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성취는 애착이다

유한성의 기쁨

by 고도

그날 밤, 울음이 먼저 도착했다.


이유는 뒤늦게 따라왔다.

방은 어두웠다.

소리는 작았다.

아이는 화면을 바라보며 몸을 기대고 있었다.

나는 아이를 안았다.

따뜻했고, 가벼웠고, 동시에 무거웠다.

문득 한 장면이 떠올랐다.

아이가 자라 어딘가로 떠나는 장면.

나는 뒤쪽에 서 있고, 아이는 잠깐 뒤돌아본 뒤 다시 앞으로 걷는다.

너무 먼 이야기였다.

그래서 더 선명했다.

나는 말없이 아이를 안고 울었다.


나는 오래도록 성취를 믿었다.

성취는 단단함을 약속했다.

“하나 더 하면, 불안이 줄어들 것이다.”

나는 하나를 더 했다.

그리고 또 하나를 더 했다.

잠깐은 괜찮았다.

하지만 곧 다음이 왔다.

성취는 끝이 아니었다.

성취는 다음 성취를 부르는 종이었다.

나는 알게 되었다.

성취는 자유를 주지 않는다.

성취는 잠깐 나를 버티게 해주지만, 곧 다음 성취를 요구한다.


그 밤의 울음은 슬픔이면서 공포였다.

“이 시간이 끝난다.”

나는 시간을 잡아두지 못한다.

아이는 시간 속에서 커간다.

아이는 손님이다.

나는 손님을 붙잡아 둘 수 없다.

다만 잠시 대접할 수 있을 뿐이다.

유한성은 마음을 아프게 한다.

그러나 유한성은 세계를 선명하게 한다.

유한성을 모르면 하루는 습관이 된다.

유한성을 알면 하루는 사건이 된다.

나는 그때 깨달았다.

문제는 시간이 부족한 것이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간다는 사실을 자주 잊는 것이었다.


나는 애착을 이해하려고 했다.

설명하려고 했다.

정리하려고 했다.

하지만 애착은 논리로 오지 않았다.

애착은 몸에서 왔다.

살이 닿는 감각.

온기가 옮겨 붙는 느낌.

가만히 이어지는 숨의 리듬.

그 밤, 나는 의심할 수 없었다.

애착은 설득으로 생기지 않는다.

애착은 원칙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애착은,

시간과 접촉으로 생긴다.

나는 생각했다.

내가 지금껏 ‘성취’에 투자하느라

이 단순한 행복을 미뤄왔구나.


그때부터 구도의 방향이 바뀌었다.

더 많이 하는 구도가 아니라,

더 많이 덜어내는 구도였다.

더 덧붙이면 완전해질 줄 알았다.

그러나 완전함은 다른 곳에 있었다.

더 이상 뺄 것이 없을 때.

그때 삶은 조용히 자연스러워졌다.

그날의 기쁨은 거창하지 않았다.

나는 아이를 안고 오래 있었다.

‘언젠가 끝난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 했다.

그래서 지금을, 조금 더 깊게 누렸다.

성취는 언젠가 손에서 빠져나간다.

하지만 애착은 오늘의 몸과 기억을 바꾼다.


나는 여전히 글을 쓰고 싶다.

좋은 문장을 갖고 싶다.

그러나 이제 이유는 다르다.

증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이름을 남기기 위해서도 아니다.

언젠가 떠날 손님에게,

지금의 따뜻함을 기억으로 남기기 위해서다.

그날 밤의 울음은 한 문장이 되었다.

최고의 성취는 성취가 아니라 애착이다.

유한성을 아는 순간,

애착은 오늘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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