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가 있는 글쓰기

9. 설날

by 빛의투영

날씨의 변덕은 옷을 여미게도 하고 벗어던지게도 한다. 2월이 시작되고 이 주가 지나가고 있다.

방학이 시작될 때는 길다고 생각했다. 방학이 두 달이라니 라며 걱정을 했던 게 무색하게 집안 일도 농장일도 도와주는 큰 아이가 있어 순조롭게 지나가는 듯하다.

함께 영화를 보러 가고 체험을 하러 가도 동생도 잘 챙겨주니 많이 편해졌다.

코로나로 인해 큰 아이는 친구들과 밖에서 하는 모든 경험이 적었다. 또래들과 모여서 노는 것을 집에서 컴퓨터로 모두 대체하고 있는 것이다.

또래와의 소통까지도. 나름 즐거워 보이니 다행이라고 해야나.. 싶다. 요즘 애들은 가르칠 것이 참 많다. 당연히 알 거라고 생각했던 것들까지도. 나도 몸에 배어 있는 것은 경험으로 배웠던 것이 많기 때문에 상황을 설명해야 하는 것들이 종종 있다. 2월은 유난히 짤은 달이라서 금방 지나가 버릴 것 같다.

이번 달의 글쓰기 주제는 설날이다. 두 달 만에 모임에 가게 된다. 그동안 잘 지냈는지 근황이 궁금하다.


주재: 명절 증후군


설날이 다가 오는 일주일 전부터 신경이 곤두선다. 신경 써야 할 것이 많았다. 명절 선물을 인터넷에서 열심히 고른다. 가격대비 실속이 적거나 비싸다. 흔한 선물 말고 너무 비싼 거 말고 이리저리 뒤적거리다 보면 시간이 훅 지나가 있다. 택배가 끝나 버리기 전에 미리 받아서 쟁여두고 있어야 마음이 놓인다. 매년 중복되지 않는 선물을 주려고 노력 중이다. 그다음으로는 장보기다. 정육점에서 수육거리, 시장에서 생선, 나물거리, 과일 그리고 떡을 맞춤 주문하고 마트장까지 보고 나면 하루가 다 갔다.

지금은 작은 아버지 돌아가시고 나서 명절 차례는 지내지 말고 묘에서 간단히 챙겨가서 절만 하자해 놓고

큰 집으로 다 모인다. 설날이라서 세배를 하러 온다. 추석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명절이라 늘 오던 곳이라서 버릇처럼 오는 것 같다.

그래서 전 날에 음식을 해야 한다.

전 부치고, 튀김 하고, 생선 찌고 나물 무치고 일은 하나도 안 줄었는데 같이 해주던 형님과 동서는 오지 않았다. 차례를 안지내니 의무가 없어진 것이다. 당일날 새벽에 일어나 수육 삶고 탕국을 한 냄비 끓이고 성묘 갔다 들이닥칠 객을 기다린다.

이럴 거면 차라리 집에서 차례를 지내라고 하고 싶다.

지나가는 말로 "큰 어머니는 무슨 음식을 이렇게 많이 하셨데?" 행복해 보이는 얼굴이다.

점심 먹으러 오는 식당도 아니고 손가락 하나 까딱도 안 하는 사람들 속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작은 집 형님과 동서가 차리는 걸 도와주긴 하지만 진두지휘는 내가 한다. 사촌들이 모인 동서 간의 서열은 내가 3번째 내 아래로 두 명의 동서가 있다. 한 명은 나보다 한 살 많고 한 명은 서울에서 1년에 두 번 본다.

서먹하다. 나름 싹싹해서 노력하는 모습이 기특하긴 하다.

전투 같은 상 차리기 시작된다. 어머니께서 틈틈이 해놓으신 음식들까지 꺼내 차리니 상다리가 부러 질 것 같다. 상을 차려 내어 주고 여자들 상은 부엌 식탁에 다시 차린다. 음식을 먹다가 언쟁이 시작된다. 오래간만에 조용하다 했더니. 요즘 선호하는 고등학교가 어디인지 알아서 뭘 하려고 여기가 맞다. 저기가 맞다라며 언성이 높아지면서 분위가 싸해졌다. 우리 형님은 아이들이 다 대학을 갔고 사촌 형님은 막내가 고등학생이다.

이제 더 이상 고등학교 보낼 아이들도 없는데 왜 이런 걸로 싸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평화롭던 분위기는 한순간 냉랭해졌다. '내가 너무 오래 앉아 있었네'라는 생각이 들어서 일어났다. 나는 우리 형님과 앉아서 음식을 잘 먹지 않는다. 같이 먹으려고 앉으면 속이 불편하다.

나는 누구의 편도 들어주고 싶지 않다. 동의를 구하는 "그자 동서야?"라는 이 말이 너무 싫다.

내 의견을 내면 또 나를 못 살게 굴게 뻔하다. 내 대답은 항상 "잘 모르겠어요"라던가 상황이 만들어지기 전에

그 자리에서 벗어나는 것뿐이다. 모른다고 하면 그것도 모르냐며 타박을 한다.

내가 큰 소리를 내지 않는 것은 명절 분위기가 소란스러워지는 게 싫어서다.

