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년 이야기: 나는 신이 되기를 포기했다

지적 허영과 불타는 수치심에서 벗어나는 법

by 고도

수치심은 불타는 지옥이다

당신을 잠 못 들게 하는 고통의 실체는 무엇인가. 껍질을 벗겨내고 나면 결국 마주하는 감정, 바로 수치심이다.

그것은 나를 찌르는 날카로운 칼날이며, 발가벗겨진 채 불길 속에 던져진 불타는 지옥이다. "그때 그렇게 말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나는 왜 이것밖에 안 될까." 매일 밤 우리는 이 뜨거운 불길에 데여 뒤척인다.

태초의 인류는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들에게는 없던 이 지옥 같은 감정이 도대체 언제, 왜 우리 영혼에 침투했을까.


"나는 신이 되려 한 적 없는데?"

사람들은 "하나님과 같이 될 것"이라는 뱀의 유혹을 종종 이해하지 못한다. "나는 살면서 한 번도 내가 신이라고 생각한 적 없어. 난 그저 평범한 사람이야."

나도 그랬다. 하지만 스토아 철학자 에픽테토스의 거울에 비춰보았을 때, 나는 매 순간 신의 자리를 탐하고 있었다.

"부자가 되고 싶다."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다."

"그 사람의 마음을 얻고 싶다."

이 평범한 바람들이 왜 죄인가? 에픽테토스는 말한다. "노력은 너의 권한이지만, 결과는 신의 권한이다."

씨를 뿌리고 밭을 가는 것은 나의 권한이다. 하지만 비가 오고 열매가 맺히는 '결과'는 하늘과 운, 즉 신의 영역이다. 우리가 괴로웠던 이유는 노력을 안 해서가 아니다. 내 권한 밖인 '결과'와 '타인의 마음'까지 내 뜻대로 조종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주제넘게 신의 영토를 탐한 것, 이것이 내가 저지른 지적 허영의 실체다.


권한 밖을 탐한 자의 형벌

권한 없는 것을 바라는 마음은 필연적으로 비참함을 낳는다. 하와가 선악과를 먹고 얻은 건 지혜가 아니라 수치심이었다.

수치심은 '전지전능하고 싶은 나(통제자)'와 '무력한 현실의 나(인간)' 사이의 괴리에서 온다. 날씨를 조종하지 못했다고 부끄러워하는 사람은 없다. 날씨는 명백히 내 권한 밖임을 알기 때문이다. 우리가 성적이나 평판 때문에 수치스러운 건, 그것을 내가 조종할 수 있다고 믿었던 오만 때문이다.

나는 신이 아닌데 신의 권능을 부리려다 실패했기에, 그토록 부끄러웠던 것이다. 이것은 주제 파악을 못한 자가 받는 형벌이다.


나의 정원으로 돌아오라

이 지옥 같은 수치심에서 벗어나는 길은 하나뿐이다. 다시 '나의 권한' 안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에덴에서 아담에게 허락된 권한은 창조나 심판이 아니었다. 주어진 동물들의 이름을 짓고, 맺힌 열매를 따 먹는 향유돌봄이었다. 그 한계 안에서 그는 자유로웠다.

이제 나는 주제넘은 욕심을 내려놓는다. 성공과 실패, 칭찬과 비난이라는 결과는 신에게(운명에게) 돌려준다. 대신 나는 오늘 나에게 허락된 작은 정원—나의 태도, 나의 노력, 나의 선한 의지—만을 가꾼다.

"내 것이 아닌 것은 내 것이 아님을 알라." 이 단순한 진리를 받아들일 때, 비로소 불타는 수치심은 사라진다. 결과를 통제하려는 신의 가면을 벗고, 한계를 가진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온 순간. 우리는 비로소 벌거벗었으나 부끄럽지 않은 자유를 얻는다.


"결과를 신에게 돌려주고, 나는 나의 정원만 가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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