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히 잘못된 선택
볼 일을 보고 좀 일찍 학원 앞에 차를 세웠다. 아이는 가고 싶지 않다고 하였다. 얼르고 달래도 먹히지 않아 차 문을 열고 내리게 하였다. 크리스마스 징검다리 연휴에 모처럼 쉬는 아버지와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는 휴일이 아니었고, 아이가 바란다고 아무 때나 쉬게 할 수도 없다. 지난주에 집에 손님이 와서 학원을 거르기도 했고, 그전엔 학교에서 돌아와 잠시 쉬다가 잠에 빠져 못 간 적도 있다. 빠듯한 형편에 학원비도 부담이지만, 약속은 지켜야 한다. 아이와 학교, 그리고 학원과의 약속을 위해 나는 매일 120킬로미터를 운전한다.
도시에 살다 전학 와 시골 고등학교에 다니는 딸아이는 놀이와 동무를 잃은 지 오래다. 한 마을에 한 명 있을까 말까 한 아이들은 대중교통이 드물어 부모 도움 없이는 서로 만나기도 어렵다. 만난다 해도 아이들은 집 근처에 놀 곳이 없다. 쥐불놀이를 하며 볼이 빨갛도록 뛰어다니던 내 어릴 적 놀이터는 옛날 옛적 일이다. 산은 들짐승이나 다니는 위험지대다. 오솔길이 사라진 산은 더 이상 사람의 놀이터가 아니다. 아이나 어른이나 도시의 놀이터로 나가고 싶어 한다.
시골아이들이라고 마음의 여유가 있는 것이 아니다. 입시가 이들에게도 현실이다. 누구에게나 그러하듯 무얼 하며 살 것인가는 중요한 물음이다.
학원 앞에 아이를 떨구고 차로 20여 킬로미터를 달려 집으로 왔다. 학원을 마치는 시간에 맞춰 다시 나가야 한다. 은퇴한 것도 아니고 자식 다 도시로 보내고 두 부부만 있는 게 아닌 나의 시골살이가 녹록지 않다. 시골에서 새록새록 깨닫게 되는 것이 많다. 도시의 놀이터가 그리울 때도 많다. 10킬로미터를 뛰어가도 그리 무섭지 않은 덕소의 강변이 그립다. 그곳의 상점들과 맛집은 익숙하고 편리했다. 안타깝게도 다시 돌아갈 것 같지 않다. 길을 잃은 것은 아닌가. 내가 있을 곳이 여기가 맞나?
사실 도시도 놀이터를 잃은 지 오래다. 고향을 떠나 유년기를 보낸 대전은 어린 내 눈에도 큰 도시였다. 하지만 그곳의 골목은 놀이와 아이들의 웃음이 가득했다. 농촌이 잃어가던 아이들이 도시의 골목을 놀이터로 추억을 만들었다. 그곳에 만화방과 오락실이 들어서고 아파트 단지와 공원이 생겨난 뒤로 더 이상 어떤 놀이터도 만나지 못했다.
어디에도 없는 놀이터를 가슴에 앉고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이와 산다. 심하게 잘못된 선택 같다.
어른이 되어 놀지 않는 것이 아니라, 놀기를 그만두면서 어른이 된다고 하던가? 내 아이가 놀지 못하면서 급속도로 어른이 되게 한 책임을 지금 그리고 앞으로 지게 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세상 어디에도 누구를 위한 놀이터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 원인과 책임은 어떻게 살펴야 좋을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