몇 년 전 형님이 나물과 밥을 비비는 담당인데 안 먹는다고 했더니 날씬한 게 더럽게 안쳐 먹는다는 둥, 오늘 먹는다고 바로 살로 가느냐는 둥 험담을 하는 것을 들었다. 그날 치마를 입고 있었고 설거지하러 가는데 치마가 펄럭거려서 먼지 난다고 타박을 들은 적도 있다. 내가 하는 것은 뭐든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아 했다. 경쟁상대로 느끼는 듯했다. 나는 내 할 일만 잘하면 된다는 주의다. 자기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이 큰 소리를 치거나 나서는 건 참아지지가 않게 되었다.

예전에는 내가 하고 말지였지만 작은 시누이가 했던 말들 때문에 나를 각성하게 했다.

"잘하는 네가 더 잘해라"라든가, 어머니께서 수술하시는 동안 내가 병간호를 다 했는데 너무 늦은 시간에 병원에 온다고 해서 6인실이라 일찍 불을 끈다고 쉬는 주말에 오시라고 했다. "네가 뭔데 우리 엄마 보러 가는데 오라 마라 하느냐"라고 했었다.

이럴 때만 너희 엄마냐라고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뱉어 내지 못했다. 그럴 거 같으면 월차를 내고서 간호를 하던지 했어야지라는 말까지도. 어머니는 좋은 분이시니까.

음식을 차려 내어 가고 먹는 동안 남편과 눈이 마주쳤다. 이제 집에 갈까? 하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본다.

하우스 일은 하루도 쉬지 않기 때문에 빠져나가는 핑계로 좋다.

친정이 가까워서 명절에 친정 가는 게 괜스레 눈치가 보였었다. 점심을 차리고 설거지하고 틈틈이 다과를 내가고 해도 해도 끝이 없다. 주방 일은 티가 나는 게 아니라 으레 여자들이 하는 자연스러운 몫이니까.

차라리 하우스 일을 하는 게 더 속은 편했다. 더 머물지 않아도 눈치를 받지 않았다.


일주 일전에 남편에게 명절이 다가 오니 두통이 온다고 했다. 귓등으로 듣는 것 같았다.

다시 명절증후군이 있는 것 같다고 했더니 코웃음을 치는 것이었다. 확 마~한 대 때려 주고 싶었다.

당신이 뭘 알겠냐? 사촌들이랑 모여서 하하 호호 이야기하느라 주방에서 일어나는 일도 모르면서. 친 형님이라고 하나 있는 사람이 내 속을 얼마나 뒤집는지.

그래서 당신만 보면 살가운 말이 안나 온다는 것을.

그래서 당신 이름을 성까지 붙여서 또박또박 부른다는 것을.

그래서 당신 탓이라는 것은 아니지만 일부분 중 한 부분이라는 것을 부정하지 못한다는 것을.

언젠가는 알아주려나?

차 타고 오면서 "당신 그때 명절 증후군이라고 말하니까 웃었지? "라며 말을 슬며 시 던져 봤다.

"나 형님이 어머니 댁에 있으면 음식 아무것도 안 먹어. 그거 알았어?"

"아니. 왜?"

"먹으면 체 할까 봐."

남편은 아무 말이 없었다. 알고 있었다. 형님이 어떤 사람인지.

차려준 상은 남은 사람들이 치웠을 것이다. 집 밖으로 나온 이상 모르겠다. 알아서 하겠지 싶다.

17년 넘게 해 온 일들이 친척들에게 자리 잡은 나의 이미지는 책임을 다하는 사람이었다.

내가 내는 목소리가 먹히기는 했다. 잘 들어주시기도 했고 모두가 나빴다는 것은 아니다.

그냥 좀 버겁다는 이야기이다. 어머니도 그런 삶을 살아오셨으니 투정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


친정에서 맏이고 시댁에서 막내다. 서열은 중요하지 않지만 가끔 막내라는 것이 서러울 때가 있다.

자신 만의 잣대로 어려서 패기가 좋다거나 아직 어려서 모르는 가본데라는 말들이 싫었다.

요즘은 남편과 작은 자형의 싸움으로 모두 연락을 안 하고 지낸다. 술이 부른 참사다. 어머니 댁에서

술에 취한 작은 자형이 말실수로 남편을 자극했고 주위에 있는 사람들도 놀랐다.

평소 우리 남편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게 되는 계기가 된 것이다.

밥 먹다가 말고 집으로 돌아가는 동안 남편은 작은 누나와 작은 자형 번호를 차단해 버렸다.

나는 조금 통쾌하기도 했다. 작은 시누의 그동안 했던 막말들을 다시 안 들어도 될 테니까.


일 년에 5번의 차례상을 차려었다. 제사를 하나로 합치고 한 번의 제사상과 두 번의 명절 음식을 하고 김장을 하고 나면 일 년이 마무리된다. 물론 대소사가 중간에 끼긴 해도 큰 타이틀의 행사는 일단락 된다.

시사 소임이 되면 장 봐서 음식을 했었지만 누군가가 귀찮음을 토로하면서 맞춤으로 변했고 술과 떡만 사 오면 되는 걸로 바뀌었다.

항상 처음 순서부터가 아니라 중간부터 바뀌어서 앞에 해온 사람들의 불만이 속출해도 무시되는 것이 일수지만 간소화되었으니 편해지겠지.


명절 증후군 우습게 보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그것도 일종의 스트레스이자 트라우마가 된다.

시자가 들어가는 것이 왜 싫어지는지 알 것도 같다.

마음먹기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지만 내가 의도하지 않은 상황이 싫은 것뿐이다.

나로 인해 분위가 망쳐지는 것..

모두가 행복해지는 명절이 되길 바라본다.




매거진의 이전글주제가 있는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