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톡방에서 퇴장당했습니다.

관계의 대차대조표 다시 쓰기

by 고도

단톡방에서 퇴장당했습니다.


10년의 헌신, 1초의 삭제

2026년 1월, 습관처럼 회사 단체 톡방을 확인했다. 혹시나 나를 찾는 사람이 있을까, 내가 없어서 곤란한 일은 없을까 하는 미련 때문이었다. 하지만 화면에는 차가운 시스템 메시지 하나만 남아 있었다.

"대화방에서 퇴장되었습니다."

순간 멍해졌다. 10년을 바친 조직이었다. 프로젝트의 시작부터 함께했고, 아무것도 없던 맨땅에서 기술을 일궈내 제품을 만들어냈다. 수많은 밤을 지새우며 난관을 헤쳐나갔고, 그것이 내 자부심이었다. 내가 없으면 이 프로젝트는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 믿었다. 아니, 믿고 싶었다.


오류가 난 알고리즘: "나는 대체 불가능하다"

그 짧은 문구 앞에서 나는 깨달았다. 내가 세웠던 '관계'와 '역할'에 대한 가설에 심각한 오류가 있었음을.

"나는 대체 불가능한 존재이며, 나의 기술적 성취와 헌신은 영원한 인정과 존중으로 돌아올 것이다."

이것이 내가 믿었던 관계의 알고리즘이었다. 그래서 나는 거절하지 못했고, 더 완벽해야 했고, 무리한 일정과 요구도 묵묵히 감당했다. 그들의 인정이 곧 나의 존재 가치이자, 내가 만든 기술에 대한 예우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회사는 거대한 시스템이었고, 나는 그 시스템을 구축하고 나면 언제든 교체될 수 있는, 성능 좋은 부품이었다. 나의 헌신은 '당연한 업무'였고, 나의 자부심은 때로 '고집'으로 비쳤을지도 모른다.


관계의 대차대조표: 자산인 줄 알았는데 부채였다

퇴장당한 것은 단톡방만이 아니었다. 나는 그들의 필요에서, 그리고 내가 내 전부를 걸었던 프로젝트에서 퇴장당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을 여전히 미래에도 협력해야 할 나의 자산(Asset)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장부를 다시 열어보니, 그것은 나를 갉아먹는 부채(Liability)였다." (2026.01.08 일기)

나는 '관계의 대차대조표'를 다시 썼다. 개발자가 코드에 쌓인 기술적 부채(Technical Debt)를 해결하듯, 내 마음속에 쌓인 관계의 부채들을 정리해야 했다. 내가 프로젝트에 쏟은 과도한 애착,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오만, 그리고 그로 인해 스스로를 소진시켰던 감정 노동의 비용들. 이것들은 자산이 아니었다. 내 영혼의 자본을 잠식하는 악성 부채였다.


청산(Liquidation)과 구조조정

나는 과감히 '손절'하기로 했다. 이것은 패배가 아니다. 더 이상 가망 없는 투자처에서 자본을 회수하여, '나'라는 기업을 살리기 위한 필사적인 구조조정(Restructuring)이다.

안식년은 단순한 쉼이 아니다. 이것은 내 인생의 악성 부채를 청산(Liquidation)하는 과정이다. 나는 이제 소음의 감옥에서 걸어 나온다. "대체 불가능한 전문가"라는 허상, "성공의 주역"이라는 족쇄, 그리고 끊임없이 나를 증명해야 했던 압박감의 독방에서.


비로소, 자유

단톡방이 사라진 휴대폰 화면은 고요하다. 더 이상 울리지 않는 알림. 누군가는 그것을 '고립'이라 부를지 모르지만, 나는 그것을 '해방'이라 부르기로 했다.

나는 이제 혼자다. 그리고 비로소 자유다.



다음 편 예고

그런데 자유는, 생각보다 빨리 '텅 빈 하루'라는 얼굴로 찾아왔다. 그 황량함을 견디지 못해 도망치듯 들어간 도서관에서, 촌스러운 표지의 책 한 권을 펼쳤다. 그리고 379페이지에서 멈춰 섰다.

그날 나는 내 인생을 '실패'라고 부르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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