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씀을 멈추는 기술
"난 왜 이렇게 빨리 피곤해질까?"
요즘 입버릇처럼 달고 사는 말이다. 잠을 자도 개운하지 않고, 주말 내내 쉬어도 월요일 아침이면 몸이 천근만근이다. 처음에는 그저 체력이 떨어져서, 혹은 나이가 들어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니 내 피로의 정체는 육체적인 방전이 아니었다. 그것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인위적으로 해내려 애쓰는 마음, 즉 작위(作爲)가 뇌를 과열시킨 결과였다.
우연히 야구 선수의 '입스'에 관한 영상을 보았다. 평생 수만 번은 던졌을 공을, 갑자기 땅바닥에 패대기치거나 관중석으로 날려 보내는 투수들의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그들은 근육이 파열된 게 아니었다. "이번엔 절대 실패하면 안 돼", "완벽하게 던져야 해"라는 잘하려는 마음이, 몸이 기억하는 자연스러운 무의식의 회로를 마비시킨 것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분석에 의한 마비(Paralysis by Analysis)'라고 부른다.
이 영상을 보며 나는 직장인들이 겪는 수많은 '보이지 않는 입스'를 떠올렸다. 숨 쉬듯 쓰던 이메일 답장이 갑자기 두려워지고, 회의 시간에 입이 떨어지지 않으며, 모니터 앞에서 하염없이 멈춰있는 시간들. 남들 눈에는 그저 불성실함이나 게으름으로 비치겠지만, 사실 그것은 그가 지금까지 얼마나 치열하게 긴장하며 살아왔는지를 보여주는 훈장 같은 병이다. 우리의 뇌가 "더 이상 이런 방식의 '애씀'으로는 살 수 없다"고 파업을 선언한 것이다.
입스에 빠진 선수에게 코치들은 폼을 교정해주기보다 "결과를 신경 쓰지 말고 그냥 던지라"고 조언한다. 놀랍게도 이는 수천 년 전 노자가 설파한 '무위(無爲)' 사상과 맞닿아 있다.
장자는 활쏘기 비유를 통해 이를 명쾌하게 설명한다. 질그릇을 경품으로 걸고 쏘면 백발백중이던 명사수도, 황금 버클을 걸고 쏘면 손을 떤다. 기술이 줄어든 게 아니라, '황금(결과)'에 집착하는 작위적인 마음이 내면을 어지럽혔기 때문이다.
모든 작위와 인위로부터 벗어나, 스스로 그러함(자연)에 맡기는 것. 기독교에서 말하는 '섭리에 맡김'이나 노자의 '무위자연'은 결국 같은 말이다. 내가 쥐고 있는 핸들을 놓아버리는 용기. 그것만이 고장 난 나를 고칠 수 있는 유일한 해법처럼 보였다. 나는 무릎을 탁 쳤다. "그래, 이제부터는 억지로 하지 말자. 흐름에 맡기자."
하지만 머리로 깨닫는 것과 삶으로 살아내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나는 낮잠을 자지 않는 22개월 딸아이와 씨름하고 있었다. 차에서 잠깐 잠들었다 깬 아이를 다시 재우기 위해 1시간 반을 매달렸다.
내 머릿속은 '무위'로 가득 차 있었다. "억지로 재우지 말자. 자연스럽게 자겠지." 하지만 아이가 칭얼거리고 뒤척일수록 내 안의 '무위'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왜 안 자는 거야!"라는 뜨거운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결국 나는 또다시 아이를 억지로 붙들고 '작위'를 행하고 있었다. 방을 나오며 나는 절망했다. 무위론은 옳은데, 왜 현실 적용은 이토록 어려운가?
나는 깨달았다. '억지로 하지 말자'는 막연한 다짐만으로는 무위를 실현할 수 없다는 것을. 사람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아닌 이상, 어쨌든 무언가를 '하게(Doing)' 되어 있다. 그리고 그 행위가 길어지면 필연적으로 "들인 공이 아까워서라도(매몰 비용)" 결과를 보려 하게 되고, 그때부터는 집착과 분노가 시작된다.
진정한 무위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철저하게 계산된 '전략적 포기'가 필요하다. 책 <Quit>에서는 에베레스트 등반의 '오후 1시 회항 규칙'을 소개한다. 정상이 코앞이라도 오후 1시가 되면 무조건 하산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려오는 길에 어둠과 추위를 만나 죽기 때문이다.
육아도, 인생도 마찬가지다. 나는 나만의 중단 조건을 다시 세웠다. "아이를 눕히고 10분 내에 숨소리가 깊어지는 예비 증상이 없다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포기한다."
이것은 패배가 아니다. 안 될 일을 억지로 되게 만들려는 나의 욕망, 그 '작위'가 고개를 들기 전에 상황을 종료시키는 가장 적극적인 방어 기술이다. 중단 조건을 정하지 않으면 우리는 필연적으로 억지를 부리게 된다. 내가 화가 나고 지쳐서 나가떨어지기 훨씬 전에, 아직 웃을 수 있는 힘이 남아있을 때 멈추는 것. 그것이 내가 찾은 현실적인 무위의 기술이다.
우리가 피곤한 이유는 일을 많이 해서가 아니라, 안 되는 일을 억지로 붙들고 놓지 못해서다. 입스가 온 투수에게 필요한 건 더 많은 투구 연습이 아니라, 마운드에서 내려와, 포지션을 바꿀 수 있는 용기다.
이제 나는 더 이상 막연하게 "자연스럽게 되겠지"라고 기다리지 않는다. 대신 언제 멈출지를 명확히 정하고 시작한다.
"여기까지만 해보고 아니면 말자."
이 가벼운 포기의 문장이, 역설적이게도 나를 가장 열심히 살게 하고, 동시에 가장 평온하게 쉬게 만든다.
오늘도 나는 내 안의 불안과 욕심이 만들어낸 에베레스트를 오른다. 하지만 이제는 두렵지 않다. 나에게는 언제든 미련 없이 내려올 수 있는 '오후 1시'라는 시계가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