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독(多讀)은 진짜 바보짓일까

지적 허영심을 넘어 진정한 내 것이 되는 독서법

by 고도

쇼펜하우어는 그의 저서 《행복론과 인생론》 중 '스스로 사고하기' 편에서 다독(多讀)을 경계했다. 그는 "독서로 얻은 남의 생각은 남이 먹다 남긴 음식이나, 남이 입다 버린 옷에 불과하다"며 독설을 퍼부었다. 책을 읽는 시간은 내 머리가 아닌 남의 머리로 생각하는 시간이라는 것이다. 플라톤 역시 《국가》에서 비슷한 맥락으로, 문자가 사람들의 기억력과 사고력을 감퇴시킬 것이라 경고했다.


지적 허영심이라는 함정

10년 전쯤, 나는 플라톤의 그 구절에 감명을 받아 SNS에 '책 읽기'를 비판하는 글을 올린 적이 있다. 그때 나보다 한 살 어린 후배가 "형, 좀 더 생각해보세요"라며 비판적인 댓글을 달았다. 순간 욱하고 화가 났다. 나는 책(플라톤)을 인용해 쓴 글이었는데, 그는 감히 소크라테스에게 '생각 좀 하라'고 반박한 셈이었으니까. 지금 생각하면 재밌는 일이기도 하다.

당시엔 당황해서 댓글을 무시했지만, 돌이켜보면 잘한 선택이었다. 거기서 논쟁해 이긴들 무슨 의미가 있었겠는가. 그 분노는 그저 나의 '지적 허영'이 찔린 것에 불과했다.

책을 많이 읽고 '헛똑똑이'가 된 사람들을 종종 본다. 어릴 때 책을 너무 많이 읽어 오히려 대화가 불통인 지인이 있었다. 그는 무슨 주제든 백과사전식 지식을 줄줄 읊어댔지만, 정작 자기 생각은 없었다.

나 역시 다르지 않았다. 철학책을 탐독했지만, 실질적인 사고의 확장보다는 "이건 누가 말했고, 저건 누가 말했고" 식의 인용 놀이에 심취했다. 내 삶에 적용되지 않는 지혜, 상대를 제압하기 위해 끌어온 권위 있는 타인의 문장들. 그건 내 지식이 아니라, 내가 이만큼 안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한 장신구였다.


고전이 어렵게 느껴지는 진짜 이유

책은 숭배의 대상이 아니라, 내 생각이 막혔을 때 뚫어주는 도구여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책, 특히 고전 앞에서 주눅이 든다.

비트겐슈타인이 지적했듯, 단어의 의미는 '언어 게임' 안에서 계속 변한다. 특히 동서양의 문화적 차이는 거대한 장벽이다. 예를 들어 '믿음'이라는 단어를 보자. 동양권에서 믿음은 타인에 대한 '신뢰(Trust)'다. 하지만 서양, 특히 기독교적 배경에서 '믿음(Faith)'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행위'에 가깝다. 그들에게 '이해했다'는 'I see(본다)'와 동의어이고, 믿음은 논리적으로 보이지 않는 공리를 삶의 기반으로 삼는다는 뜻이다.

이런 맥락을 모른 채 번역가의 필터를 거친 텍스트를 접하니, 위대한 사상가들의 말이 난해한 암호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사실 위대한 고전일수록 당대의 지식인들이 충분히 이해했기에 살아남은 책들이다. 어렵게 느껴진다면 내 머리가 나빠서가 아니라, 읽는 방식과 접근법이 잘못되었을 확률이 높다.


터널 뚫기가 아닌 '친구 사귀기'

많은 사람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마치 《수학의 정석》 집합 부분만 파다가 지쳐버리는 꼴이다.

독서는 저자와 친해지는 과정이다. 낯선 사람과 대화할 때 처음부터 모든 걸 알려고 하지 않듯, 책도 중간부터 훑어보다 마음에 드는 구절을 발견하면 그때부터 대화를 시작하면 된다. 아무리 읽어도 재미가 없다면? 그 책은 지금 나와 안 맞거나 시기가 아닌 것이다. 과감히 덮어도 좋다.

중요한 건 한 권을 완독하는 게 아니라, 단 한 구절이라도 붙잡고 일주일 내내 내 머리로 생각해보는 경험이다.


표절과 창조 사이, 지식의 소화

쇼펜하우어의 말처럼, 책은 보조수단일 뿐이다. 진정한 자유인은 타인의 권위에 숨지 않고 나만의 사고를 한다.

약간의 용기가 필요하다. 권위 있는 사람의 말을 그대로 인용하면 안전하다. 비판받아도 그건 원작자의 탓이지 내 탓이 아니니까. 하지만 그 말을 내 사고의 용광로에 넣어 완전히 녹여야 한다. 때로는 내 생각인지 저자의 생각인지 헷갈릴 정도로 내 언어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현대 사회는 이를 '표절'이라며 죄악시하기도 한다. 음악계의 표절 시비처럼 말이다. 하지만 악의적인 복제가 아니라면, 타인의 영향력을 받아 내 안에서 소화된 결과물은 범죄가 아니라 필연이다. 하늘 아래 완전히 새로운 것은 없다.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고, 서로의 어깨 위에서 조금씩 나아간다.



그러니 책을 읽되, 책에 갇히지 말자. 타인의 문장을 씹어먹고 소화시켜, 결국엔 나의 문장으로 뱉어내자. 그때 비로소 책은 '남이 먹다 남긴 음식'이 아니라, 나를 성장시키는 자양분이 된다.

작가의 이전글우리가 소유할 수 있는 시간은 과거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