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류의 발견(증상)

나는 고장 난 기계였다

by 고도

"나는 고장 난 기계였다."


2025년 4월, 내 몸이라는 정밀 기계에 알 수 없는 오류가 발생됐다.

엔지니어로서 나는 언제나 인과관계를 믿었다. 입력(Input)이 있으면 출력(Output)이 있다. 노력이 있으면 성과가 있다. 문제가 생기면 원인을 찾아 수리하면 된다. 이것이 내가 30년 넘게 믿어온 삶의 알고리즘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스트레스를 받으며 일을 하다보면 오후 쯤 부턴 세상이 흔들렸다. 호흡이 가빠지고, 멀쩡하던 심장이 제멋대로 날뛰기 시작했다. 기립경사검사(Tilt Table Test)라는 낯선 검사를 받았다. 침대를 70도로 세우자마자 심박수가 치솟았다.

진단명: 기립성 빈맥 증후군 (POTS).

자율신경계의 오작동. 내 의지대로 조절할 수 없는 신경들이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나는 당황하지 않으려 했다. 버그를 발견했으니 디버깅을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어지럼증의 원인을 찾기 위해 이비인후과, 내과, 신경과를 순례했다. 귀의 평형감각(이석증)을 의심했고, 혈압을 의심했고, 심지어 며칠 전 맞은 피부과 스테로이드 주사가 원인일까 가설을 세워보기도 했다.

하지만 병원에서는 "큰 이상이 없다"거나 "스트레스성"이라는 모호한 답만 내놓았다.

"객관적인 상황 자체는 힘들 게 없다. 그래서 더 모르겠다." (2025.04.16 일기)

나는 억울했다. 나는 성실했다. 파일럿 프로젝트들을 성공적으로 완수했고, 회사에서도 가정에서도 책임을 다했다. 그런데 왜?

내가 믿었던 '성실함'이라는 입력값에 대해, 세상은 '공황'이라는 출력값을 내놓았다. 이 수식은 성립할 수 없었다. 내 인생의 코드가 어딘가 근본적으로 꼬여버린 것이다.

7월의 어느 날, 40도가 육박하는 폭염 속 차 안에서 나는 '현실이 아득해지는' 공포를 느꼈다. 뒷목이 뻐근해지고 심장이 터질 듯 두근거렸다. 죽을 것 같았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나라는 시스템이 강제로 종료될 것 같은' 공포였다.

그제야 나는 인정해야 했다.

이것은 단순한 고장이 아니다. 부품을 갈아끼우거나 기름을 칠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내가 세운 삶의 가설, "참고 견디면 보상이 온다"는 그 견고한 믿음 자체가 틀렸음을, 내 몸이 온몸으로 거부하고 있는 것이었다.

오류는 발견되었다. 이제 나는 선택해야 했다.

오류를 무시하고 시스템이 완전히 붕괴될 때까지 달릴 것인가, 아니면 시스템 전체를 멈추고 설계를 다시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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