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경험을 나의 지혜로 만드는 법
며칠 전부터 현관 중문이 자꾸만 열려 있었다. 오가며 문을 여닫는 건 아내인데, 그때마다 제대로 안 닫고 들어오니 슬슬 짜증이 났다. 냉난방 문제도 있고, 미관상으로도 좋지 않아 결국 한마디를 던졌다. "아니, 왜 자꾸 문을 안 닫고 다녀?"
아내는 억울하다는 듯 대답했다. "문이 좀 이상해. 잘 안 닫혀."
나는 즉시 문을 열었다 닫아보았다. '착' 하고 잘만 닫혔다. 한 번 더 해봤다. 역시나 문제없었다. 아내가 핑계를 댄다고 생각했다. 나는 보란 듯이 쏘아붙였다. "무슨 소리야, 이렇게 잘 닫히는데!"
방금 전, 외출했다가 집으로 들어오는 길이었다. 습관처럼 중문을 살짝 열고 들어가 아내와 아이들에게 인사하고 화장실을 가려는데 중문이 반쯤 열려 있었다. 아, 문이 전처럼 잘 닫히지 않는 게 맞았다.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나는 곧장 아내에게 달려가 사과했다. "미안해. 진짜 문이 이상하네. 내가 잘못했어."
사과는 했지만, 마음 한구석에 묵직한 질문이 남았다. '왜 나는 그때 아내의 말을 믿지 않았을까?'
아내가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는데도, 나는 내 손으로 확인한 '통제된 테스트'를 진실로 믿었다. 아내가 겪은 '일상적 실패'는 그저 핑계나 부주의로 치부해 버렸다. 결국 내가 직접 그 불편함을 겪고 나서야, 비로소 타인의 말이 '사실'로 입력된 것이다.
문득, 회사에서 개발자로 일하던 시절의 부끄러운 기억이 떠올랐다. 내가 개발한 장비가 현장에서 문제를 일으킬 때면, 나는 습관적으로 의심부터 했다. '사용자가 매뉴얼대로 안 쓴 거 아니야? 버튼을 잘못 눌렀겠지.'
현장의 목소리를 듣기보다 사용자의 미숙함을 먼저 탓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깨달았다. 그때 나의 의심은 사실 "원인을 잘 모르겠습니다"라는 말을 하고 싶지 않았던 나의 방어기제이자, "내 자리에서는 잘 돌아가니까 내 코드는 문제없어"라는 개발자의 아집이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기본적 귀인 오류(Fundamental Attribution Error)'라고 한다. 타인의 실패는 그 사람의 성격이나 능력 부족 탓으로 돌리고, 나의 실패는 상황 탓으로 돌리는 심리적 편향이다. 아내에게는 "당신이 부주의해서 문을 안 닫은 거야"라고 하고, 내가 겪고 나서야 "문이 고장 났네"라고 말하는 이 이중적인 태도. 이것은 개발자로서도, 남편으로서도 결코 좋은 태도가 아니었다.
우리는 종종 다른 사람의 실패나 불편함을 보며 쉽게 판단한다. "조심성이 없어서 그래", "요령이 부족해서 그래"라고 비웃거나 화를 낸다. 인간은 참으로 어리석어서, 간접 경험으로는 잘 배우지 못한다. 꼭 내 몸으로 부딪치고, 내 손해로 이어져야만 뼈저리게 받아들인다.
하지만 모든 것을 직접 겪어서 배우기엔 우리 인생이 너무 짧다. 이번 일을 계기로 사고의 회로를 조금 바꿔보기로 했다. 누군가 실수하거나 불편함을 호소할 때, 내 기준의 잣대를 들이대며 검증하려 들기보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지'라고 먼저 신뢰해 보는 것이다.
타인의 경험을 의심 없이 나의 데이터로 받아들이는 것. 굳이 내가 실패해 보지 않아도 타인의 시행착오를 교훈 삼아 내 행동을 수정하는 것. 이것이 습관이 된다면 내 실수는 줄어들 것이고, 타인에게는 조금 더 너그러운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고장 난 중문 덕분에 나는 오늘, 문을 고치는 기술 대신 마음을 고치는 법을 배웠다. 이것이 사고의 습관으로 굳어진다면, 앞으로의 삶은 분명 지금보다 더 열려있고 매끄러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