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낸다'라고 하면 안되는 이유

복잡적응계로서의 인간에 관하여

by 고도

복잡적응계로서의 인간에 관하여

지난날 내 인생의 모토는 "해낸다"였다.

샤워기 물줄기를 맞으며 주문처럼 "난 해낼 수 있다"고 되뇌었다.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해낸다"는 "쥐어짠다"와 동의어였다. 나는 나를 하나의 '기계'로 보고 있었다. 입력(노력)을 넣으면 출력(성과)이 나오는 선형적인 기계 말이다. 그래서 가속 페달을 더 세게 밟으면 더 빨리 갈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인간은 기계가 아니다. 인간은 '복잡적응계(Complex Adaptive System)'다.

밟으면 밟을수록 빨라지는 게 아니라, 과부하가 걸려 멈춰 서기도 하고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튀기도 한다. 나는 기계가 아니라 생태계였다. 이 관점의 전환은 내 삶을 해석하는 방식을 송두리째 바꿨다.


내 머릿속의 '이기적 유전자'와 밈(Meme)

리처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에서 신체를 유전자를 운반하는 '생존 기계'라고 표현했다. 나는 이 통찰을 내 정신에 적용해본다. 내 자아는 '생각(Idea)'이라는 유전자를 운반하는 숙주다. 도킨스가 말한 '밈(Meme)'이다.

내 머릿속에는 수많은 밈들이 산다. "성실해야 해", "남에게 폐를 끼치면 안 돼", "성공해야 해". 이 생각들은 죽은 정보가 아니다.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내 뇌라는 영토를 차지하기 위해 서로 경쟁하고, 복제되고, 때로는 돌연변이를 일으킨다. 어떤 생각은 나를 숙주 삼아 번성하고(불안, 강박), 어떤 생각은 도태된다.

다윈의 정원과 생존 투쟁

찰스 다윈은 《종의 기원》에서 '생존 투쟁(Struggle for Existence)'을 이야기했다. 자연은 평화로운 에덴동산이 아니라, 제한된 자원을 두고 벌어지는 치열한 적자생존의 장이다. 내 마음의 생태계도 그렇다.

내 안에서는 수많은 가설(추측)들이 생존 투쟁을 벌인다.

"부모님 말씀을 잘 들어야 사랑받는다."

"실패하면 끝장이다."

이런 추측들은 어린 시절 나를 보호하기 위해 탄생했지만, 성인이 된 지금의 환경(Environment)과는 맞지 않을 수 있다.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종은 도태되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이미 수명을 다한 가설을 억지로 살려두려 한다. 그것이 아집이고, 그 부자연스러움이 고통을 낳는다.


다양성과 독립성: 숲을 건강하게 만드는 두 기둥

그렇다면 이 생태계를 어떻게 건강하게 만들 것인가? 답은 '다양성(Diversity)''독립성(Independence)'에 있다.

1. 다양성: 공룡과 포유류의 교훈

생태계가 건강하려면 생물 다양성이 필수적이다. 공룡처럼 거대하고 획일화된 종은 환경 변화 한 번에 멸종했다. 반면 작고 다양한 종을 유지했던 포유류는 살아남았다.

내 마음에도 다양한 생각들이 공존해야 한다. 모순되는 두 가지 생각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 그것은 혼란이 아니라 생태계의 풍요로움이다. 내가 다양한 책을 읽는 이유는 내 마음의 숲에 낯설고 새로운 종을 이식하기 위해서다.

2. 독립성: 전염병을 막는 거리두기

또한 각 생각들은 서로 독립적이어야 한다. 한 가지 생각이 전체를 지배하면(이데올로기), 그것이 무너질 때 전체 생태계가 붕괴한다.

주식 시장이 붕괴하는 것은 모든 투자자가 '공포'라는 단일한 생각에 감염되어 독립성을 잃을 때다. 내 마음도 마찬가지다. '성공'이라는 단 하나의 잣대로 모든 가치를 평가하면, 성공하지 못했을 때 내 인생 전체가 무너진다.

가족, 건강, 취미, 투자... 각 영역이 서로 독립적인 생태계를 유지할 때, 나는 어떤 시련에도 무너지지 않는 '강건함(Robustness)'을 얻는다.

그리고 나는 이 숲에 더 강건한 종을 이식하기 위해 '린디 효과(Lindy Effect)'가 검증된 고전들을 심는다.

린디 효과(Lindy Effect)란?
시간이 지날수록 기대 수명이 늘어나는 현상을 말한다. 100년 된 고전은 앞으로 100년 더 읽힐 확률이 높지만, 어제 나온 베스트셀러는 내일 잊혀질 확률이 높다. 생명력이 검증된 것일수록 더 강건하다.

수천 년을 버텨온 고전들은 생명력이 검증된 거목(巨木)들이다. 이 강력한 종들은 내 안의 잡초(불안)와 경쟁하며 생태계의 수준을 높여준다.


정원사로서의 나

나는 이제 나를 통제하려는 엔지니어가 되기를 포기했다. 대신 나는 내 마음의 정원사가 되기로 했다.

정원사는 식물을 억지로 잡아당겨 키우지 않는다. 그저 좋은 흙(환경)을 만들어주고, 잡초를 뽑아주고(반증), 햇볕(지식)을 쬐여주고, 기다릴 뿐이다. 때로는 산불(시련)이 나서 숲이 타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정원사는 안다. 그 잿더미가 거름이 되어 더 울창한 숲이 됨을.

나는 기계가 아니다.

나는 치열한 생존 투쟁과 경이로운 창발이 일어나는, 살아 숨 쉬는 생태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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