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가 된 첫 해

2025년 농사 결산

by 홍조

2024년 심어놓은 봄동과 대파를 2월에 수확하여 팔기 시작했다. 꾸러미로 봄엔 냉이, 취나물, 당귀, 상추를 싸서 보냈다. 초 여름 감자수확은 힘겨운 향연의 시작이었다. 수확을 도와준 동생은 허리가 아파 앓아누웠다고 했다. 말릴 장소가 없어 거실에 비닐을 깔고 감자를 널었다. 실링 팬 날개에 흙먼지가 묻은 걸 보고 나와 가족이 그걸 마셨을 걸 알았다. 농사를 위한 부수 공간들이 부족하니 수확은 곤욕이다.

동생이 꾸러미를 받고 꼬박꼬박 대금을 보내 주었다. 살림이 서툰 내게 도움은 되었지만, 형제의 마중물로 농부의 기쁨을 알기는 어려웠다. 가을에 이웃의 고추건조기를 빌려가며 말린 매운 고추 10근을 방앗간에 팔았다. 오만 원권 4장에 농부로서 첫 기쁨을 만끽했다. 한밤에 불어닥친 세찬 비바람에 막 고추가 열리기 시작한 고춧대의 절반을 잃고, 다시 일으켜 세워가며 얻은 수확이었다. 함께 고생한 남편도 흐뭇해하며 고추농사 마수거리를 응원했다.

비가 오는 가을날 시댁 가족을 총동원하여 고구마를 캤다. 고구마 역시 잘 말려야 하는데 비를 맞았으니 걱정이 많았다. 감자처럼 마루에 널다가 그 무렵 지은 하우스 창고 흙바닥으로 옮겼다. 갑바 비닐 위에 신문지를 깔고 애지중지 커다란 고구마를 눕혔다. 흙이 마른 뒤 난방하지 않는 다용도실로 옮겼다. 내 고생스럽고 서툰 정성에 사 먹는 고구마보다 맛있다. 겨울 비상식량이 되어 줄 훌륭한 간식거리에 마음이 든든하다.

곡식과 밭작물의 지옥은 끝이 없었다. 400평 밭에 봄부터 계획 없이 온갖 작물을 심어댄 남편이 원망스러웠다. 첫 지옥은 결명자였다. 키 큰 줄기가 단단하고 알이 작아 잘 말려 가지를 두드려 털었어야 했다. 시아버님이 결명자 깍지를 줄기에서 분리하여 주셨다. 이것이 일을 더 복잡하게 만들었다. 콩깍지 보다 작고 가는 결명자 깍지를 일일이 두드리고 손으로 확인해서 수확해야 했다. 벌레나 새도 좋아하지 않는지 결명자 수확이 엄청났다. 눈에 좋다는 결명자 차를 난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 많은 차를 어찌할지 몰랐다. 잘 말리고 나서 선별의 엄두가 안나 그대로 이웃집 저온창고로 보냈다.

결명자 다음 지옥은 녹두였다. 많지도 않은데 아직도 선별이 끝나지 않았다. 농약을 치지 않고 수확시기도 놓쳐 상한 녹두가 많았다. 역시 줄기에서 떼어낸 오류로 고생을 했다. 그래도 잘 마른 녹두 콩깍지는 조금만 두드려도 s자로 구부러지며 초록색 작은 콩들을 토해냈다. 초록의 즐거움은 잠시였다. 너무 작은 것, 부서지는 알갱이, 까만 것, 갈색, 흰 곰팡이가 다녀간 것 등 못 먹는 작은 녹두를 골라내는 일은 결명자 못지않게 힘든 일이다. 어떻게든 올해를 넘기지 말아야 하기에 밤마다 눈을 부릅뜨고 골라내야 한다. 다행인 것은 한 줌 햇녹두와 찹쌀을 두유기에 넣고 끓이니 신선하고 고소한 녹두죽의 맛이 일품이다. 친정 엄마가 아주 맛있다 하신다. 치켜세운 엄마의 엄지 덕에 녹두 지옥은 내년에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백태 지옥은 메주를 쑤어 말리는 것으로 대강 마무리되었다. 백태를 수확하고 빠르게 메주를 만들어 처마에 매단 이웃에 비해, 난 한 달쯤 늦었다.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메주 만들기의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하우스에 둔 백태에 검은 것이 생겨나자 서둘러 메주 만들기에 돌입했다. 보통 이른 새벽부터 콩 삶기를 시작하여 밤늦게 끝나는 일이다. 난 오후에 콩을 삶기 시작하여 새벽 두 시까지 아궁이에 불을 때고 어둠 속에서 끓어 넘치는 솥을 살폈다. 다음날 오후에야 도시락만 한 메주 16장을 만들었다. 삭신이 삶은 콩처럼 뭉그러졌다. 남은 삶은 콩과 콩 삶은 찐득한 물을 작년과 재작년에 만든 된장에 부었다. 치대어 한 항아리에 넣고 빈 항아리를 씻는다. 음력 2월에 메주 띄울 항아리가 마련되었다. 연쇄 사슬처럼 이어지는 농사와 수확 후 가공 작업이 모처럼 딸깍 맞아떨어졌다.

