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다간 무인동이 될지도!

마을 회의 참석 유감

by 홍조

마을 회관에서 열리는 동계에 참석했다. 올해로 세 번째다. 마을 분들은 예년처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나도 신발을 정리하며 오는 분들께 인사를 건네며 방 안에서 이루어지는 회의 내용을 들으려 애썼다. 방안에는 거의 남자들이 회의를 하고 여성들은 기웃거리며 회의 내용에 관심을 가졌다. 다수의 여성 노인들은 다른 방에서 이야기꽃을 피웠고, 60대 후반 내지 70대 그나마 젊은 축의 여성들이 식사 준비로 분주했다. 나는 이들을 도우며 반찬을 접시에 담고 있었다. 안에서 이장의 연임으로 회의가 마무리되는 즈음 회의장에 있던 한 여성 주민 ㄱ이 말했다.

"그만 좀 하고 다른 사람도 이장이 될 수 있게 해야지요."

다소 날이 서있었다.

"누가 후보를 내야지 말이지요."

"여자로 이장 후보를 넓히면 왜 없겠어요?"

이때 60대 젊은 축에 속하는 여성 주민 ㄴ이 말했다.

"여자가 무슨 이장을 해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릴 하셔요? 아직은 안 되는 말씀입니다."

순간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장의 연임을 문제 삼던 ㄱ여인이 말했다.

"아니, 요새 세상에 여자라고 안 되는 게 어딨어요? 여성 면장도 있고 대통령도 나왔는데!"

"그래도 이 동네는 아직 여성은 어려워요."

ㄴ의 말은 완강하고 단호했다. 지방선거 후보들의 방문으로 반박은 흐지부지되었다. 마을 회의는 마치 어릴 적 큰댁에서 지내던 제사처럼 남성 위주로 진행되고 여성은 발언권도 투표권도 없었다. 여성들은 제사를 준비하듯 회의 후의 식사 준비로 바빴다. 이런 분위기에서 여성 이장은 먼 얘기인 것이 맞을지도 모른다. ㄴ의 생각이 그러하다는 것인지 마을 분위기 상 어렵다는 뜻인지 명확히 알 수는 없었다. 분명한 것은 그녀의 말이 21세기 지금 현실에 맞지 않아도 마을의 현실을 반영한 것이긴 했다. 그녀는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본래 그녀는 노래도 좋아하고 사람을 좋아하는 수더분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다섯 아이가 있는 산골 마을 농부의 후처로 들어와 아이들을 길러 시집 장가를 보냈단다. 남편 ㅈ은 아내를 억압하여 그녀는 마을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 그녀가 견뎌내는 힘은 무엇이었을까? 남편의 억압에 맞서지 않으려면 자신을 낮춰야 했을 것이다. 전처의 아이들과 부딪히지 않으려면 남편의 가부장적 방식대로 딸들을 대해야 했을 것이다. 그녀는 더욱 외로워졌고 대부분의 마을 여성 노인들처럼 늙어가고 있다. 그녀를 포함한 다수의 노인들이 세상을 떠나면 이 마을은 무인지대가 될지 모른다. 어떤 젊은이가 이런 마을에 들어와 삶을 영위하겠는가? 애틋한 향수를 안고 태어난 자리로 돌아온 나조차도 때때로 놀라고 적응이 잘 안 되는데! 그래도 조금의 가능성이 있다면 사람마다 그의 말과 행동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그걸 알고 이해하면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농촌은 정체된 지 오래다. 찾아오는 이는 개장수와 정치인뿐이다. 일제 강점기 농촌계몽운동이나 7~80년대 농활이 어떤 변형된 형태로 필요할 수도 있다. 딸아이가 다니는 시골 고등학교 아이들의 생각과 행동이 전해 듣기 거북할 때가 많다. 교사를 모욕하고, 욕설이 난무하고, 말도 안 되는 논리로 편향을 드러낸다. 아이들을 포함하여 주민들이 염려스럽다. 누가 이들의 생각과 행동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 것인가? 존엄과 평등, 상식과 시대이념에 맞는 보편적인 그것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