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행복을 사냥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행복을 사냥하는 사람이었다."
오랫동안 나는 사냥꾼처럼 살았다. 목표라는 활을 쏘고, 계획이라는 덫을 놓았다. 그 모든 것을 달성하여 마침내 행복을 '포획'하는 것. 그것이 내 삶의 유일한 방식이었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었다. 내가 숨을 죽이고 행복을 쫓을수록, 그것은 눈치 빠른 짐승처럼 더 멀리 도망쳤다. 숲을 헤매다 내 손에 남은 것은 행복이라는 전리품이 아니라, 불안과 조급함이라는 상처뿐이었다.
2026년 1월, 기다리던 안식년이 시작되고 나서야 나는 일기장에 이렇게 적을 수 있었다.
"기쁨은 고양이처럼 온다. 다가서려 하면 멀어지고, 내버려 두면 문득 발치에 앉는다. 잡아 두려 애쓰지 말라. 머물 때 쓰다듬고, 떠날 때 배웅하라."
안식년의 여유 속에서 만난 쇼펜하우어는 내게 충격적인 이야기를 건넸다.
"행복은 더하는 것이 아니라 빼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행복을 무언가 더해지는 것, 즉 쾌락의 획득이나 성취라고 착각한다. 하지만 쇼펜하우어는 행복이 '결핍과 고통의 부재'라고 정의했다. 행복은 쟁취해서 벽에 걸어두는 화려한 트로피가 아니었다. 그것은 고통이 없는 조용한 상태에서, 문득 찾아와 무릎 위에 앉는 고양이 같은 손님이었다.
나는 그동안 엉뚱한 곳에서 그물을 던지고 있었다. 고양이는 억지로 잡으러 다니는 존재가 아니다. 그저 내 마음의 방을 따뜻하게 데워두고(건강), 고양이가 싫어할 날카로운 가시들을 치워두면(빚과 관계의 정리), 녀석은 알아서 찾아와 골골송을 부른다.
가설의 수정: 30억보다 중요한 것
내 인생을 지배하던 가설이 수정되었다.
[기존 가설] 행복은 성취의 결과물이다. (성공 → 행복)
[수정 가설] 행복은 고통이 제거된 평온한 상태다. (고통의 제거 → 평안 → 행복)
이제 나는 30억 자산가가 되기 위해 이를 악물지 않는다. 대신 내 마음의 방 온도를 살핀다. 오늘 하루 아프지 않은가? 빚쟁이에게 쫓기지 않는가? 내 두 발로 자유롭게 산책할 수 있는가?
이 지루하고 평범해 보이는 '고통 없음'의 상태. 역설적이게도 안식년이 내게 준 선물은 거창한 성취가 아니라, 행복이라는 고양이가 찾아오기 가장 좋은 '따뜻한 빈 방'을 마련하는 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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