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가 있는 글쓰기

11. 세월호

by 빛의투영

봄비를 이토록 간절히 기다린 적이 있었던가 싶다. 가물어도 너무 가물다.

물이 깨어난다는 이 계절에 많은 것들이 타들어 가고 사람 마음마저도 타들어 간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안타까운 소식에 마음이 쓰여 발만 동동 거린다. 가까운 곳에서 계속 들려오는 인명 피해 소식에 뉴스를 계속 검색하게 된다. 비만 푸근하게 내려 준다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텐데..

비 소식은 까마득하다. 가까운 지역에서 난 산불의 재가 여기까지도 날렸다.

드디어 비 소식을 들었을 때 제발 대지를 푹 적실만큼만 와주길 두 손을 꼭 잡고 간절히 빌었다.

그런데 그 비는 참 야속하게도 찔끔찔끔 차에 앉은 먼지만 얼룩으로 만들 정도만 내렸다.

거기다 바람은 왜 더 강해지는 건지..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산불이 어느 정도 진화 되어 갈 때쯤 이틀 동안 밤에 비가 푸근하게 내렸다.

가물어 가던 대지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나무에 물이 오르고 끝이 말라가 던 마늘 밭에도 싱그러움을 가득

담아냈다. 봄 날씨가 이상하다. 배꽃이 필 무렵이면 추위는 거의 끝이 나야 하는데, 아침의 기온이 오르지 않고 아직은 추웠다. 다른 곳에서는 눈이 내린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작은아이 초등 1학년 때도 4월에 눈이 오긴 했다. 많이 내린 눈으로 등교 시간을 늦춘다는 문자를 받았던 기억이 어렴풋이 났다.


봄은 왔는데... 아직 마음의 봄은 오지 않은 듯하다. 여기저기에서 따뜻한 소식이 많이 들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어른 김장하 영화가 재개봉해서 너무 기쁘다. 시사회 참여해서 눈시울을 적시며 봤던 영화다. 마음속 깊은 울림을 주었다. 어릴 때 그 한약방 앞을 많이 지나다녔는데 그때는 알지 못했었다.

다시 한번 더 보고 싶다. 아이들과 함께. 꼭 한 번은 보시라 권하고 싶다. 진정한 어른을 만날 수 있다.


이 번 4월의 글쓰기는 세월호 11주기를 맞아서 세월호에 대한 글을 쓰기로 정했다.

그때를 떠 올리면 눈물이 날 것 같다.


주제 : 세월호를 기억하며..


벌써 세월호 그날이 11주기가 되었다. 그때 그날이 생생히 기억난다.

큰 아이가 7살이었다. 지금은 수학여행을 가던 그 아이들의 나이가 되었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 그날은

절대로 가슴속에서 지울 수가 없을 것 같다.

지나가다 노란색이라도 보게 되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차에 몇 년 동안이나 노란 리본 스티커를 붙이고 다녔으니까..

그때 나는 리본아트에 빠져 있었다. 노란 리본을 꺼내 리본을 만들어 아이 가방에도 달아주고 주위 지인에게도 나누어 주기도 했었다. 간절한 마음을 담아 살아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을 가득 담아서.

텔레비전 앞을 떠나지 못하고 뉴스를 보며 마음은 팽목항에 가있었다.

구조가 늦어질수록 인명 피해가 자꾸 늘어만 갔다. 도대체 무얼 하고 있냐고 소리도 치고 살려 내라고 소리를 쳐 보지만 내 목소리는 공중에 흩어질 뿐 전달되지 않는다.

제발 살아 달라고 살아서 돌아오라는 간절했던 모두의 마음은 닿지 않았다.

나는 블로그 대문에 '어른으로서 아무것도 하지 못해서 미안해.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라는 글을 게시했었다. 아주 오랫동안.


일을 하면서 시간을 알기 위해서 켜두며 듣는 라디오에서 세월호 이야기가 나왔다.

