 학원을 두 달 다녀 볼까 생각 중이다. 너무 기초가 없다 보니 주춤해지는 것 같기도 하다.
이번 주도 벌써 다 갔다. 내일이 벌써 3월 넷째 주 토요일 글쓰기 모임이 있는 날이다.
이 번달 주제는 '행복'이다.
주제 : 오랜만에 느끼는 설렘
늦은 오후 아이를 데리러 가는 도중에 전화벨이 울렸다. 6년이나 함께 했던 재활미술 선생님이 셨다.
지금은 대학생들을 위한 상담을 해주는 곳으로 가신 분이다.
오랜 시간을 함께 했던 만큼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해서 상당 부분을 알고 계셨다.
치유 농업사 2급 양성 과정이 공고로 올라왔는데 내 생각이 났다고 했다. 내가 꿈꾸어 오던 체험농장을 하기
위한 요건으로 좋을 것 같다고 말이다.
국가에서 시행하는 국가 자격증이다. 6차 산업에 관심이 많은 나는 해외사례들의 책을 찾아서 보고 여러 체험농장들을 아이들과 다니면서 경험을 하고 있었다.
남편은 시설을 나는 운영하는 프로그램을 살펴보고 아이들은 체험을 한다.
전국의 유리 온실이나 하우스로 된 정원들을 찾아다니면서 공부하고 자료들을 쌓아 갔다.
씨앗부터 키운 열대 식물들과 접목해서 키운 시트러스들 처음엔 취미였지만 아이들과 함께 키우고 가꾸다 보니 자연이 주는 힘을 알 것도 같다.
딱 내가 해야 될 것 같은 아니 내가 하면 누구보다 잘할 것 같은 일이다.
공고가 올라오자마자 전화를 주시고 카톡으로 2025년 치유농업사 모집 안내 공고문을 보내 주셨다.
심장이 두근 거린다. 아주 오랜만에 도전해 보고 싶은 의지가 불 타오른다.
모집 요강을 찬찬히 살펴본다. 접수 기간은 3월 10~3월 21일까지다.
신청 대상은 자격을 희망하는 사람 또는 치유 농업 관련업에 종사하거나 관심이 있는 사람.
음.. 나지. 하면서 아래로 아래로 쭉쭉 읽어 내려간다. 교육 기간은 4월 25일~7월 12일까지이고 수업은 금요일, 토요일 10시부터 6시까지 풀로 한다. 벌써부터 허리에 통증이 오는 것 같지만 기술센터 교육에 익숙해져 있는 상태다. 교육시간은 총 142시간(이론 94, 실습 48)이다.
실습은 내가 정해서 가는 것이 아니면 좋겠다. 교육하는 곳에서 포함하여 진행하면 좋겠다. 대면 교육이며
교육비는 130만 원이 든다. 원서접수 이메일, 우편 및 방문 중에서 고르면 된다. 나는 이메일로 접수하기로 정했다. 제출 서류는 신청서, 자기소개서, 개인정보 이용동의서, 각종 증명서(졸업 증명서, 수료증, 사업자등록증, 농업경영체 등록증 등).
자기소개서라.. 언제 써봤는지 기억도 안 난다. 백만 년은 된 기분이 든다. 요즘은 어떤 트렌드로 쓰는지 몰라서 검색의 힘을 빌려 보려고 했는데 뭐라고 키워드를 넣어야 할지 모르겠다. 자기소개서라고 검색하니 책소개와 온통 돈 주고 써주는 곳 광고뿐이다. 아~ 막막하다.
경남에 딱 한 곳에서 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모일 것이다. 선착순이 아니라 1차 서류심사와 2차 면접까지 합격해야 한다. 내가 40명 안에 들 수 있을까? 하고 싶다는 의지 만으로 할 수 있는 게 맞을까? 하는 걱정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자격증이 있으면 가산점이 붙는다. 나는 아직 아무것도 없다.
원예종자기능사를 따 보려고 일단 책만 사둔 상태다. 하~ 한숨이 저절로 나온다.
그러다가 기술센터에서 원예치료사를 이수했던 것이 기억이 났다. 어디에 뒀더라 온 집 안을 뒤지고 다녔다.
구석에 잘 모셔두는 바람에 한참을 찾아다녔다.
이 걸로 빈칸 한 줄은 채웠다. 125시간 이수였는데 열심히도 다녔던 모양이다.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다녔다고
모범상도 함께 들어 있었다. 이거라면 교육 신청 목적과 학습의지란에 피력이 되지 않을까 해서 같이 스캔해서 첨부하기로 했다. 심화과정도 그 대학에서 했기 때문에 인정이 되면 좋겠다.
자기소개서 쓰는 것을 골돌이 생각하다 보니 일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밤마다 두통에 시달렸다.
남편은 너무 잘 쓰려고 하면 실수를 할지도 모르니 대충 써서 보내란다.
올해 못하면 내년에 하면 되지 뭘 그렇게 고민하냐며 말을 하지만 막상 다 써서 읽어 보라고 하니 여기가 매끄럽지 못하다 문맥이 안 맞다며 열심히 고쳐 주고 있었다.
쳇지피티의 도움을 조금 받기도 했다. 계속 원하는 바를 추가하고 간결하게 정리를 해달라고 끝임 없이 주문했다. 마지막 날까지 끌고 오고야 말았다. 아직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 맞다. 농업 경영체 등록증을 떼오지 않았다. 부랴부랴 면사무소로 달려갔다가 남편 이발도 하고 엄마 댁에서 점심까지 먹고 왔다. 마감시간까지 3시간 남았다. 마음은 급하고 속은 타들어 갔다.
본인 소개, 교육 신청 목적과 학습의지, 치유농업 경험, 이수 후 활용방안 적어야 할 것이 많다.
쓰고 싶은 말은 많은데 2쪽 내로 제한이 걸려 있다. 군더덕 이를 빼고 간결하고 절실함이 느껴지게 열심히 썼다. 진짜 오랜만에 아는 단어 다 끌어내고 머리를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고 했더니 진이 빠지는 것 같다.
개인정보 동의서에 사인해서 스캔해야 하는데 잉크가 굳어 버린 건지 아주 희미하게 뭔가 보일락 말락하게 출력되었다. 하필 이럴 때 시간도 얼마 없는데 큰 일이다. 남편을 호출해서 봐달라고 했더니 완전히 굳어 버렸단다. 그러더니 제출처에 전화를 해서 사정을 말하니 처리해 준다고 했다. 안도의 한숨을 내 쉰다.
마감 2시간 전 실수를 할까 봐 몇 번이나 빠진 서류가 없나 확인하고 오타 체크하고 메일을 작성했다.
메일 주소도 꼼꼼히 다시 봤다. 간략하게 신청서와 개인정보 동의서에 사인을 못 했다고 대신 부탁드린다고
글도 썼다. 죄송하고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보내기를 누르는데 손이 떨린다.
보내기 성공이라고 떴다. 가슴이 미친 듯이 뛰었다. 제발 좋은 소식이 오면 좋겠다.
내 생일에 발표가 난다. 좋은 결과가 오려고 날짜가 같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오랜만에 하얗게 불 태우고 제만 남은 기분이 든다. 하고 싶은 일이 있다는 것은 행복하다는 것이겠지?
뭔가 말할 수 없는 벅찬 기분이 든다. 컴퓨터와 사투를 끝내고 홀가분한 기분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나에게도 봄이 오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