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오차(Error)는 실패가 아니다.

by 고도

오차(Error)는 실패가 아니다.

2025년의 어느 날, 나의 몸과 마음은 고장이 난게 확실해 보였다.

기계라면 부품을 갈아끼우면 그만이다. 소프트웨어라면 디버깅을 하면 된다. 나는 엔지니어였기에 내 삶도 그렇게 고칠 수 있다고 믿었다. 더 노력하고, 더 참고, 더 성실하게 임하면 삶의 '오차'는 줄어들 것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공황과 어지럼증이라는 신호는 내 노력이 부족해서 생긴 버그가 아니었다. 그것은 "네가 세운 삶의 가설 자체가 틀렸다"고 외치는 내 몸의 필사적인 아우성이었다.

나는 그동안 잘못된 설계도를 들고 건물을 짓고 있었다.

"성실하면 인정받는다."

"타인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해야 한다."

이 견고해 보이는 믿음들이 사실은 나를 갉아먹는 악성 코드였다. 나는 그것을 지키기 위해 화를 내고, 불안해하고, 결국 무너졌다.

칼 포퍼는 말했다.

"우리는 가설을 갖고 자연과 대결해야만 하며,
우리의 물음에 대한 대답을 요구해야만 한다."

과학에서 이론이 실험에 의해 깨지는 것(반증)은 실패가 아니다. 그것은 낡은 이론을 폐기하고 더 나은 이론으로 나아가는 위대한 진보의 순간이다.

그렇다면 내 삶의 붕괴도 실패가 아닐 수 있다. 이것은 나의 낡은 가설들이 반증된 사건이다. 이제 나에게 필요한 것은 자책이 아니라, 새로운 가설이다.

나는 2026년 1~6월의 시간을 통째로 비워, 내 삶을 하나의 실험실로 만들기로 했다.

이곳에서 나는 아빠가 아니라 연구자로, 직장인이 아니라 탐구자로 존재한다.

아이의 울음소리는 소음이 아니라 데이터가 되고, 주가의 등락은 공포가 아니라 기회가 된다.

이 책은 그 실험의 기록이다.

나는 어제의 나를 부정하고, 깨뜨리고, 논박할 것이다.

그 폐허 위에서만이 진짜 내가 숨 쉴 수 있는 집을 지을 수 있을 테니까.

나는 나를 논박한다. 고로 나는 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