여성시대 양희은 님의 아침창가에서라는 코너에서.

"미국 캘리포니아 남부지역에 규모 2.5의 지진이 일어났답니다. 지진이 났으니 동물들도 혼비백산할 텐데 동물원에 흩어져 있던 코끼리들은 우르르 달려와 둥글게 서서는 새끼들을 둘러 싸기 시작했답니다.

새끼를 보호하려는 그 집단 방어 행동을 경계원형이라고 한다죠.

동물들도 어린것을 지키려 그렇게 집단 방어를 하는데. 우리 사회는, 우리 국가는 어떠했던 가요? 오늘은 세월호 참사 11주기, 우리 눈앞에서 배가 서서히 가라앉아가던 그 안에 아이들이 가득한 걸 알면서도 눈 뻔히 뜨고 죽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그 무기력하던 시간들을 정말 그때 아무것도 할 수 없던 상황이었나? 물음표는 세월이 가도 커져만 갑니다. 하여 우리는 그날을 다시금 기억합니다. 우리 사회의 잘 못과 과오를 반성하기 위해,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서 그 참혹한 사건의 교훈을 잊지 않기 위해서 그날을 영원히 기억해야 합니다. 그날 2014년 4월 15일 저녁에 인천항에서 출발한 세월호는 476명을 태우고 제주로 향했고 다음 날인

4월 16일 온전 8시 52분에 배에 탄 단원고 학생이 배가 기운다고 119에 신고했습니다.

오전 9시 32분 현장에 해경이 도착했지만 304명은 배에서 나오질 못 했죠.

그날 선장과 선원, 해경이 퇴선 하라고만 했어도, 안에 가만히 있어라 하지 않았어도, 해경이 도착하자마자 이 배안의 상황만 파악했어도, 그날의 참사가 없었다면 지금쯤이면 서른을 앞두고 분주히 꿈을 이루어가고 있을 아이들이 투명한 영혼이 되어 우리 주변을 떠돈다 생가하면 너무 미안합니다. 그날 세월호가 침몰한 이유는

국가가 재난에 처한 국민을 구하지 않아서였습니다. 평소에 안전관리를 소홀히 해서였고 참사가 반복되고 또 반복되게 놔둬서였습니다. 그 뼈아픈 사건을 겪은 후에도 안전 사건은 많이도 일어났습니다.

아직 실종자를 찾지 못 한 광명 신안산선 공사 현장의 분개 사고도, 공사 관계자들은 광명시에 사고 우려가 있다고 신고했고, 사고 발생 8시간 전에 고용노동부가 시공사에게 작업 중지 권고 공문을 보냈다고 합니다. 작업 중지 권고가 강제성이 없다고 해도 예방 차원에서 더 신중하게 검토하고 대처할 수는 없었을까요?

우리는 세월호 참사를 기억합니다. 나와 우리 아이들, 가족과 이웃이 사고 없이 비명 행사하지 않고 안전하게 살기 위해서 오늘을 기억합니다. 국가가 왜 존재하는 가를 다시 기억합니다."


늘 힐링하는 느낌의 멘트가 흘러나오던 라디오에서 묵직하고 뼈아픈 그때를 다시금 돼 돌아보게 했다.

먹먹한 마음이, 그날의 기억에 숙연해지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생존자였던 학생은 원래의 꿈을 포기하고 응급구조사가 되었다는 기사를 봤다. 친구들의 몫까지 열심히 살겠다고 했단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심정은 무엇으로 헤아릴 수 있겠는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무능력한 어른으로 입 딱 닫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세상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국가가 하는 일을 눈여겨 지켜보고 잘 못된 것은 바로 잡을 수 있게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가 노력해서 앞으로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은 좀 더 따뜻하고 안전했으면 좋겠다.


2014년 4월 16일 영원히 기억할게.

매거진의 이전글주제가 있는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