제대로 맞아떨어지지 않은 총체적 난국은 아쉽게도 일 년 푸성귀 농사의 총결산인 김장이었다. 이장님께 얻은 배추 모종을 심을 때만 해도 희망은 있었다. 어린 배추에 벌레가 생기고 입마름병과 무름병이 왔다. 남편이 한랭사로 덮었는데 그 안에서 벌레는 천국을 맞이했다. 죄다 걷어내고 배추 사진을 찍어 농협에 가져갔다. 농약 3종과 영양제를 처방받아 20리터 분무기를 손수 지고 약을 쳤다. 벌레와 질병에 굴복하고 아플대로 아픈 배추에 농약을 치며 유기농을 포기한 것이 속상했다. 배추에 다시 흰 부직포를 덮어 더 크기를 기다리며 혹시 모를 냉해를 막았다. 12월 초에 김장을 했다. 시련을 이겨낸 배추포기의 크기가 내 손바닥만 했다. 나름 노랗게 속을 채우느라 애쓴 모습이었다 그 작은 배추들을 절이고 씻고 양념으로 속을 채웠다. 배추 속으로 준비했어야 할 무와 갓. 쪽파는 늦게 심어 수확이 변변치 않았다. 농사짓지 않은 마늘과 생강까지 슈퍼마켓에서 사 와 김장을 담갔다. 김장을 도와준 ㅊ과 ㅅ은 사용한 그릇들을 씻고 일을 다 마친 줄 알고 돌아갔다. 하지만 끝이 나지 않았다. 혼자 삽과 호미로 마당에 구덩이를 파고 김장독을 묻었다. 김치를 다 넣고 항아리 옆으로 흙을 넣으려는데 바닥에 물이 고였다. 수도에서 물이 새어 고인 것이다. 이대로라면 항아리와 김치에 치명적이다. 해결할 엄두가 나지 않아 눈을 질끈 감고 그냥 덮었다. 얼른 먹어 치우자! 하였다.

이제 남은 지옥은 수수와 목화다.

수수는 껍질을 제대로 까지 못하여 주문한 돌확이 오면 문질러 껍질을 까고 갈아 수수부꾸미를 해 먹거나 동동주나 수수조청을 만들어볼까 한다.

십여 년 전 문익점의 그것처럼 목화씨 두 개를 시아버님이 근무하신 학교 운동장에서 소중히 가져왔다. 손바닥만 한 빌린 텃밭에 그것을 심었다. 관상용에 가까웠던 목화를 해마다 불려 한 보따리의 솜을 딸아이 이불에 넣어주었다. 여러 해 모은 목화씨가 제법 너른 밭을 만나 키도 크고 예쁜 꽃을 피웠다. 어릴 때 기억을 더듬으며 목화삭과를 맛보기도 했다. 본격적으로 목화솜이 터지기 시작했다. 씨아가 없으니 손으로 씨를 빼고 솜을 얻어야 한다. 밤새 일해 한 움큼의 솜을 얻는다. 녹두와 함께 목화 지옥은 아직 진행 중이다.

2025년이 엊그제 시작해 이제 해의 숫자가 익숙할까 하는데 벌써 끄트머리다. 농사 첫 해 좌충우돌이었다. 온몸이 아프고 정신적으로도 아직 부적응 상태이다. 농사는 땅에 대한 책무이다. 밭에 뿌린 작은 씨앗이 자라고 불어나는 걸 보면 농사를 짓지 않는 죄가 클 것 같다. 초록 위에 물을 주고 하늘을 보면 성사라도 한 것처럼 행복하다.

2026년 또다시 여러 지옥이 펼쳐질 것이고 몸을 사릴 여지가 없을 것이다. 기꺼이 납작 엎드리는 마음이다. 진정 기꺼이인지는 사실 모르겠다. 농.사.힘.들.다.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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